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무늬 /이선유 누가 다녀갔을까 연둣빛 나뭇잎에 새겨진 상형문자 쓰다 지운 흔적의 필체가 둥글다 은밀한 식탐에 숲은 얼마나 진저리를 쳤을까 잎맥이 끊어진 자리마다 어느 미물의 한 끼 식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오월의 빗방울이 찢어진 페이지를 읽고 또 읽는다 구멍으로 모음 하나가 또르르 구른다 이가 빠진 잎사귀들의 안간힘, 상처가 힘이다 잎사귀를 닮은 노모의 낡은 팬티 빨랫줄 집게가 늘어진 허리를 물고 있다 햇빛에 드러난 구멍들 본래의 문양인 듯 태연하다 내 옆구리 어디쯤 접혀있는 얼룩들 그때 온몸으로 진물을 흘렸다 가만히 꺼내보면 상처 위에 밀어 올린 꽃이 더 향기로웠다 상처도 아물면 초록의 무늬가 되었다 연둣빛 새싹이 넓어지면서 초록 잎사귀로 자라간다. 그 잎사귀에는 ‘쓰다 지운 흔적의 필체가 둥글’게 남아 있다. ‘은밀한 식탐’을 가진 ‘어느 미물의 한 끼 식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연두와 초록은 신선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런 연
온갖 험한 말들이 넘쳐난다. 누가 무엇을 했네부터 무슨 의혹이 있네, 누구한테 특혜를 줬네 등등. 일단 뱉어놓고 보자는 의도가 뻔히 눈에 보이는 ‘아니면 말고식’의 변함없는 레퍼토리가 또 시중을 떠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날카로운 말의 비수가 허공을 찌른다. 아, 또 선거철이 됐구나가 새삼 느껴진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이 낯설지 않다. 그나마 이 정도는 늘상 봐왔던 것이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지만, 가족에 사돈에 팔촌까지 허락도 없이 가져다 걸고 넘어지는 건, 최소한의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비껴나도 이미 한참 비껴난 지 오래된, 말 그대로 도를 넘은 무책임의 극치다. 안쓰럽다 못해 딱할 정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순진함의 의문은 오로지 당하는 이는 물론 원하든 원치 않든 지켜보아야 하는 관전자의 숙명이 됐다는 것도 참 어이없는 일이다. 선거는 승자독식이라는 게임의 룰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수십년의 준비를 거친 인내를 시작으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시대적 상황, 또 다양한 조건과 요청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자기 이름 석자를 내걸고 세상에 나선 것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겠다&rs
벌써 아카시아가 피는가 싶더니 지고 있다. 상가를 벗어나 조금만 외곽지대로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카시아가 향기로 유혹한다. 개구쟁이 친구들은 가시가 날카로운 나무에서 꽃을 따 꿀을 빨아먹기도 했고 여자애들은 하나만 달라고 졸라서 먹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데 나만 곧바로 뱉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은 달고 향기롭다고 하는 꽃에서 비린내가 났다. 날콩을 씹었을 때처럼 비린 맛이 역해서 한참이나 퉤퉤 소리 나게 침을 뱉고 물로 입을 헹궜다. 줄을 맞추어 나란히 달린 잎으로 행운점을 치는 것도 재미있었다.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잎을 한 장씩 떼는 데 마지막 남은 잎이 된다면 이루어지는 확률 50%의 점이었다. 엄마가 시장에서 맛있는 걸 사온다, 안 사온다. 오늘 선생님이 숙제검사를 한다, 안 한다 같은 아주 미약하기 짝이 없는 바람이었지만 아카시아 잎이 몇 장 남지 않을 때부터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된다는 차례에 잎을 남기기 위해 끝 부분을 손톱으로 꼬집어 조금 떼어내면서 안 떨어진다고 다시 한 번 떼면서 행운을 조작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동네 젊은 엄마들이나 서울서 오는 언니
5월 가정의 달이 마무리 되어가서 이제 여름 휴가철이다. 핵가족화 되어가고 나날이 바빠지는 요즘 시대에 가정의 달 행사와 여름 휴가철을 빌어서라도 가족을 한번이라도 더 돌아보게끔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을 좀먹는 범죄가 있다. 바로 가정폭력이다. 가정폭력은 가장 폐쇄적이고 재발률이 높은 범죄이다. 2017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사람의 비율은 겨우 1.7%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른 형사법규 위반보다 폭력에 대한 법적 죄의식이 낮고, 단순한 가정사(家庭事)로 치부되어 주변에서 관심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고하는 본인이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통 우리는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3호에 따라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정신적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명예훼손, 모욕, 강간, 추
최근 경찰을 소재로 한 tvN 드라마 ‘라이브’가 방영되면서 지구대 경찰의 열악한 현실과 고달픈 일상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라이브 드라마 속 경찰관 은수는 국민을 지킬 의무만 강조하고 경찰 자신은 지켜주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대체 누가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라고 외쳤다. 이는 현재 우리 경찰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총기, 테이저건을 사용하여 제압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총기와 테이저건을 사용하는 경찰관을 본 적이 없다. 왜인걸까? 테이저건, 총기를 사용해서 제압하는 과정에서 제압당하는 사람이 부상을 입으면 인권침해, 독직폭행, 직권남용이라는 이유로 진정과 조사를 당한다. 테이저건과 심지어 수갑을 사용한 후에도 왜 경찰장구를 사용했는가에 대한 보고서도 기재하여야 하는 등 절차도 까다롭다. 테이저건과 수갑을 잘못 사용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감찰에 민원이라도 제기되면 과잉장구사용이라고 징계를 당한다. 그러니 장비를 사용해서 제압하기 보다는 오히려 폭행과 모욕을 당하고 역으로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 체포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2017년
