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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71. 훈민정음과 퇴촌면 도마리의 태허정 최항 선생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는 퇴촌면사무소 서북쪽에 있으며, 윗도마치·중간말·아랫도마치·양달말·응달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뒤로 검단산 줄기가 흘러 내려와 응달말의 수리골 산들이 마을을 둘러치고 있어 마치 삼태기 속에 마을이 있는 듯한 지형을 이루고 있고 구석기시대 유적도 발굴된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도마리(道馬里)의 지명은 여러 가지 유래가 전해오고 한자 표기도 이야기에 따라 다르게 기록돼 전해온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쌍령(雙嶺) 등 광주의 여러 고개를 언급하였는데 도마치(刀磨峙)라고 표기하였다.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칼을 가는 고개’라는 뜻인데, 만기요람이 군사적 정보를 담은 도서라는 점을 참고하면 군사적 요충지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는 도마치(倒馬峙)라 기록되어 있는 바, 이는 ‘말이 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이에 관한 전설로는 옛날에 광동리에서 우천(牛川, 쇠내)을 건너 도마리에서 도마치(倒馬峙)를 넘어 엄미리(奄尾里)를 거쳐 남한산성을 가는 길이었는데, 도마치 고개가 너무도 가파르고 험하여 말이 고개를 넘다가 여러 번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여 이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이 마을에 여우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있어 어느 도공(陶工)이 여우를 잡아 죽이자, 죽은 여우의 혼이 다시 사람을 괴롭혀서, 그 여우의 혼을 달래기 위하여 도공(陶工)이 도자기(陶磁器)로 만든 말(馬)을 여러 개 만들어 고개에 세웠다고 한다. 그 뒤로는 여우의 괴롭힘이 없어지고 이 마을 이름을 ‘도마리(陶馬里)’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화는 예전에 말(馬)이 많이 지나가는 길이어서 ‘도마리’(道馬里)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말기에 도자기를 생산하던 분원공소(分院貢所)의 공인(貢人)이던 지수식의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1893년 3월에 "도마치(道馬峙)에서 화목(火木)이 내려왔다. 장성화(張聖化)가 김성윤(金成允)과 시비가 벌어져 가마를 타고 상경하였다 한다. 춘헌에 이르러 정담을 나누고 닭이 운 뒤에 돌아왔다"하였다. 실제로 도마리에는 ‘장작골’이라는 지명도 있다.

 

 
여러 전설을 참조해서 보면 도마치는 퇴촌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으며, 분원 도자기 굽는데 필요한 땔나무를 공급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옛날 중요한 고갯길에는 서낭당이 있었고, 서낭당 안에는 흙으로 구운 말이나, 도자기로 만든 말 또는 무쇠로 만든 말을 봉안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말을 만드는 재료가 결정되었는데 성남의 판교에서는 쇳골 부근 유적에서 무쇠로 만든 말 12점이 출토되었고, 도마치에는 조선백자 도요지가 7곳이나 있었으니, 말을 도자기로 만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도마리에는 경기도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문정공(文靖公) 최항(崔恒) 선생 묘가 있다. 선생은 세종대왕(世宗大王)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 때 활동한 집현전 8학사 중에 한 사람으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많은 음운서(音韻書)를 찬술(撰述)한 학자이며, 또한 정치가로서 성종(成宗) 때에는 영의정을 지냈다. 호는 태허정(太虛亭)이다. 2004년 10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도마리 221번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00년된 느티나무가 있다. 옛날에 우물이 있었는데 사람이 빠져 죽어서 메웠더니, 거기서 이 느티나무가 자라났다는 전설이 있다. 광주시 보호수 제77호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