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서 회식이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딸은 야간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무얼 살까, 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고사리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샀습니다. 까만 비닐봉지에 세 가지 나물을 담고 9000원을 계산하는 순간에도 저녁메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추장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태양초 고추장(1.8kg)과 다담 된장찌개양념(530g), 마파두부 양념소스(130g)와 꽁치통조림을 계산대에 올리고 2만 6660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막혔습니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와 사람이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내가 선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은 멈춤입니다. 맞은편 신호등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나부낄 때마다 얼굴 앞에 새겨진 숫자가 비상등처럼 가쁘게 펄럭입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보행자 신호등 밑에 숫자가 깜빡거립니다.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때문일까요.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 같습니다. D-15, D-14
동영상이 ‘카톡’에 올라왔다. 딸이 촬영한 동영상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웃음소리부터 쏟아진다.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다. 웃음은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처럼 요란하다. 흔들리는 웃음을 따라 화면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화면 저 편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다. 흔들리는 화면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는 중년 사내가 비틀거린다. 술에 취한 사내의 비틀거림은 흔들리는 화면과 무관하다. 취한 사내의 입에서 박자를 놓친 노랫말이 흩어진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노랫말을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가 주워 담는다. “아빠, 춤도 춰야지.” 딸의 주문에 중년의 사내가 두 팔을 치켜들고 비틀어댄다. 흐느적거리는 꼴이 행사장 입구에서 손님을 불러대는 바람풍선 같다. 바람풍선의 두 팔이 허우적거릴 때마다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른다.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소리 같아서일까.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입 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아무리 필름을 되감아도 그날 밤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끊어진 필름 대신 남은 건 술에 취한 중년 사내의 동영상뿐이다. 몇 번을 다시 보았지만, 동영상 속의 중년사내가 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쓸 때는 ‘국민’이지만 읽을 때는 ‘궁민’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릅니다. 국민(國民)을 가르치는 학교에 궁민(窮民)들만 가득했습니다. 학생들은 궁민인데 학교는 국민이어서,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국민과 궁민을 따로 분류하였습니다.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조사를 맡은 담임선생이 질문을 하면 해당하는 아이들은 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담임선생의 질문은 늘 “고아원에 사는 사람 손들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질문에 손을 들던 몇몇 아이들의 하얀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정환경조사 항목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종학력도 들어있었습니다. 담임선생이 대졸부터 국졸까지 차례로 읊으면, 해당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고졸과 중졸에서 한 번씩 손을 들어야 했는데 이유 없이 주눅이 들었습니다. 한 번 들기 시작한 주눅은 질문이 거듭될수록 깊어졌습니다. 담임선생은, 부모의 직업과 사는 동네와 집의 소유와 방의 개수와 승용차와 전화와 TV와 냉장고와 세탁기의 유무에 대해 차례로 물었습니다. 나는, 회사원과 두 칸짜리 셋방살이 말고는 손을 들 기회가 없었습니다. 라디오는 있었지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쓸 때는 ‘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교통법규를 제멋대로 무시할 때 말이지요. 그렇다고 멱살다툼을 할 순 없잖아요. 무시하는 그도, 지켜보는 우리도, ‘어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으니까요. 화가 나서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도 있긴 했어요. 바쁜 일이 있거나 성마른 성격 탓이었겠지요.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어요. 다른 차로와는 달리 오른쪽 바깥 차로만 꽉 막혀 있었으니까요. 사고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앞서가던 차들이 차로를 변경하며 추월하기 시작했어요. 급할 것이 없는 우리는 차로를 고수했지요.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는 중이었거든요. 대여섯 대의 앞차가 추월해서 나간 뒤에야 문제의 트럭이 꽁무니를 드러냈어요. 짐칸에 채소를 가득 실은 1톤 트럭이었어요. 사고가 있었거나 고장이 난 것 같진 않았어요. 비상등을 깜빡이며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데 있었어요. 걸어가도 그것보다 느릴 순 없었으니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을 즈음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비상등을 켜고 기어가는 트럭 앞에는 허리 꾸부러진 할머니가 있었어요. 손수레를 밀고 가는 할머니였어요. 할머니의 손수레에는 차곡차곡 쌓은 빈 박스가 한 짐이었어요.
