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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장대한 분노’를 목격하며

 

2월 28일,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중동의 포화는 우리가 발 딛고 있던 세계를 근저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테헤란 상공을 가르는 정밀 유도 미사일과 이란 최고 지도부의 사망 소식은 수십 년간 국제 사회를 지탱해 온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적 수사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었는지를 폭로한다. 특히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워온 평화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것처럼 느낀다.

 

이번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인류가 공유해온 낙관주의적, 합리주의적 역사관의 완전한 파산을 의미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반세기 가까이 중동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체제가 일주일 만에 해체 단계에 접어든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폭력이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임을 증명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 즉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은 포화와 함께 전장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날것의 현실주의이며, 이는 비교적 평화로운 탈냉전기에 태어나 성장한 세대에게 ‘세계의 영구적 불확실성’이라는 실존적 과제를 던진다. 이제 미래는 차곡차곡 계획하고 쌓아 올리는 대상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폭격이 내일 아침 나의 자산과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초연결 시대의 위험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투명하게 실시간 중계되는 동시에 이불 속에서 안전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상흔을 남긴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을 콘텐츠로 휘발시킨다. 원하든 원치 않든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폭발 영상과 미사일 이미지 앞에서 감각이 마비된다. 타인의 고통이 데이터와 이미지로 치환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느끼는 무력감은, 곧 다가올 경제적 타격을 넘어 우리 세대에 깊은 냉소주의를 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한 미국이 중동에 전력을 집중하여 발생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공백은 지금껏 누려온 평화가 당연한 것이 아닌, 막대한 비용과 국제 정치의 흐름에 기댄 신기루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세계는 우리에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얼굴을 빌려 외친다.

 

‘서사시적인(epic) 분노(fury)’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방향은 폭력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적임을 선언한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흐름 아래 개인의 삶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것은 한 국가의 정권뿐만 아니라 그동안 믿어왔던 ‘안전한 세계’라는 환상 그 자체다. 이 시대의 사명은 공포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을 응시하며 변해버린 문법 속에서도 나의 일상을 지탱할 삶의 의미를 확보하는 것이다. 역사는 다시 핏빛 잉크로 쓰이고 있고, 이제 우리는 그 기록의 관찰자이자 작성자로서 어떻게 이 세계를 살아내야 할 것인가를 새로이 사유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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