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손끝이 시려올 때면 프랑스 사람들은 뱅쇼 한 잔을 찾습니다. 레드 와인에 오렌지와 계피, 정향을 넣어 따끈하게 데워 마시는 겨울의 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김 오르는 컵을 손에 꼭 쥐고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겨울의 낭만입니다. 하지만 낭만이 꼭 유럽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추위뿐 아니라 마음까지 녹여주는 겨울의 ‘위로주(慰勞酒)’가 있으니까요. 바로 전주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온 모주(母酒)입니다.
모주라는 이름은 분명 ‘술’이지만, 실제로는 알코올을 충분히 증발시킨 따뜻한 약차에 가깝습니다. 막걸리에 대추, 생강, 계피, 감초 등 약재를 넣어 오랜 시간 달이면, 도수는 낮아지고 풍미는 더욱 깊어잡나다. 추운 날 한 모금만 마셔도 속이 편안해지고 몸의 긴장이 천천히 풀어지지요. 전주 콩나물국밥집에서 해장술이 아닌 ‘해장 음료’로 모주 한 잔을 내는 풍경이 익숙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주의 유래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술을 지나치게 좋아해 건강이 상했던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막걸리를 오래 끓여 알코올은 줄이고 약재의 효능을 채워 건넸다는 이야기. 술을 완전히 끊게 할 수 없어도 아들의 몸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모주(母酒)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뱅쇼와 모주는 모두 ‘술을 끓인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태어난 배경은 사뭇 다릅니다. 뱅쇼가 차가운 유럽 겨울을 견디기 위한 향긋한 시즌 음료라면, 모주는 일상 속에서 술을 약처럼 활용해 온 한국 생활문화 산물입니다. 뱅쇼가 겨울의 낭만을 담는다면, 모주는 겨울의 위로를 품습니다.
모주는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막걸리 1~2병에 대추, 생강, 계피를 넣고 센 불에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30분에서 1시간가량 은근하게 달이면 됩니다. 감초나 황기, 갈근 같은 약재가 있다면 함께 넣어도 좋습니다. 특히 대추는 깨끗이 씻어 먼저 끓인 뒤 껍질과 씨를 제거하고 과육만 사용하면 한층 부드러운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설탕이나 꿀로 단맛을 조절하고, 배나 사과 등을 넣어 풍미를 확장해도 좋습니다. 따뜻하게 마시면 속이 편안하고, 식힌 뒤 냉장 보관했다가 다시 데워 마셔도 괜찮습니다. 요즘에는 차게 식힌 모주에 얼음을 띄운 ‘모주 아이스티’로 즐기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해장에 좋다고 알려진 모주는 실제로도 폴리페놀, 코직산 등 항산화 성분이 검출되며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지혜가 과학적 근거를 만나며, 더욱 매력적인 겨울 음료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술이 귀했던 시절, 버려질 수 있는 술지게미에 약재를 더해 사람에게 이로운 음료를 만들어낸 조상들의 지혜와 검소함, 그리고 서로의 건강을 챙기던 따뜻한 정(情)이 모주 한 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술을 넘어, 한국인이 겨울을 견뎌온 방식이자 정(情)을 나누는 문화인 셈입니다.
겨울이 깊어지는 요즘, 뱅쇼의 낭만을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약재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모주 한 잔을 직접 끓여보면 어떨까요. 대추의 달콤함과 생강의 알싸함, 계피의 포근한 향이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녹여줄 것입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위로가 작은 컵 안에 담겨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