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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영화인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104. 성스러운 거미 - 알리 아바시

 

알리 아바시 감독의 2022년작 ‘성스러운 거미’는 충격 그 자체의 영화이다. 많은 사람, 특히 무슬림에 대해 일정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경하고, 역설적으로 신선할 정도의 소재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란 사회, 특히 테헤란도 아니고 순교자의 땅이란 뜻의 종교 도시 마슈하드에서 매춘부들이 공존하고 있는 데다 그 여성들 16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히잡을 쓰고 몸을 파는 여인들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이란 사회가 종교적으로 폐쇄적이어서 윤락이라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적 강직성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지 못한다. 윤락 여성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인 문제이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는 아니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여자든 남자든, 뉴욕이든 마슈하드든, 예루살렘이든, 서울이든 모두 거리로 내몰린다. 자신이 팔아야 할 상품이 오로지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들이대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거기에 종교적 정화(淨化)란 광신의 악행이 더해지면 그 휘발성은 어디로 번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성스러운 거미’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살인자가 한 매춘부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여자는 아이에게 먼저 자고 있으라 하고 밤거리로 나간다. 여자는 공중화장실에서 립스틱을 짙게 칠하고 신발을 구두로 갈아 신는다. 스카프로 머리를 가렸을 뿐 전통 의상인 히잡을 쓰고 있지 않아 남자들은 대체로 이 여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다.

 

여자는 한 남자에게 몸을 팔고, 또 다른 남자에게 유사 성행위의 값을 받는다. 그 와중에 할머니 마약상으로부터 마약을 사 약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돈을 내라는 노파에게 여자는 “알아요. 근데 오늘 몇 탕을 더 뛰어야 할 것 같다”며“사정 좀 봐 달라”고까지 한다. 그녀는 오늘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곧 오토바이로 자신을 태우고 간 남자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한다.

 

이 여성을 포함해 이란 사회는 곧 16명의 매춘부를 살해한, 일명 ‘거미 살인마’ 이야기로 들끓는다. 영화는 처음엔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분위기인 척하지만 처참한 느낌의 오프닝 장면 이후부터는 그 같은 형식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이내 범인의 실체를 공개하고 사건의 후속 이야기들을 펼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영화로 바뀌어 간다. 놀랍게도 살인마는 아이 셋을 둔 가장인 사이드 아지미(메흐디 바제스타니)인데 그를 추적하기 위해 테헤란에서 용감한 여기자 라히미(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현장에 도착한다.

 

 

매우 흥미롭고 적나라하며 참혹한 느낌을 주는 것은 영화 속 살인마가 종교적 광신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지미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전쟁(이란-이라크 국경 전쟁)에 참여했다. 여기자 라히미의 짐작으로는 바시즈 민병대(이란 혁명 수비대급의 종교적 준군사조직) 출신으로 보인다.

 

서구 시각, 특히 할리우드 영화 감각으로 보면 일종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인 셈이다. 아지미는 종교 성지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쓰레기 같은 여자들을 일소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적 사명 의식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면서 괴물 같은 종교가 어떻게 괴물 같은 살인마를 만드는가라는 식의 논리로 단순화하는 것은 오히려 꽤 위험한 논법일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알리 아바시는 이 모든 광기의 사건이 이슬람 종교의 본질에서 온 것이라고 귀착시키지는 않는다. 그건 자칫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광기의 편견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아지드는 자신이 죽인 여자를 카펫에 둘둘 말아 둔 채 자신의 아내와 섹스하면서 점점 흥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악마성이 종교와는 사실상 무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인터뷰하러 온 여기자에게 이슬람 종교가 갖는 합리성을 역설하려 애쓰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성스러운 거미’가 주목하고 지적하며, 천착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 경직성이 만들어 낸 괴물과 이단적 살인 행위보다는 그것을 유발하게 된 정치적, 사회적, 젠더적 폐쇄성에 있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여기자 라히미의 등장 직후부터 거리에서 살해되는 여성의 문제와 이 여기자가 이란 사회에서 차별받고 억압받는 문제를 등치시킨다. 라히미는 마슈하드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차별받는다. 호텔 카운터에서 그녀는 혼자 투숙한다는 이유로 예약이 취소된다. 호텔의 남자 직원은 그녀에게 ‘머리를 가려 달라’는 부탁 아닌 명령을 하기도 한다.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경찰국장(기이하게도 느긋하고 심드렁해 보이는데)은 결국 라히미에게 너도 테헤란에서 헤프게 하고 다닌 여자 아니냐며 자신과 연애, 곧 잠자리를 하면 수사 기록을 보여 주겠다고 윽박지른다. 이쯤 되면 살인마와 경찰국장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영화를 만든 알리 아바시가 이야기하려는 지점의 끝은, 폐쇄 사회가 유발하는 중층적 모순이 결국 여러 문제의 본질을 하나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슈하드의 살인마를 잡는 것은 여성 라히미에 대한 이란 사회의 온갖 성적, 정치적,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셈이다. 라히미는 살인범 아지미를 찾아낼 것인가.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이다. 전 세계가 일종의 종교적 성전(聖戰) 논쟁으로 들끓었던 시대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또 그 같은 종교적 차이를 앞세워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을 억압하고 유린했던 그 모든 세상사가 막대한 인명 피해의 참극을 만들어 냈던 시기이다.

 

어느 것이 닭이고 어느 것이 달걀인지를 구분하려고(종교가 테러를 만들어 냈는지 테러가 종교를 더욱 극단화시켰는지) 모두 안달 나 했었고 그것이 또 다른 전쟁 또 다른 테러로 이어지게 했다.

 

 

알리 아바시 감독이 2001년 이란에서 실제로 벌어진 범죄행각을 영화로 만든 이유는 단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그 문제, 중첩되고 중첩된 사회, 정치, 국가적 모순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란 사회는 최근까지 히잡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연행된 후 의문사를 당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모셴 셰카리라는 젊은이가 처형되기도 했다. 이란의 종교적 폐쇄성은 현재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이란 국내의 사회적 모순이 중동 정세, 국제 정세와 연동되면서 모순 구조가 3단, 4단 구조로 쌓인다는 점이다. 알리 아바시 같은 감독에 따르면 그 모순을 푸는 약한 고리는 매우 구체적인 한 인간의 행위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곧 여기자 라히미의 행동 노선 같은 것. 살인마를 찾아 나서고 성추행하는 경찰국장에 대항하며 같은 기자인 남성과 어찌 됐든 연대를 하는 모습. 무엇보다 이란 사회의 그 모든 질곡(桎梏)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영화 속 여기자 라히미에게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키고 있는 셈이다.

 

알리 아바시는 이란 태생이고 스웨덴에서 자랐으며 덴마크에서 영화공부를 했다. 그의 전작은 ‘경계선’이다. ‘경계선’은 2018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탔으며 이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2022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란에서는 여전히 상영금지 영화이고 촬영은 요르단에서 진행됐다. 이란 영화인들의 투쟁은, 어찌 됐든,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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