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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원더랜드가 실패한 이유, 그 안타까움에 대하여

153. ‘원더랜드’ 감독 김태용

영화 ‘원더랜드’가 좋은 영화라는 것,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신하균에게 하는 대사, 곧 “나 너 착한 거 안다”처럼 따뜻하고 착한 작품이라는 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또 동의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전설의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가 얘기한 대로 좋은 영화란, 좋은 장면 세 개쯤이 있는 작품이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적용할 때 ‘원더랜드’는 세 개 정도는, 아니 그 이상의 좋은 장면으로 차고 넘치는 작품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17일 현재 전국 570,347명을 모은 수준으로 이 정도면 시쳇말로 ‘폭망’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더랜드’의 이야기 축은 세 개이다. 아니 네 개이다. 중심은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이끄는 AI 여행사 원더랜드 팀이다. 이 둘은 죽어 가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들 존재가 지닌 모든 정보를 사이버 상에 심어 놓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할 사람들, 그의 존재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도록, 그것도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고도의 대화 능력을 엔코딩하는 일을 한다. 영화 ‘원더랜드’는 AI 정보 커뮤니케이션 사설 업체 원더랜드의 작업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를 그린다.

 

 

해리-현수 팀이 관리하는 AI 존재는 세 개이다. 하나가 바이 리(탕 웨이)이다. 그녀는 매우 바쁘게 살았던 회계 변호사였고 하나 밖에 없는 딸 아이를 엄마(鲍起静, 파우 희 칭)에게 내팽겨쳐 둔 채 살다가 후회 끝에 사망한 상태이다.

 

바이 리는 현재 아이의 태블릿 안에서만 존재하며 이제는 고고학자로 살아 간다. 바이 리의 어릴 때 꿈이 고고학자였다.

 

 

또 한명은 정인(수지)과 태주(박보검) 커플이다. 둘은 스튜어디스와 스튜어드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 태주는 현재 식물인간, 코마 상태이다. 정인은 그런 그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놓고 매일 아침 그가 깨우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AI 태주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스마트 폰 안의 태주는 우주 비행사이다. 그가 돌아 오지 못하는 이유는 장기간 동안 우주 정거장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은 진구(탕준상)란 젊은이이다. 갓 청소년기를 지난 진구도 죽었다. 그를 혼자 힘으로 키운 할머니(성병숙)는 AI가 돼서도 끊임없이 못되게 구는 손자의 뒷바라지를 이어 나간다. 할머니는 손자가 살아 있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샌다.

 

김태용 감독은 이야기의 중심을 탕 웨이 쪽에 기울여 놨다. 나는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결정적 패착이라고 봤다. 영화 전체를 주도하는 것은 수지-박보검 에피소드가 맞았을 것이다. 그들이 젊어서도 아니고, 스타급 배우들이 보여 주는 러브 스토리가 애틋해서도 아니며, 수지와 박보검이 초절정 인기를 모으는 스타들이어서는 더욱 아니다.

 

이 둘이 그려 나가는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AI 시대의 모든 난제이자 궁극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제인 ‘미래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하게 묻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자 정인이는 실제 남자 태주가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AI 태주와 연애와 사랑을 이어 나간다. 물론 그녀는 그의 손길이 그립고 그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싶은 실제적 욕망에 시달리지만 그를 매일처럼 손아귀에 쥐고 살 수 있다는(그녀는 태주를 핸드폰 안에서 넣어 놓고 늘 꺼내 본다.) 현실을 넘어 서지 못한다.

 

 

정인이의 일상을 뒤흔드는 화산 폭발과도 같은 일은 병실에서 코마 상태였던 태주가 깨어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제 정인에게는 태주가 둘이 된다. 자 그렇다면 정인은 깨어난 인간 태주를 새롭게, 더욱 열렬히 사랑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다소 손쉽고 편리한 AI 태주와의 일상을 더 귀중하게 생각할 것인가. 어쩌면 영화 ‘원더랜드’가 이 이중배상과 같은 문제, 곧 현대인이 지닌 정체성의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했다면 보다 더 놀라운 작품이 됐을 공산이 크다. 김태용은 작가주의적 상업영화 감독으로 다시 한번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 부분에 ‘베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는 투자와 제작자 쪽에서 안전한 영화를 요구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은 복잡한 생각을 요구하는 작품을 싫어한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분명 생각을 비비 꼬이게 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귀신같이 ‘고급스러운’ 내용은 알아본다. 대중은 무식한 척 꽤나 지식인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 대중관객들은 늘 앞으로 나아 가고 있으며 ‘원더랜드’는 오히려 관객의 의식 수준보다  한 걸음 더 처진 행보를 보인 셈이 됐다. 그것이 실패의 이유이다.

 

영화의 심도를 더 깊게 하는 방법으로는 AI 존재가 실제 인간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얘기까지 이어 가게 하는 것이다. 태주가 태주를 만나면 세상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공지능의 존재가 그 인공의 지능이 과다하게 많아지게 되면 어떤 일을 벌이는가는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2004년 영화 ‘아이, 로봇’(2004)에서 이미 한번, 그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보여 준 바 있다. 사실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러한 얘기를 기반으로 한 전쟁 액션 영화일 뿐이다. 알렉스 가랜드가 만든 수작 ‘엑스 마키나’(2015)도 AI 지능이 인간보다 높아졌을 때의 불안하고 불길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과학철학자이자 SF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의 이론을 영화로 구현한 것이다. 로봇 3원칙이란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복종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이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이 세 가지가 섞이면 매우 이상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해할 수 있게 된다. ‘원더랜드’가 그런 얘기까지 해냈다면 엄청난 능선을 넘어서는 작품이 됐을 것이다.

 

 

적어도 탕 웨이의 AI는 태블릿 밖으로 나와 홀로그램 정도로라도 구현됐었으면 좋았을 법 했다. 홀로그램 인간은 영화 리들리 스콧 영화 ‘블레이드 러너2049’에서 그 레퍼런스(일례)를 선보인 바 있다.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는 집으로 오면 자신의 지친 몸을 AI로 만들어진 매혹적인 여성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에게 맡기고 위로를 받는다. ‘원더랜드’의 바이 리도 딸아이에게 홀로그램으로 등장하거나 아예 로봇으로 나오는 것이 더 그럴 듯했을 것이다.

 

 

한국계 미국 감독 코코나다의 2022년 영화 ‘애프터 양’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가정교사이자 베이비시터인 양이란 존재(저스틴 H. 민)가 노후화되고, 고장을 일으키면서 겪게 되는 한 가정의 이야기였다. ‘원더랜드’는 다른 영화들이 거기까지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아웃 오브 데이터’의 얘기로 일관했다. 세상 인식에 대한 오류, 그 부조화가 이 영화와 관객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한 셈이다.

 

평론의 3원칙 중 하나는, 평론은 감독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이 그 원칙을 지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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