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서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원주민과 사업시행자 간의 상생 합의 파기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원주민 측은 생계 지원 방안을 담은 공증 합의서가 사전 협의 없이 파기됐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시행자 측은 “합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효력을 잃은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24일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문제의 발단은 2021년 9월 사업시행자인 용인일반산업단지㈜와 원주민 대표기구인 연합비상대책위원회(이하 연합비대위)가 체결한 공증 합의서다. 공증번호 2021년 제1050호로 등록된 해당 문서에는 제19조를 통해 수용민 생계조합에 부대사업을 수의계약 또는 독점계약 방식으로 부여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주민들의 생계 기반을 고려한 상생 협약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합비대위는 “시행자가 사전 협의나 공식 통보 없이 합의서의 효력을 부정하고 사실상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는 수차례 공문을 통해 이행을 촉구했지만, 시행자는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상영 연합비대위 위원장은 “공증까지 받은 문서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법적·도덕적 책임이 수반되는 공식 문서”라며 “일방적 해지는 절차 위반일 뿐 아니라 주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원삼면 주민 A씨는 “우리는 땅도 잃고 일터도 잃었는데, 최소한의 생계 대책이라던 약속마저 이렇게 무시당하니 배신감이 크다”며 “대기업은 들어와도 주민은 떠나야 하는 현실이 상생이냐”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합의서는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유효한 문서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2022년 1월까지 비대위가 착공 협조에 응해야 보상과 지원이 진행되는 구조였지만, 당시 실사 등 주요 행정절차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결국 효력은 소멸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시행자는 이후 원삼 지역 내에 새로 구성된 ‘원삼 협의자 조합’과 유사한 조건으로 합의서를 체결했으며, 이 조합을 통해 착공과 보상은 모두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합비대위 측은 “공증 문서의 해지는 단순한 내부 판단으로 처리할 수 없으며, 법적 절차와 정당한 해지 사유가 명확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시행자에게는 합의 파기 철회 및 제19조 이행을 공식 요구하는 질의서를 발송한 상태다.
도시계획 및 공공갈등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민원이나 오해 수준이 아닌,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를 시험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필연적으로 지역주민의 희생을 수반하는 만큼, 이를 상쇄하는 상생 약속은 법적 효력과 함께 도덕적 신뢰 기반이 되어야 한다”며 “공증 합의서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행정과 기업의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