발등이 부었다. 통증은 속에 있고 붓기는 밖에 있다. 바깥을 보면서 속을 다독인다. 고장은 발등의 기다란 뼈와 중지발가락이 만나는 관절에서 났다. 손톱만한 관절 하나가 사람을 기울게 한다. 나눠져야 할 무게중심을 왼발 하나가 도맡는다. 발가락의 고장으로 하루가 절뚝거린다. 더딘 걸음을 잰걸음이 부축한다. 길은 멀고 겨울 해는 짧다. 쏟아지는 군중 속에서 ‘나’는 ‘우리’가 되고 만다. 출퇴근길 인파속에서, 난무하는 구호와 외침 속에서, ‘우리’와 무관한 ‘나’로 개별적이긴 힘들다. 모래사장에서 각기 다른 모래 한 톨의 개별을 가리는 것처럼 난해한 일은 없다. 산을 보며 나무를 헤아리기 어렵듯이 숲에 앉아 산을 그리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하물며 역사에 묻힌 개별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개별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는다. 사건사고로 회자되기는 하지만, 개별의 역사는 보편의 역사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개별의 역사는 오늘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엄연하다. 매스컴마다 온갖 개별의 역사로 빼곡하고, 빼곡한 역사마다 찬성과 반대의 각기 다른 댓글이 꼬리를 문다. 무는 꼬리와 상관없이 기억하지 못할 역사들이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
한뎃잠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노숙(露宿)이라고 해야 쉬 이해하려나. 덮을 신문지 한 장 없이 겨울밤을 견딜 때, 한 방향의 바람이라도 막아줄 벽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지. 열아홉 살 때였을까. 혼자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둘기호 열차였다. 비둘기호 열차는 한반도의 평화만큼이나 느리고 굼떴다. 반나절이 걸려 영등포역에 도착했을 때, 혼자라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갓 상경한 촌놈에게 서울은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같았다. 눈보라 치는 밤, 의지할 것이라곤 편지봉투에 적힌 친구의 자취방 주소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되었다. 5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는 자격증을 따기 무섭게 방위산업체에 취업했다. 철이 바뀔 무렵이면 편지를 보내오곤 했는데, 언제든 놀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말만 되새기며 서울행 열차를 탄 게 화근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자취방은 굳게 잠겨 있었다. 주말에도 야근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공중전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작업 중에는 바꿔줄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졸지에 미아가 되어서 밤거리를
완벽한 대본이라 해도 NG는 생긴다. 정해진 대사와 지문이라 해도 피할 길이 없다. NG는 대본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만의 것이 아니다. 촬영을 멈추게 하는 요인은 의외로 많다. 도로를 통제해도 날아드는 비둘기를 막을 수 없고, 급작스러운 바람에 조명이나 소품이 넘어질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대본뿐이다. 정해진 대본에 맞춰서, 날씨와 장소와 시간과 상황과 감정을 연출하는 건 쉽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크게 다를 게 없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품은 완벽한 대본이 있지만, 대본 따라 살아지는 건 아니다. 아이의 꿈이 또 무너졌다. 삼 년 째다. 아이의 침묵은 무너지는 빙산처럼 시리고 아득하다. 손을 뻗어보지만 헤아릴 길 없는 벽이다. 벽 너머에서 침묵이 눈처럼 쌓인다. 예고도 없이 쌓이는 눈 때문일까. 취준생 가족의 겨울은 목부터 얼어붙는다. 남은 한 장의 달력조차 칼날이 되어 가족의 목을 겨눈다. 재작년이 그랬고 작년 겨울 역시 그랬다. 이런 겨울은 아이가 꿈꾸는 대본 어디에도 없다. 없는 내용의 대본을 펼쳐 놓고 아이는 침묵과 마주한다. 마주한 둘의 틈을 누가 파고들 수 있을까. NG를 외치며 멈춰 세울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어깨동무를 하면
개는 골목에서 큰길로 걸어 나왔다. 다리는 짧고 몸통은 길쭉한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는 주인의 바짓가랑이 주위를 요리조리 누비며 걸었다. 걷던 개가 처음 멈춰 선 곳은 전봇대 앞이었다. 개는 뒷발 하나를 전봇대에 걸치고 오줌을 갈겼다. 오줌은 벌려진 개의 뒷발 각도와 높이에 상응하는 자국을 전봇대에 남겼다. 전봇대에 새겨진 오줌 자국에서 김이 모락거렸다. -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도 먹을 수 있게 존중하고. 다른 개는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왔다.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를 따라 주인은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개가 주인을 끌고 나온 건지, 주인이 개를 끌고 나온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른 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봇대에 오줌을 갈긴 개를 향해 다가왔다. 다가서는 다른 개를 향해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가 짖어댔다. - 일을 할 거면,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의 주인은 여전히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끌려 다닐 때마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앞말과 뒷말이 연결되지 않고 뜬금없어서, 말의 속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건지, 만나던 애인에게 딱지를 맞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건 사슴이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소의 운명은 ‘워낭소리’와 함께 끝났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만큼이나, 소의 역할 또한 우리 곁에서 지워지고 없다. 들녘에서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는 건 소가 아니라 기계다. 일터에서 쫓겨난 것은 사람이나 소나 마찬가지이지만, 소에게까지 실업수당이 지급되진 않는다. 고양이처럼 발바닥을 핥지 못하고,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지 못해서, 소는 반려동물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듯이 사람은 소를 키운다. 개와 고양이는 주린 정을 채우기 위해서 키우고 소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키운다. 사람은 소를 먹는다. 사람이 고기로 먹는 소는 한해 삼억 마리에 달한다. 고기는 구워 먹거나 삶아 먹거나 날것으로 먹는다. 머리는 쪄서 귀와 코와 혀와 골을 먹고, 뼈는 푹 고아 물을 먹는다. 그렇게 먹다 남긴 것을 갈아서 사람은 일반가축의 먹이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 중에는 반려동물의 먹이도 있다. 사람이 먹기 위해 죽인 가축의 부산물을 가축이 다시 먹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료라고 부른다. 개중에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침상에 오른 미역국을 몇 숟가락이나 뜨셨을까요. 다시 자리에 누운 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둔 날 아침이었습니다. 영화처럼, 한쪽 눈을 감지 못하고 아버지는 숨을 거뒀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였는데, 말은 내 귀에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렸습니다. 흩어진 말속에는 말은 없고 흙냄새만 남아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쪼그려 앉으면 맡을 수 있던 흙냄새였습니다. 어쩌면 무화과나무 아래 굴을 파고 살던 개미들의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생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빛을 잃기는 추석명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가신 뒤로는 명절 대신 제사를 위해 가족이 모입니다. 사십여 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한 것입니다. 하긴, 그것이 우리 가족만의 문제일까요. 코로나로 오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루 평균 팔천 명 꼴입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서둘러 가족을 땅에 묻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그들의 기억에도 흙냄새가 선명할까요. 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