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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악마가 재능을 가졌을 때

 

대중문화 산업에서 '재능'이라는 단어는 종종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만능 치트 키로 활용된다. 할리우드의 아미 해머나 에즈라 밀러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범죄와 스캔들로 대중에게 배신감을 안긴 수많은 스타의 사례는 늘 기묘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스크린 위에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흡인력,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수익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 도덕적 흠결마저도 '값비싼 개성'으로 치환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대중성이라는 자산이 과연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공정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기어이 지켜내야 할 절대적 가치인가?

 

그동안 업계는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아야 한다'라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하지만 현대 대중문화는 순수 예술과 달리 대중의 지지와 정서적 유대를 자양분 삼아 작동하는 상업적 시스템이다. 배우의 인지도는 곧 권력이며, 우리가 지급하는 관람료는 그 권력을 유지해 주는 물리적 기반이 된다. 범죄를 저지른 배우의 작품을 비판 없이 소비하는 행위는 단순히 콘텐츠를 즐기는 행위를 넘어, 그가 저지른 악행이 시장 가치라는 장막 뒤로 숨을 수 있도록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가 공동체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저버렸다면 그가 누리던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역시 즉각 반납되는 것이 상업적 정의이자 시장의 순리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은 '기회의 비대칭성'이 초래하는 현실이다. '검증된 흥행 카드'라는 이유로 문제의 인물들에게 반복해서 면죄부를 주는 시장의 관행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수많은 성실한 연기자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는 이들의 스타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그들보다 더 신선하고 건강한 매력을 가진 잠재적 스타들은 발견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져간다. 이는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인기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신호를 업계 전체와 미래 세대에게 전파하는 꼴이다.

 

결국 악마의 재능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예술에 대한 편협한 검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문화 시장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주체적인 소비자 주권의 행사다. 냉정하게 말해,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배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성 스타들에게 부여했던 과도한 상징성을 거두어들일 때, 비로소 자본의 게으름 때문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얼굴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이 마련된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문제가 된 인물의 연기에서 억지스러운 감동을 짜내는 것보다, 인간적 예의와 성실함을 갖춘 이들의 활약을 응원하는 것이 공동체의 문화적 품격에도 훨씬 유익하다.

 

이제 제작 현장과 자본은 '익숙한 악인'을 캐스팅하여 위험을 회피하려는 관성적 안일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대중 역시 그들이 제공하는 일시적인 유희가 결코 공짜가 아님을, 그것이 누군가의 눈물과 이름 없는 배우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세워진 신기루임을 직시해야 한다. 재능이 도덕적 치외법권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더 가치 있고 윤리적인 곳에 시선과 비용을 투자할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더 맑고 공정한 대중문화의 토양을 일궈낼 것이다. 악인의 재능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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