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며 음악을 떠올릴 때가 있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그림을 보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Gymnopedies)가 흐른다.(느껴진다) 옛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짐노페디는 슬픈가락이나 어둡지 않고 단음 선율인데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고독’만으로 말해질 수 없는 호퍼의 그림을 부연해준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 ‘브람스 4개의 소품 op.119 중 1번 인터메조 b단조’를 듣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람스와 호퍼의 저주받은 사랑. 스승의 아내를 평생 짝사랑한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드물지만, 호퍼의 사랑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살았을 때도 슬펐던 사랑이 후세에 더 슬프다. 호퍼가 살던 시대의 미국은 어떤 곳이었나.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거대한 땅덩이, 천혜의 넘쳐나는 자원, 그리고 프론티어 정신으로 거세게 용틀임했다. 유럽이 20세기 들어서면서 세계 1,2차 대전으로 망가지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편에 있던 미국은 공업국, 산업국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호퍼는 1920년대의 대공황 혼란기에서 급
‘달나라에 갈 수 없다면!’ 북유럽의 외딴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관광 홍보 문구다. 아이슬란드는 거리만큼이나 상식에서 먼 일이 일어나는 나라다. 귀신 이야기부터. 아이슬란드에 건물을 세우거나 도로를 놓으려면, 예정 부지에 ‘정령이 살고 있지 않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 ‘땅의 신이나 땅 사람, 혹은 숨어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우리 식으로 바꾸면 도깨비, 터줏대감 정도가 될 듯) 2013년, 도로를 내려던 시공업체와 정령이 깃든 바위 훼손을 막는 주민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법정까지 간 일이 있는데, 판사는 주민 편을 들어 ‘바위를 파손하지 말고 이전’하도록 했다나. 다음 이야기도 귀신 이야기급이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아이슬란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일이 있었다. 15년 전,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맥도널드가 발 빠르게 철수했다. 폐업 하루 전, 조르투르 스마라슨이라는 남자가 햄버거 세트를 구입한다. 그는 먹다 남은 것을 집에 둔 뒤, 3년 정도 지나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조금도 썩지 않은 상태였다. 이 신기한 버거세트는 국립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1년 뒤인가, ‘버스 호스텔 레이캬비스
그림 하나가 하루를 점령한다. 일본 세키네 쇼지의 ‘죽음을 생각한 날’. 일본 배낭여행 중인 아들에게 남편이 SNS 가족방을 통해 보낸 글 중에 있었다. 학교를 자퇴한 열일곱 살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에 이어 일본을 떠돌고 있다. 아들이 나라 밖 문화, 예술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편은 거의 매일 ‘일본 예술 정보’를 보낸다. 세키네 쇼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어두운 나무들 속,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내가 고개 떨구고 걸어간다. 그 배경 모두, 남자의 등을 누르는 십자가로 보인다. 또 다른 그림, ‘신앙의 슬픔’은 어떤가. 어두운 들판을 걷는 다섯 여인, 죄지어 끌려가는 듯도 하고 순교의 길인 듯도 하다. 손에 든 꽃은 사약처럼 느껴진다. 흰옷의 여인들 사이에서 혼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고개를 유달리 모로 꺾은 그 여인에게 시선이 오래 간다. 아, 그 여인의 배경 또한 십자가로 보인다. 사내와 붉은 옷 여인의 사연이 궁금하다. 미치도록. 화가에 대해 찾아본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폐병으로 죽었단다. ‘죽음을 생각한 날’을 열여섯 나이에 그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
