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며 따뜻한 봄기운이 남쪽에서 부터 올라오기 시작한다. 겨울로부터 꽁꽁 싸매어 지켜오던 땅속 생물이 기지개를 켜고 가느다란 줄기만으로 버텨오던 나무에도 사랑스러운 꽃망울이 이쁘게 돋아 세월을 한탄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전남구례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린다는 홍보를 대하며 올해는 적극적으로 꽃맞이를 하러 떠나겠다는 마음이 일어 먼 길 채비를 하였다. 하루일정은 힘들 것 같아 1박을 계획하고 떠나며 숙박할 리조트에 가기 전 다른 유흥할 것은 없을까 찾다가 광양의 매화축제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라는 정보를 검색하게 됐다. 늘 아파트 주변에서 봐오던 꽃이 아닌 처음 접할 꽃에 대한 기대와 먼 곳으로 떠나는 길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한참을 달려 딸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진에 가까울 무렵부터는 찾아들어갈 수 있는 외길에 수많은 차량의 중간에 섞여 잠시 주어지는 몇 미터의 이동을 지루하게 기다리다 화장실이 급하였다. 축제장까지 가야 해결할 수 있는 그 길고도 긴 고통은 꽃을 만나게 되었을 때 찾아 올 기쁨으로 간신히 누르며 힘겹게 이기었다. 북적거리는 사람을 보는 것도 흥겹고 펼쳐진 수없이 많이 놓인 거대한 장독군에
‘포커페이스’란 포커를 칠 때 상대가 내 속내를 알지 못하도록 표정에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승리를 위한 고도의 기술로써 카드게임에서 상대를 교란시키기 위한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카드게임을 재밋거리로 봤다. 일선에 나서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대로 몫을 해내는 연예인이 카드게임에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자신의 실력을 자신하며 시작된 게임이었는데 정말 실력이었는지 운이었는지 몇 사람이 그와의 게임에서 번번이 그에게 승리를 안기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자신의 패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패만 보며 승부수를 띄우는데 그는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대담한 배팅과 상대가 내 쪽의 패를 보고난 후 어떤 마음으로 배팅을 하는지 표정을 읽어 꿰뚫어 아는 것처럼 보였고 결과는 장담했던 대로 실력을 승리로 입증했다. 그걸 보며 알아낸 것이 있다. 그는 평소 갖고 있는 표정 외에 변화하는 어떤 표정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필요 없는 두려움까지도 생기게 했다. 상대는 자신의 패를 마찬가지로 모르는 대등한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 없는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완충의 시기쯤에는 하는 일이 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청소를 해서 공간을 비우거나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중에 관계가 소원해서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지 기억조차나지 않는 낯선 이름을 주소록에서 지우며 마음의 용량 관리를 하게 된다. 새해를 맞이하려는 중요한 의식처럼 해 오던 일이라 올해도 확인하니 고마운 이름과 서운한 이름 언젠가는 연락이 될 것도 같은 희미한 이름, 잠시 인연이 닿아 전화번호를 나눈적은 있었으나 소소한 일상의 안부를 물을 만큼 서로의 근황을 공감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그러다 지속될 관계의 사람이 아닐거면 바람에 흩날릴 먼지처럼 지우게 된다. 서로의 목소리로도 안부가 되어 관계를 이끌 수 있어야 약한 인연이나마 이을 수 있는데 평소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하여 좋은 사람도 곁에 머물게 하지 못한 채 놓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휴대폰 가득 채우고 있는 밴드나 카톡에서 다수의 근황을 보며 그나마 적은 궁금함조차 해결되고 나면 개인적인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날이 갈수록 서투르게 된다. 다정한 사람이 보기 좋다. 사람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를 잘할 마음밭이 마련되어 있어 보여서다. 감정이 마른 나로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쌓기만 했던 물건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물건들은 구입한 순간 잠깐의 즐거움을 주고 난 후 언젠가 사용할일이 있을거란 기대만 잔뜩 뒤집어 쓴 채 아파트 안을 채우고 있었다. 점점 쌓여 간 조용한 물건들에게 공간을 빼앗긴 나로서는 사는 공간이 부족해 보이고 매일하는 청소에도 깔끔해지지 않는 살림이 어렵기만 했다. 참 많이도 끌어안고 살았다. 욕심을 덕지덕지 붙여 가끔은 쓸지도 몰라서 혹은 지금 필요 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거란 헛된 기대를 짊어진 물건들을 꺼내놓으니 큰 트럭 두 대를 채우고도 부족했다. 살던 집을 줄여서 간 집은 수납공간이 많았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두서없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은 예쁘고 갖고 싶은 것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구매하고 나면 그렇게도 갖고자 했던 간절함은 또 다른 물건들로 간절함이 쉽게 옮겨갔다. 갱년의 심리적 허기가 이유였을까 왜 그리도 물건에 매혹된 시기가 왔는지 이유를 잘 알긴 어렵다. 알뜰히 살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누려 보리라던 막연한 물욕의 시간이 물밀 듯 밀어닥친 것인지도 모른다. 사고 들이고 주말이면
우정을 삶의 가치로 깊이 생각한 적 없다. 효를 제대로 실천해 본 적도 없고 형제도 살뜰이 챙겨 본 적 없는데 우정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감정의 낭비가 아닌가했다. 주변에서 만나지는 사람에 집중하며 좋으면 감정을 넘치게 쏟다가 마음에 거슬리면 한순간에 접기도 하는 감정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다른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궁금해하는 것은 타인의 공간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 적당하게 거리를 두어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곁을 내줄 정도의 다정함에 끌려 더 이상 숨길 것 없이 속을 보이고 나면 관계가 나빠진 상황이 됐을 때 더 할 수 없는 상처의 칼날로 마음을 다쳤던 적도 부지기수다. 감정이란 것이 예고를 하고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신기루처럼 불현듯 다가설 때도 있고 소나기처럼 잠깐 왔다가 언제인가 싶게 물러가기도 하며 먹어도 헛헛하고 가늠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라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이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어려운 것이라 여겼다. 사람을 얻으려거나 혹은 단호하지 못해 원하지 않은 기계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살다보니 우정이란 관념에 흥미를 잃었던 것도 있었다. 이렇듯 마음의 눈을 반쯤은 닫고 우정에는 메마른 나를 일깨운 하나