3년 6개월 전 교통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측 삼성화재와 구상금 소송이 있었다. 출장강의 수입이 적어서 책임보험만 들고 다니는데, 부산에 강의를 갔다오는 길에 졸음운전으로 앞차를 스치는 사고가 났다. 필자의 보험사는 대인대물보상이 마무리됐다고 전화했는데, 2년 반이 지나 초과금을 내라는 전화가 왔다. 교통사고 정보를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의심돼 “소송을 하라”고 했다. 소장(訴狀)을 보니 3명이 타고 있어서 치료비가 책임보험 한도를 넘었다. 그런데 178만원의 구상금이 적어서인지 보험사가 나에게 구상금 안내나 변제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냥 법률회사로 넘겨버린 것을 알았다. 2년 반 만에 전화를 건 그 사람이 삼성화재 직원이 아니라 법률회사 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보험사들이 소액 구상금을 관행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소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원금에 이자를 붙이고 소송비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으니 보험사는 이득이다. 하지만 매일 운전하며 살아도 수입이 적은 이들이 입을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는 실로 크다. 법원의 소장을 받은 책임보험 가입자들은 “소송하면 소송비를 내야하며 변제가 늦으면 년 15% 이자까지 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제22회 수원연극축제는 대성공이었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경기상상캠퍼스(옛 서울대 농대)에서 ‘숲 속의 파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수원연극축제를 비롯, 지역 축제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행사장인 도심 속의 숲 경기상상캠퍼스에는 연일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밤늦게까지 공연을 즐겼다. 나이든 부모와 어린아이를 동반해 편안하게 돗자리에 앉은 가족과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나무에 기댄 연인, 삼삼오오 모여든 생기발랄한 청소년들… 초여름의 숲속 행사와 잘 어울렸다. 숲 속에는 별다른 무대를 설치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공연장을 비롯, ‘쌀의 독백’ 등 전시 작품을 곳곳에 마련해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또 푸드 트레일러와 푸드 트럭, 행사장 인근 서둔동 지역주민들이 마련한 먹거리 공간도 들어섰다. 교통이 불편한 서수원 호매실지구에서 온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셔틀버스도 준비했다. 주최 측의 배려가 돋보였다. ‘인간모빌’ 등 해외공식참가작 6개 작품, ‘불의 노래’ 등 국내 공식참가작 14개 작품, 수원연극한마당 등 시민프린지, 시민체험 프로그램 숲 속의 작은 무대 ‘나도 예술가’ 등 총 37개 작품, 89회 공연
남북 정상이 전격적으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의로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방안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전 회담결과를 직접 발표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어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피력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를 할 경우 미국에서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한 신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전격적인 만남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통보는 김계관·최선희 두 북측 외무성 부상이 드러낸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을 이유로 들었지만 북한이 이에 대해 언제든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음으로써 남북 정상의 만남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중재역할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던 이면에는 아예 대화의 판을 깨려 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당초부터 대두되기는 했다. 트럼프의 협상기술이었다는 예상은 북한의 반
6·1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마감된 결과, 경기지역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여성후보는 모두 7명이었다. 이는 지난 6대 지방선거 때와 비슷한 규모로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1명, 자유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2명, 무소속 1명 등이었다.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 내 31개 시·군의 단체장 선거에 나선 후보는 모두 103명으로 이중 여성후보는 7명이다. 지난 1995년 1회 선거 때는 1명, 2∼3회 각 2명, 4회 5명, 5회 3명, 6회 8명의 여성후보가 시·군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 역대 도내 시·군 단체장 선거에서 여성후보가 승리한 사례는 지난 1995년 1회 선거 당시 광명시장 선거에 출마한 전재희 후보와 2014년 6회 선거에 나섰던 신계용 후보 등 두명 뿐이다. 나머지 여성후보는 각 지역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에서 성남에선 은수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수원·과천·이천에서는 각각 정미경·신계용·김경희 후보가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고양과 파주에서는 김필례·권종인 후보가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과천에서는 안영 후보가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기도의원(비례대표 제외) 선거에는 3
“봉사 임하는 열정, 현역 못지 않습니다” ■ 패기 넘치는 헌병전우회 소속 봉사자들 ○…“사회를 위해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를 하는 것에 그 무엇보다 기쁘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사회가 필요하면 어디든지 현역보다 더 패기와 열정을 담아 봉사에 임하는 헌병전우회 소속 봉사자들의 이구동성. ‘2018 수원화성돌기 행사’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이목을 끈은 멋스러운 복장과 절도있는 행동으로 무사히 행사 진행을 도운 헌병전우회 소속 봉사자들. 헌병전우회 소속 이기호씨는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곳에서 아이들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할 수 뿌듯하다. 이처럼 좋은 행사에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몸이 나이가 들어도 패기 만큼은 현역 못지 않다”고 밝히기도. “우정·협동 배우는 좋은 체험의 장” ■ 최다 참가학교 수원 화홍중학교 ○…수원 화홍중학교가 제14회 수원화성돌기 최다 참가학교의 영광을 안아. 2012년부터 매년 수원화성돌기에 참가한 화홍중학교는 올해 전교생 173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