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운 이웃부터 낯선 이까지, 우리는 타인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들에게 쏠리는 관심은 유독 강렬하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사소한 언행까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으로 변한다. 문제는 이 관심이 일정한 선을 넘어설 때다. 호기심이 감시와 통제의 형태로 변질될 때, 타인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자산’처럼 취급된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인간 심리의 깊은 층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평가한다. 비교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열등감이나 질투로 이어진다. 공인의 삶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흔들릴 때 은밀한 안도감을 느낀다. 성공한 이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자신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공인의 삶은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서사’가 되기에, 성취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실수는 철저한 반면교사로 소비된다.
관심이 감시로 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의 투영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인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특정 인물을 응원하며 희망을 투영하고, 그들의 서사가 기대를 충족시킬 때 대리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기대와 어긋나는 순간 실망은 분노로 이어진다.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그들이 살아가길 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이 감정의 배출구가 된다.
이는 일상의 불만과 좌절이 해소되지 않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실의 문제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지만, 공인의 논란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특정 인물에게 비난이 집중될 때, 대중은 하나의 분명한 원인을 발견한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정치적 무력감, 경제적 불안, 개인적 결핍이 쌓일수록 공인을 향한 감정적 투사는 더욱 거세진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못하고, 대중이 논평하고 개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공적인 위치에 있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제한 없이 소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선택과 실수가 집단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정당한 공론이라 보기도 어렵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결국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남의 삶을 소비하는 시간만큼, 자기 삶의 균형을 잃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 잣대가 언젠가는 자신을 향할 것이다. 오늘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문화를 방관한다면, 내일 타인의 평가 속에 나의 삶이 놓일 수도 있다.
관심의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공적 비판과 사적 간섭을 혼동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감정 해소의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회는 결국 자기 삶을 중심에 두지 못하는 개인들로 구성된다.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 무엇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질문하고 점검해야 할 때다.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삶 또한 지키고 잘 꾸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