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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내 욕망은 나의 것인가?

 

수도권 A도시에서 영화관을 잠시 운영한 적이 있었다. 상영관이 8개인데다 오락실과 피자전문점 등도 직영이어서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 때문인지 대표이사 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방객이 끊이지 않았다. 내방객 중 잊혀 지지 않는 부류는 단연코 투자 권유자들이다.

 

그들은 A4 용지 20~30쪽짜리 투자설명서를 들고 투자를 권유했다. 투자금은 1억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여 원 규모였다. 그런데 공통점은 투자만 하면 별 위험부담도 없이 쉽게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점이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의 투자 제안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기일이 촉박했다. 귀하에게만 기회를 주는 고수익 보장 투자인 만큼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했는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좋은 투자는 자신들이나 친인척이 아닌 사람에게 기회가 올 리 만무하다는 판단이 섰다. 아무리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투기성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투자 권유서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교과서일 수 있다. 당시 벤처기업 창업으로 큰돈을 번 청년들에 대한 미담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유행이 되다 시피 한 벤처기업 창업은 한편으로는 시대가 자극한 욕망이었던 것이다. 벤처기업은 곧 투기장이 되었다. 목적은 상실되고 수단만 남아 사기로 구속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을 쫓아 뛰어든 불나방들이 그 불에 타 죽고 만 것으로 치부된 셈이다.

 

내 욕망은 나의 것인가? 투기판에 뛰어든 건 어디까지나 내 욕망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그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시대나 매스미디어, 타인이 배태한 욕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고 있다시피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나(주체)의 욕망은 대상에 대하여 직접적이지 않다. 중개자를 통한 간접적 욕망이다. 지라르는 삼각형의 세 꼭지 욕망 구조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살아가는 개인의 욕망을 포착한다. 남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이 일그러진 욕망은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중증 질환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뉴스를 달구고 있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를 둘러싼 사기 사건도 가짜 욕망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범이 남성과 여성으로 성을 바꿔가며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엽기적이다. 하지만 사기 수법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물질적 이득을 취했기에 고전적 범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주목을 끄는 점은 다른 데 있다. 고가의 주택과 고급 외제차, 명품 백. 이는 가짜 욕망을 잔뜩 부풀어 오르게 해서 범죄를 용이하게 한 장치가 아닐까?

 

남현희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명품 등을 (주범에게) 받고 싶지 않았다고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하지만 거꾸로 이 주장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고 본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욕망이 부풀려져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남현희 씨의 욕망은 자신의 것이었을까?

 

우리는 상품이 무한정적으로 공급되는 소비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욕망은 나의 기본적인 욕구와는 무관하게 증폭돼 있어 언제든지 화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남현희 씨 사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를 보여준다. 내 욕망이 아니기에 엽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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