나 나탈리야 파우스토바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애잔하고 신비로운 음률 때문일까. 러시아의 오래된 자장가 한 곡에 매혹되었는데, 해석된 가사를 보고 흠칫 놀랐다. 1절은 세계의 모든 자장가처럼 ‘자장 자장, 잘자라 아가야’ 분위기인데 2절로 가면서 확 바뀐다. (2절) 테레크강은 바위 따라 콸콸 흐르며/ 탁한 파도가 철석 거리네/ 나쁜 체첸족이 강변을 따라 기어오며/ 칼날을 가는구나/그러나 네 아빠는 노련한 전사/전장을 누빈 불굴의 전사(후략) (3절) 너도 알겠니 그 때가 올 거야/ 싸움의 날이 찾아올 거야/용감하게 말 등자에 발을 걸고/손에 총을 쥐거라/내가 전투용 안정에/비단으로 수를 놓아주마(후략) 인생이 고해라도 자장가만은 평화로워야하지 않나. ‘ 아가, 나쁜 놈 잡기 위해 칼날을 갈자, 싸움의 날이 오면 총을 쥐거라’ 라니. 돋보기를 대보자. 노랫말 속의 카자크(Cossacks/ 혹은 코사크)는 전쟁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러시아를 수호해온 군대 이름이다. 아이가 성장해 카자크가 돼 달려가 싸울 전쟁 적수는 러시아 남쪽의 체첸 공화국. 러시아와 체첸은 왜 싸우는가. 러시아의 역사와 함께 짚어보자. 기원 후 880년대, 유목민들이 산발적으로 살던 땅에
오장육부 중, 유일하게 문학적인 것,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심장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연주를 듣다가 든 생각이다. 마흔도 못 채우고 떠난 생애 내내, 고국 폴란드의 혁명 실패로 타국에서 떠돌다 절명한 쇼팽. 그의 유언은 심장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바램대로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쇼팽과 같은 떠돌이 삶들의 유언은 대개 ‘내 뼛가루를 고국(고향)에 묻어다오’ 정도지, 심장을 떼내 묻으라는 경우는 드물다. 심장은 마음, 영적인 것의 상징이니, 평생 피아노와 살았던 쇼팽에게 심장은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장기였을 것이다. 내게 폴란드는 쇼팽이고 쇼팽의 음악은 심장이다. 그리고, 폴란드를 각인시키는 또 하나의 심장이 있으니, 폴란드 민요 Dwa Serduszka(Two Hearts; 두 개의 심장)이다. 폴란드 민요하면 ‘산새들이 노래한다. 수풀 속에서, 아가씨들아, 숲으로 가자......’로 시작하는 동요 ‘아가씨들아(Szta dzieweczka)’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폴란드 영화 ‘콜드 워(2019개봉/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속 주제가 Dwa Serduszka를 듣고 감동 끝에 심장이 ‘총 맞은 것처럼’ 되었
세계인의 귀신(?), 드라큘라의 나라, 루마니아에 ’마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을 아시는지. 우리나라의 역술인처럼 ’주술, 점술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지만, 루마니아의 미신숭배는 유난하다. 국가적으로 대통령 주재하에 ’악령 쫓는 행위‘를 벌인 적도 있다. 독재자 니콜라 차우셰스쿠(1989년 민중혁명으로 처형) 부부가 개인 마녀를 두고 미래를 점치곤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루마니아의 직업 ’마녀‘가 별난 것은 ’마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중세기 기독교 박해 당시 수많은 여성이 억울하게 마녀 재판대에 올려져 끔찍한 고문 후 화형 당했다. 1563년 제정, 173년간 시행된 ’마녀법‘으로 6만~10만명 가까운 여성들이 처형되었다.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실상, 고아로 컸거나 장애가 있는 등, 주변의 보호와 변호를 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지배층은 마녀사냥을 종교전쟁과 페스트 등의 전염병 창궐, 기근 등으로 인해 분개한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정치쇼로도 썼다. 이 인권지옥의 역사가 ’마녀‘란 단어를 오염시켰는데, 실상 마녀의 영어단어 ’Witch’는 기독교가 퍼지기 전에는 나쁘게만 쓰이지 않았다. 고대부터 존재한 마녀는, 남녀 성별
헝가리의 별난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대출해 주는 도서관이라는데 이름하여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만남을 원하는 이’를 전용 카드로 신청한다. 대개 직업과 성향등을 기록한다. 사서는 고객이 원하는 이를 백방으로 찾아내 도서관에 오게 한다. 대면 시간은 딱 한 시간. 일반 도서관의 ‘기한 내 책 반납’과 같은 규정이 있는데 ‘만난 사람과 싸워서는 안 되며 한쪽이 대화를 원치 않을 시 바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 최다 대출 희망 대상자는 ‘은행강도’였다. 당연지사, 대출을 원하는 이는 일반인이 평소 만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레즈비언, 랍비, 유럽연합관리 등이 눈에 띈다. ‘집시’를 만나기 원하는 ‘네오 나치주의자’도 이색적이다. 헝가리에서 집시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닌데? 그가 집시를 만나고 남긴 기록이 마음에 남는다. ‘과거 세상의 모든 집시를 증오했는데 도서관에서 만나 대화해 보고 달라졌다. 지금도 도둑질하는 놈들은 싫지만!’ 헝가리 하면 제일 먼저 집시가 떠오른다. 야생의 냄새가 맡아지는, 인간의 바닥 정서가 밴, 심장을 저미는 애조가 끓는 집시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헝가리를 집
