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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 그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맡기지 마라

 

고대 아테네의 현인들은 민주주의를 무지한 다수가 선택하는 나쁜 정치체제로 인식했다. 특히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로 규정해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는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정치체제로 보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현자를 못 알아보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잘못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택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도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독재국가들마저 모두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BC 5세기의 민주주의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진 정치체제였다. 첫째, 법 앞의 평등 둘째, 국민의 정치참여 셋째, 공직자에 대한 통제가 그것이다. 2,500여 년 전의 이론임에도 오늘날까지 그 근본 원칙은 큰 변화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이 시민들의 정치참여이다. 아테네 시민들에 있어서 정치참여는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오늘의 정치참여는 어떠한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직접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가 되었다. 국민의 뜻을 대신해 준다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지만, 주인은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결국 정치참여의 유일한 방법으로 남은 것이 바로 투표행위이다. 오직 투표만이 가장 확실하게 나의 의지를 표명하고 주권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치참여이다.

 

이번 주말부터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이미 마음속으로 지지할 후보를 선정했더라도 공약 등을 꼼꼼히 살피어 나와 우리 공동체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선정해 투표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혐오론과 정치 무시론이다.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며 그놈이 그놈이라 다 싫다는 주장처럼 허무한 말은 없다. 정치 불신은 모든 잘못은 오로지 정치의 탓이기에 그놈만 죽도록 두들겨 패서 결과적으로는 정치 무관심층을 양산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의 전략에 휘말린 탓이 크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면 결국 그 혐오의 대상이 되는 정치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생각하면 정치 불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대파 한 단 가격이 875원이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사서 먹어도, 의사들이 파업해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도 나의 삶과 무관하다면 여당에 투표하고, 반대로 이대로 가면 경제폭망, 민생파탄, 평화위기와 민주주의 파괴로 희망 없는 대한민국이 될 것을 우려한다면 야당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이다. 어떤 이슈가 중요한지는 국민 개개인의 판단 몫이지만 분명한 점은 나의 미래를 남의 선택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테네의 현인들도 상상치 못했던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민이 생겼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나의 손에 달려있음을 직시하고 정치참여의 현장으로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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