메릴스트립(도나역)이 엄마로 분하고 아만다 사이프리드(소피역)가 딸이 되어 아바의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하는 ‘맘마미아’를 보았다. 우리에게도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리게도 했고 아바의 경쾌하고도 추억 가득한 노래도 들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기대를 갖고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주인공 도나는 서툰 사랑의 결과로 소피를 가지게 되고 섬에서 혼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낳은 딸 소피가 엄마의 소원이던 호텔을 개장하면서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 가운데 소피도 그녀의 엄마처럼 기대하던 생명의 소식을 알게되고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된다. 밝고 건강한 화면과 활기찬 분위기가 에너지로 느껴지면서 나의 첫 태임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았다. 나는 뭘까 무엇을 하려 이세상에 왔을까가 사춘기 시절 궁금했었다. 본능만 해결하며 사는 것이 전부가 될 순 없겠지 분명 존재하는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필요치 않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오진 않았으리라. 뚜렷한 해답 없이 시간에 익숙해지며 스스로도 답 찾기에 게을러졌다. 고민을 자연스레 거두며 불편하지 않게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을 하고
일찍부터 시작된 더위가 연일 40도에 가까이 오르며 맹위를 떨친 여름이다. 그래서 종종 몸을 일으켜 가까운 체육관을 찾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보면 동호인클럽에서 수박을 시원하게 준비해 주기도 한다. 냉장고에서 속까지 골고루 잘 냉장된 시원한 수박을 썰어 한입 베어물면 땀으로 인해 생긴 갈증과 한껏 오른 열기를 식히는 데에 얼음물보다 더 빠르게 해갈이 된다. 수박은 여름을 떠올리게 하고 여름이면 적어도 한 덩이 이상은 소비하게 되는 과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수박이 내겐 어려운 과일이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익은 수박을 고르려면 매의 눈으로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엔 꼭지를 보고 싱싱함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수확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판매하는 곳에서 슬그머니 꼭지를 떼버리기도 하여 꼭지로 신선함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박의 진한 초록색 줄의 선명함으로 잘 익은 것을 고를 수 있다는데 그 기준도 불분명한데다 눈도 허술하여 선명함을 기준삼기가 또한 어렵다. 다음엔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은 수박이란다. 이런저런 수박 고르는 상식을 다 동원해
며칠간의 짧은 휴가를 얻은 둘째의 시간에 맞춰 큰딸내외와 4박 5일간 베트남에서는 세번째로 큰 항구가 있는 풍요로운 도시 다낭을 다녀왔다. 응우옌왕조의 유적으로 유명한 후에와 고풍스러운 올드타운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이안의 명성에 가려져 최근까지 다낭은 여행지로는 소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눈부신 햇빛과 한눈에 담기 버거운 긴 해변에 그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하얀 모래밭이 있어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행자의 지친 가슴을 풀어 놓기에 다낭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인천공항에 못지않은 시설과 청결함을 갖춘 현대적인 공항은 매력적인 첫인상이었다. 차보다 더 많은 엄청난 양의 오토바이와 몇 개 되지 않아 눈에 띄지도 않던 신호등, 오토바이의 물결을 요리조리 피하는 택시기사의 곡예운전에 아슬아슬한 긴장으로 공포에 가까운 탄식을 내며 번화가에서 멀지않고 해변에 가까운 리조트에 도착했다. 선베드가 놓인 옥상의 수영장과 조식은 고급스러웠으며 직원의 친절한 서비스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30분간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간 바나힐. 산위 휴양지로 지어졌다는 프랑스마을에서는 무엇보다 고지대의 구름산책이 즐거웠다. 바로 앞의 사람도 분간키 어려운 구름이 갑자기 몸
현관입구 앞에 아파트 놀이터가 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각부터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볕 좋은 날엔 으레 초등학생과 유치원 어린이들이 몇몇의 보호자의 보호아래 즐겁게 뛰어노는 곳이다. 깔깔대며 뛰어노는 모습에 웃음짓게 하는 선한 공기로 반짝이는 장소이다. 그 곳은 어린이를 위한 신성의 기운이 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이라 나름 생각한다. 지치도록 신나게 놀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팽개쳐진 분홍자전거를 지켜주기도 하고,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 걱정도 주제 없이 더러 하며, 누군가의 이불이 햇볕바라기를 하러 냉큼 놀이터 울타리에 걸리기라도 할라치면 오지랖 넓게 이불은 개인공간에 수줍게 걸어 주십사 탄원하기도 하는 극성 놀이터 지킴이라 내심 생각하던 바다. 어느 날인가 들어오던 길에 현관에 이르렀을 쯤 얼핏 놀이터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가 거슬린 장면이었다. 대놓고 보자니 민망하여 못 본 척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맘속의 의협이 꿈틀하고 솟구쳐 팽팽한 긴장을 무장하고 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얼굴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다가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들에게 어른이랍시고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상식의 도덕과 놀이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