20대 초반 나이의 후배와 마포에 있는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루프탑 카페가 보여 들어갔는데 이름이 ‘헤이, 쥬드’다. 주인에게 ‘헤이, 쥬드’ 노래를 청해 흐르게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에게 헤이, 쥬드는 프라하의 봄이야’ MZ세대인 후배, 못 알아 듣는다. 꼰대 소리 듣지 않을 선까지 내 암호같은 말을 해명한다. 영화 ‘프라하의 봄(1989 개봉작)’에 비틀즈의 노래 ‘헤이 쥬드(Hey Jude)’가 나온다. 비틀즈의 목소리가 아닌, 체코 가수 마르타 쿠비쇼바(Marta Kubisova/1942년생)가 자국어로 바꿔 불렀다. 비틀즈가 불렀을 때는 우울한 한 아이를 위한 ‘응원가’였는데 마르타 쿠비쇼바는 국민개혁가요로 바꿔 불렀다. 존 레논의 5세 장남 줄리안 레논이 자주 벌어진 부모의 싸움 때문에 어두워진 것을 본 폴 매카트니가 삼촌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줄리안의 애칭이 주드) 1968년, 발표되어 ‘예스터데이’와 함께 비틀즈 최고 명곡이 된 이 노래는 그해 체코 ‘프라하의 봄’ 속에서는 민중 개혁가로 퍼진다. ‘프라하의 봄’은 체코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나치 독일 점령 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구원이 되어준 소련은 2차 대전이 끝난 1
크로아티아를 가면 시내 곳곳 붉은 글씨로 ‘KRAVATA’라고 쓰인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제 넥타이 판매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를 넥타이로 쓴다. 기원을 알면 재미있다. 17세기, 기독교 신·구교간 ‘30년 전쟁’(1618-1648)은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프랑스 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는 파리로 파병을 한다. 파리 시민들은 크로아티아 병사들의 목에 맨 붉은 스카프를 보게 된다. 국왕 루이 14세도 스카프에 관심을 갖고 한 병사에게 정체를 물었다. 국왕의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병사는 얼결에 ‘크라바트’라고 답한다. 크라바트는 ‘크로아티아의 군인’이라는 말이다. 병사는 답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 크로아티아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마귀를 쫓는다고 생각해 부적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루이 14세의 눈에 그 붉은 스카프가 멋있게 보인 듯하다. 루이 14세는 ‘크라바트’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파리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모두 이를 ‘크라바트’라 불렀다. 크라바트는 프랑스를 대표
세계사의 3대 거짓말을 꼽으라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죠!’, ‘노예해방을 위해 시작한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말을 들고 싶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바레티의 창작물에 나온 부분이지 갈릴레이가 실제 한 말이 아니며, ‘빵 없으면 케이크를.....’도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 글로 앙트와네트의 무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 지어 퍼뜨린 말이다. 미 남북전쟁은 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에 대한 응징에서 시작된, ‘미연방수호’가 목적이었던 전쟁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남부를 이기기 위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노예제도를 뒤흔들기 위한 것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론자이긴 했지만 그것이 그의 전 생애의 주제는 아니었다. ‘노예 해방’을 위해 생을 던진 이는 따로 있다. 미 육군 대령이었던 존 브라운( John Brown 1800-1859)이 대표적이다. 1856년, 브라운은 캔자스 동부의 포타와타미에의 고립된 오두막에서 다섯 명의 노예제도 찬성론자를 살해해 지명수배자가 된다.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브라운은 공공연히 ‘ 노예제도를 지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