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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스스로 종말 맞은 586정치

 

오래 전의 일이다. 분당에서 책모임 할 때 당시 대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을 좌파 꼰대로 지칭했다. 그들에게는 좌파나 우파나 한물 간 ‘올드 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시각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리고 쓰라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하게 되었다. 몇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80년대의 획일주의와는 정반대의 다원주의 사회가 들어섰다. 둘째, 어떤 현상이든 종합적으로 봐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나 정의 등 굵직한 개념도 사안별로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지난 시절의 지식은 달라진 시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많이 깊어지거나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물리학 등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대의 산물인 586 정치인은 변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실용주의 시대에 걸 맞는 어젠다 설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살인적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케케묵은 민주 대 반민주 논리로만 일관한 것이다. 독재 시대가 끝 난지 오래된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에 유령을 붙들고 퍼포먼스만 해대니 누가 이들에게서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걸겠는가?

 

더욱이 586의 최고 무기인 도덕성도 땅에 떨어졌다. 부패하고 노회한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숱한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다 수사 대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두둔하기까지 한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 탄압이 아니라는 건 팩트다. 대장동 사기사건 등 대부분의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박범계 법무장관 때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게다가 상당 부분 이 대표 개인의 범법 행위이기도 하다.

 

급기야 민주당 당 대표 선거 돈 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586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닌가 한다. 대표주자 격인 송영길은 극구 부인하지만 민주당 내에서조차 위기의식이 대단한 걸 보면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송영길의 대응을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정치 탄압으로 몰아 독재 대 민주의 논리로 치환하면서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끌어 들여 “지금 한가하게 책방이나 할 때가 아니다”라는 상황인식 착오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동민, 김영춘 등 586 정치인들이 업자에게 돈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드문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국민의힘당과 무엇이 다른지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덕성 면에서 국힘당이 낫다는 여러 여론 조사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그런데도 586 정치인들은 뼈 깎는 반성은커녕 무엇이 잘못됐느냐고 항변한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무능과 부패에 눈 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는다. 이는 586이 구제불능임을 뜻한다. 고쳐 쓸 수 없는.

 

4·19 세대인 김광규 시인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통해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패하지 않았다. 정치 권력화도 없었다. 소시민이 된 그들의 타락은 그만큼 순수했던 것이다. 스스로 종말을 맞은 저 586 정치인들에 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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