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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72. 원경하의 천신문답(天神問答) 


판서(判書) 원경하(元景夏, 1698∼1761)의 묘가 차남 의손(義孫)과 함께 판교의 송현동(松峴洞)에 있다. 고개 위로 소나무가 많아서 송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경하의 고조부는 원두표 장군이고, 증조부는 동부승지 원만리(元萬里), 조부는 효종의 부마(사위)인 흥평위(興平尉) 원몽린(元夢鱗)이며, 아버지는 목사 원명구(元命龜)이다. 어머니는 형조좌랑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처부는 신사철(申思喆)이다. 조상들과 장남 인손(仁孫)의 묘는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안말에 있는데 안말은 둔촌 이집(李集)이 은거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어느 날 원경하가 김상로(金尙魯)의 탐욕스러움을 미워하여 일찌기 혼잣말로 천신(天神)과 문답(問答)하듯이 말했다.
 
"김상로가 저토록 뇌물을 탐하니 재물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답하기를,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지" 하였다. 
또 묻기를,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답하기를,
"호조(戶曹)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였다. 
또 묻기를, "분명 그러합니까?" 하고 답하기를,
"반드시 그러할 것이니라" 하였다.

 

 

 


당시에 이 말이 세상에 전해져서 우스갯거리가 되었는데, 훗날 과연 그대로 되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권세 있는 사람이 막대한 뇌물을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공공연히 돈과 뇌물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김상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아내 또한 사납기로 소문났는데 전처의 자식을 매우 혹독하게 대하였고, 며느리는 아이를 낳았지만 산바라지는 커녕 먹을 것도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했다. 그러자 아들은 이 일로 스스로 징계하여 다시는 장가를 들지 않았다.
 
김상로의 누이동생의 딸이 매우 가난한 집에 시집갔는데 언젠가 김상로의 집안 잔치에 왔다가 머리 장식을 훔쳐 가지고 가서 자기 남편의 옷을 해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김상로의 아내가 이를 알고 급히 쫓아와 그것을 빼앗아 버리자, 그녀는 시댁에 부끄러워 도망하여 숨어 있다가 마침내 버림을 받았다. 김상로는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이 우리 누이동생 집안을 망쳤소."
 
김상로가 역모 사건으로 죗값을 치르게 되어 처자식이 모두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으나, 아내만 풀려나 돌아오다가 북쪽 해안에 거의 닿을 무렵 회오리바람을 만나 끝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원경하의 할아버지는 효종의 5녀 숙경(淑敬)공주의 남편인 원몽린이다. 원경하는 항상 검소하여 여윈 말에다 낡은 안장을 사용하고 옷을 소박하게 입었으므로 그가 도위(都尉 : 임금의 사위) 집안의 손자인지 모를 정도였다. 취미로 바둑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 글을 지을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한 권의 책을 편찬하는 데에 하루도 걸리지 아니하였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