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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컴퓨터 만들던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이인교 인천시의원 “만수동 주민 위해 일할 것”

1990년대 회사 815컴퓨터 차린 후 사업가 인천에 정착
JC활동하며 정치 인연…선배 의원 따라 탈당 후 10여년 정치판 떠나
“낙후된 만수동 개발과 주민 교통 편의위해 노력”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이인교 인천시의원(국힘, 만수2·3·4·5동)은 집안을 위해 월급쟁이보다 본인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 입사한 자동차회사 연구소를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지인들과 여의도에 사무실을 냈다. 전자공학 전공을 살려 주식시장 지표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증권사에 납품했다.

 

회사는 단기간에 성장했지만 잘 나갔던 시절도 잠시.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사세가 기울어 회사를 나와야 했다.

 

그는 1994년 10월 자신의 첫 번째 벤처기업 ‘815컴퓨터’를 인천에 설립했다. 1992년 인천에 자리를 잡은 지 2년 만이었다.

 

시기도 좋았다. IT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PC통신 보급과 함께 컴퓨터를 사는 가정이 많아졌다. 전국 매장만 80여 곳에 매출도 크게 올랐다.

 

이 의원은 “부품을 최대한 국산화하려 했다”며 “회사의 이름을 815컴퓨터로 지은 것도 언젠가는 모든 부품이 ‘Made In Korea’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6년쯤 지역 인맥을 만들기 위해 인천 청년회의소(JC)에 가입한다. 이후에는 남동구 JC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고, 마음 통하는 동기도 많이 사귀었다.

 

정당에 가입 시기도 비슷하다. 2002년에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인천 2030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6년 지방선거에 남동구의원으로 출마했다 떨어졌다. 이후 1년의 절치부심 끝에 이듬해 재보궐선거에서 남동구의원에 당선돼 자신의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2008년 총선에서 이원복 전 의원이 공천을 못 받자 함께 당을 나왔다. 오래 걸리지 않아 복당했지만, 그의 구의원 공천 역시 어려웠다.

 

이 의원은 지난 10년 정치판을 떠나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과 농장 체험장 사업에 매진했고 결과 역시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2020년 이원복 전 의원이 총선 공천을 받았고, 그의 사무국장으로 선거를 도왔다. 그에겐 의리를 지키는 게 사업보다 중요했다.

 

결국 정치에 다시 발을 들였고, 지난 선거에서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인교 의원은 “나는 당당하게 살았고 당당하게 정치했다. 탈당했을 때도, 10년 정치를 떠났을 때도,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내가 살아온 만수동이 잘 되게 하는 한결같은 마음이다. 낙후 지역인 만수동을 재개발과 교통 정책으로 다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조경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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