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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사과는 패배 아닌 용기

 

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친구의 무례한 태도로 마음이 몹시 상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일을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참아 넘겼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전화를 했지만 정작 전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너스레만 떨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는 그리도 끄집어내기 힘든 단어였을까?

 

사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행위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주 지연되고 회피된다. 우리는 변명을 먼저 떠올리고, 상황을 설명하며, 때로는 상대의 오해라고 퉁 친다. 사과를 미루는 동안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간다. 그렇다면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성격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구조적 문제일까?

 

사과가 어려운 첫째 이유는 자아의 방어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잘못했다”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자아 이미지-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에 흠집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처럼,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와 부인을 먼저 선택한다.

 

둘째 이유는 사과를 패배로 여기는 문화일 것이다. 우리는 은근히 사과를 지는 것으로 배웠다. 먼저 사과하면 관계의 주도권을 잃고, 도덕적 약자가 되며, 더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헤겔의 ‘인정투쟁’ 개념을 빌리자면, 인간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받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 사과는 이 투쟁에서 한 발 밀려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 대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도 알잖아!” 같은 말을 선호한다. 이는 책임을 나누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과를 유보하는 우유부단하고 비겁한 행위다.

 

셋째 이유는 우리가 사과의 의미를 ‘잘못에 대한 심판’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의 본질은 과거 행위의 단죄라기보다 미래를 선택하는 긍정의 행위다. “당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만이 인간행위의 불가역성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사과는 바로 그 용서의 문을 여는 첫 단추다. 과거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더 크게 자책한다. 그 결과 사과 대신 침묵이나 거리 두기를 선택한다. 이는 무책임하다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도덕적 부담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은 책임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해석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사과는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은 사과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사과는 자아의 붕괴가 아닌 자아의 확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과를 너무 큰 일로 받아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사과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당신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약속. 따라서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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