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다. 여기에 2030년대 AI·우주 산업 경쟁까지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의 핵심에는 인구 감소라는 냉혹한 현실이 놓여 있다. 이제 인구 문제를 국경과 국적, 혈연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좁은 접근을 넘어 한반도 밖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를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미래 자산으로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 재외동포 인구는 180여 개국에 걸쳐 700만~750만 명으로 추산된다. 1952년 9개국 57만 명, 1968년 68개국 64만 명, 1978년 97개국 127만 명, 1995년 136개국 52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에는 ‘재외동포 1천만 명 시대’도 과장된 전망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재외동포의 기원’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이다. 학계에서는 1864년 러시아 연해주로의 첫 집단 이주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기준은 한민족 이산(離散)의 역사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고구려·백제 멸망 이후 발해와 일본, 당으로 이동한 유민들, 신라와 고려 왕조 교체기 동안 정치·사회적 격변을 피해 떠난 이주민들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근세 동북아의 중대한 사건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과정에서 일본과 청으로 끌려가 끝내 귀향하지 못한 수많은 조선인 포로와 그 후손들은 충분히 재외동포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민족의 이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그 규모 또한 매우 방대하다.
근·현대사로 들어서면, 일제강점기와 분단 과정에서 한반도 밖으로 떠난 다양한 유형의 한국인들에 더해, 이주 4~5세를 거치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인 후손들까지 포함된다. 이들은 공식 통계에 잘 잡히지 않으며, 본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한 파악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오늘날 전 세계에는 우리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광범위한 한국계 인구가 존재한다.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국내외 한국인 사회는 이 거대한 역사적·문화적·혈연적 공동체를 어디까지 ‘우리와 뿌리를 공유한 공동체’로 인정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글로벌 시대의 미래 전략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와 직결된 과제다.
아일랜드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인구 540여만 명, 해외 인구 300여만 명의 아일랜드는 2015년 헌법 개정을 통해 전 세계 약 7천만 명에 이르는 ‘아일리시 디아스포라’를 공식적인 정책 대상으로 포용했다. 혈통의 정도나 언어 능력, 국적 보유 여부, 국내 거주 여부로 경계를 나누기보다 ‘뿌리가 아일랜드에 있다면 모두 아일리시’라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외교·경제·문화·산업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힌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국력이 단지 국민국가의 인구 규모가 아니라, 국가가 어디까지 공동체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한민국 역시 기존의 접근만으로는 한민족의 역사적 이산성과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 정체성은 희미하지만 뿌리 찾기를 원하는 동포 차세대들, 기억의 형태로만 관혼상제 문화를 간직한 한인 후손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연결고리를 모색하고 있는 잠재적 한국계 인구와 국내 이주민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유연한 ‘글로벌 코리안 디아스포라’ 개념이 필요하다.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20세기적 질문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은 누구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 사업이나 예산의 확대, 부·처·청·위원회의 신설이 아니라, 이를 관통하는 국가 차원의 디아스포라 전략을 서둘러 마련하는 일이다. 한인회장대회나 한상대회, 각종 모국초청연수, 한글학교와 차세대·문화예술단체 지원, 평통 해외조직 확대는 각각 의미가 있지만, 미래 국가 전략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제한적이고 단절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 차원의 지역 기반 글로벌 후손 네트워크 구축, 국내 주요 대학·학회·연구소의 동포 교육·이민 학위과정 운영, 그리고 K-팝·드라마·영화·뷰티·푸드·IT·한국어로 대표되는 한류(K-Culture) 자산 육성 역시 하나의 전략 틀 안에서 함께 설계돼야 한다.
인구 절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자체, 국회와 교육계, 민간과 기업이 먼저 손을 내밀 때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부담스럽거나 애매한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제 “한반도를 떠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연결할 것인가”라는 기존 문제의식을 넘어, “국경과 국적, 혈연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 존재하는 전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향후 국가교육과정에도 이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 전반에서 새로운 글로벌 지평을 열고, 21세기 세계 질서 속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