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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담쓰담, 토닥토닥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연극 ‘오펀스’

고아 형제, 중년 갱스터가 만나 꾸린 새로운 ‘가족’
남성 역할 소화해낸 여배우들…젠더 프리 캐스팅 눈길
내년 2월 2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넌 현명한 사람이야. 네 본능을 의심하지 마.”

“너는 네가 할 일을 참 잘해왔어.”

 

필라델피아 북부, 낡고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고아형제 ‘트릿’과 ‘필립’. 그 누구의 보호도 없이 오롯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든든한 응원과 위로는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연극 ‘오펀스(Orphans)’는 제목 그대로 사회에서 소외된 혹은 소외됐던 ‘고아들’의 이야기다.

 

가장인 트릿은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어릴 적 알레르기 반응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필립은 형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동생을 향한 사랑과 과한 보호심에 트릿은 필립이 문맹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살기를 강요하지만, 집밖이 궁금한 필립은 신문을 읽고, 책에 어려운 단어를 밑줄 치며 형 몰래 지식을 쌓아간다.

 

어느 날 트릿은 술집에서 부유해 보이는 중년 남성을 납치해오는데, ‘해롤드’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알고 보니 시카고 갱스터(gangster)이다. 그리고 그는 만취해 고백한다. 자신 역시 ‘고아’였다고.

 

 

“나 저 사람 맘에 들어.”(필립)

“마음에 두지 마.”(트릿)

“좋은 사람 같아 보여.”(필립)

 

고아 형제에게 찾아온 고아원 출신 갱스터.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시작된 이들의 만남은 트릿과 필립이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와 희망이 된다. 그 단초는 변화된 무대와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해롤드와 함께 살게 된 후 낡았던 형제의 집은 말끔하게 단장된다. 군데군데 찢어졌던 벽지는 새롭게 도배됐고, 오래돼 꼬질꼬질 했던 가구도 고급스럽게 바뀌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거듭난 것이다.

 

 

무엇보다 다 헝클어진 머리에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던 두 형제의 변화가 제일 눈에 띈다. 트릿은 깔끔히 빗어 넘긴 머리에 정장을 차려 입고, 필립은 풀어헤쳐진 신발 끈의 운동화가 아닌 로퍼를 신는다.

 

해롤드가 건넨 다정한 손길 한 번으로 형제는 변신한 외형보다도 훨씬 깊이 성장해나간다.

 

누구보다 강한 척하며 폭력적으로 굴던 트릿은 기댈 곳이 돼 준 해롤드의 믿음에 충동을 억제하며 자신을 통제하고 참는 법을 익히려 노력한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공존했던 필립은 “자, 우리 이제 산책할 준비가 된 것 같아”라는 해롤드의 말에 두려움에 맞서 집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납치된 순간부터 어느 때고 충분히, 쉽게 형제의 집을 빠져 나갈 수 있었던 해롤드는 그들 곁에 남아 유일한 보호자가 됐고 가족이 돼 주었다.

 

 

‘오펀스’의 특징 중 하나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남성임에도 성별과 상관없는 젠더 프리(gender free) 캐스팅이라는 점이다. 기자가 관람한 무대도 해롤드 역 추상미, 트릿 역 손지윤, 필립 역 김주연으로 모두 여성 배우가 출연한 회차였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150분간 여성이 연기하는 남성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고아로 힘들게 살아왔을 트릿과 필립, 그들의 아픔을 안아주고 보살피는 해롤드가 있을 뿐이다. 성별을 떠나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세 배우를 비롯해 해롤드 역에 남명렬, 박지일, 양소민이 무대에 오른다. 트릿 역에 최유하, 박정복, 최석진, 필립 역에는 최수진, 현석준, 신주협이 함께한다.

 

공연은 내년 2월 2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진행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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