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새우가 아닌 ‘고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사람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경기신문과 인터뷰에서 “제가 국가에 기여한 것보다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며 “이를 보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닌 국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아젠다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싸우는 국회가 아닌 일하는 국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23살 어린나이에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는 온화함과 함께 강렬한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날카로운 분석’과 ‘시대를 이끄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현재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후진국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미래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은 경제지표로는 선진국이면서도 국민 개개인은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문화를 아우르는 플랫폼 국가로 전환돼야 하고, 국회부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도전은 늘 두렵다. 그러나 도전이 역사를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나라가 돼야 제대로 된 국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광재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국회 사무총장으로서 어떤 일을 담당하나.
국회 전체 살림살이를 하는 서포터즈다. 국회가 제때 통과시켜야 할 법률과 정책을 현실이 되도록 하는 것들을 서포터하는 역할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국회입법이 96%로 압도적이어서 앞으로 선진국이 되느냐 마느냐는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호흡은 어떤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 의장이) 교육부총리와 경제부총리였을 당시 저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기도 했고, 잘 맞는 편이다. 지금은 주로 국가적 아젠다를 확실하게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또 정말 무한 정쟁을 일삼는 이 국회를 선거법 개정으로 완전한 합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새로운 길을 열어보자는 것과 법과 예산에 국회 견제 기능이 확실히 생기도록 하자는 것에 계속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이다.
-전원위원회를 비롯한 선거법 개정과 국회의원 대토론회 등의 어려움은.
일단 국가 대토론회에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사실 국회 안에서도 칸막이가 있었다. 하나의 국회로 가기 위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했고, 국책 연구기관 합동으로 토론회를 열어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때 객관적 데이터를 가지고 토론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제는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공개적인 토론(전원위원회)을 하는 등 (의원들 사이에서도) 다는 못하더라도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에 일치된 의견이 생기고 있고, 권역별 비례제도 실시와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몰표를 깨는 것, 비례대표가 국민의 선택지를 높이는 개방형으로 가는 것에 상당한 공감대를 가지는 것 같다.
-선거법 개정은 당사자 간 셈법에 따라 방법이 첨예한데.
히딩크 감독 이전과 이후에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지지 않았나. 히딩크는 선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국회도 시스템 개혁을 이루고 한편으로는 선수를 선발하는 선거법,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옛날 어느 한 기업인이 ‘국민은 1류, 지역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말을 했다. 현재 국민 82%가 국회를 불신하고 있지 않나.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3선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에 이어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고 있는데 차이점은.
청와대 생활에서는 국가를 기획하고 아젠다를 만드는 일을 했다. 한미 FTA나 용산 미군기지 이전, 평택 미군기지 확대, 반기문 UN 사무총장, 연기금의 주식투자 등 국가 프레임을 기획하는 쪽이 주였다.
국회의원으로서는 ‘경제·교육’ 두 가지에 역점을 뒀다. 처음 산자위 할 때 벤처 CEO들과 벤처육성에 관한 법을 10개 이상 만들었다. 교육 관련해서는 모든 지자체 자체 수입 10%를 교육에 투자하게 했다. 국력은 경쟁력에서 나오고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지사 시절에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실사단이 강릉에 왔을 때 실사단장 이름이 ‘아바’였다. 이때 가수 아바의 ‘I have a dream’을 틀어 실사단이 울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살려 이번 부산 엑스포 실사단이 왔을 때 여야가 한 번에 지원한다는 걸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김 의장과 함께 2030부산엑스포 유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전례를 깬 일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등 바쁜 일정에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는 비결은.
저는 ‘탐험가’ 이자 ‘혁신가’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하고 있다.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게,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각오로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또 제가 지적 호기심이 좀 많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성은.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국가지도자를 비롯해 국민들 역시 ‘어디로 가자’고 하는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국민과 지도자가 합의한 것이 없지 않나. 어떻게 보면 ‘경제 선진국, 행복 후진국’이라고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명을 창조하는 플랫폼 국가, 문명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현재 세계를 선도하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문화 플랫폼의 콘텐츠는 대한민국이 채워나가고 있다. 문화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1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산업, 경제에서는 아직도 뒤처지고 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우리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아직 2류에 머물고 있고, 1류로 진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바둑의 축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에 몰리면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없다. 다들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새우가 아닌 고래가 되면 된다. 현실에 희망을 갖고 우리 스스로 고래가 되는 길,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년이다. 지금도 그리운지.
항상 그립다.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좋은 시절, 어려운 시절, 참혹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노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은 분노할 줄 알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분이었다. 분노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말할줄 하는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나.
과거 노 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얘기했을 때 다들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보면 어떠냐. 미‧중 갈등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느냐.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 그린 국가 과제의 미완의 꿈이 있기에 더욱 그리운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국회 사무총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국가적 아젠다를 만들고, 예산을 수립해 마치 챗 GPT처럼 AI 국회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난투경기가 아닌 기록경기를 펼쳐야 한다. 기록경기를 위해서는 의원별로 지표를 만들어 공개하면 된다. 일자리, 보육, 교육, 주택, 연금, 문화생활 등 기준을 정하고 1년에 한 번씩 이를 공개하는 것이다. 국민은 이 성적표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 이렇게 된다면 정치는 난투경기에서 자연스레 기록경기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개혁 아닌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나라를 위한 7가지 지표를 만들어 1년마다 공개하면 된다. 대통령부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까지 성적표를 공개하면 대한민국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될 것이다.
[ 경기신문 = 대담 고태현 정치부장·정리 김한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