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진 섬들이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다. 여기 동식물들은 수백만 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탓에 독자적인 형태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외부와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생태계에 위기가 찾아왔다. 육지에서 외부종이 유입되자 섬의 생태계가 교란됐고 결국 면역력이 약한 고유종들은 멸종되거나 멸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기서 갈라파고스 현상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1980년대 일본의 전자 제품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은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자신들의 표준만을 고집하다가 경쟁력 약화로 세계 시장에서 밀렸다. 이처럼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할지라도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갈라파고스 현상이라고 한다. 이 용어를 곱씹으면 요즘 한국 문학의 현실이 따라온다. 한국 문학은 최근 몇 년 간 노벨 문학상 운운 했지만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이 곧 문학의 국제적 수준을 나타내는 잣대는 아니지만, 우리 문학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 문학이 국제적 감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은 지나치게 우리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드라마 내용을 두고 입씨름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며칠 전에도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지역 학교 품평회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서울대에 다섯 명이나 갔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 모두 부러워하는 사이에 자신의 자녀 학교는 서울대에는 한 명만 갔지만 의대를 다섯 명이나 보냈다며 말을 잇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를 뭉뚱그려 8명이나 갔다고 자랑하듯 말한 부모도 있다. 자기 자녀가 다니는 학교는 여학교라 서울대는 못 보냈지만,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에 10명 넘게 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도 사대나 교대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보탠다. 이들은 학교 교육 활동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좋은 학교, 명문 학교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작년 서울대 입학생 통계까지 들먹이며 지역 고등학교 서열을 매기고 있었다. 언급되지 않은 학교에 대해서는 노는 학교라는 등 하면서 일방적으로 낙인까지 찍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2019년 핵심 정책은 이런 현실을 성찰하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신년사에서 “경기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다운 교육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교육다운
서울시교육청이 조직 문화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환영하기도 했지만, 약간의 잡음도 있었다. 그 중에 ‘선생님’을 ‘쌤’으로 호칭하라는 권고는 충격이었다. 물론 이 문제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한 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교육청이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조직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고 여러 추진 과제를 밝혔는데 이 또한 수직적이고 획일적이라는 생각이다. 학교에서 구성원끼리 해결할 수 있는 복장 문화 등 자질구레한 것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따르라(?)는 식의 발표는 이미 교육청과 학교가 수직적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게다가 혁신을 핑계로 호칭까지 새롭게 획일화를 조장하는 것도 역시 혁신의 정신에서 멀다. 수직적 구조는 상관과 하관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상관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권력 행사를 하는 것이 수직적 구조의 본질이다. 이것을 멈추는 길은 상관의 의식이 만들어낸다. 아무리 직책이 있는 상관을 ‘쌤’이라고 불러도 그 상관이 제대로 된 철학이 없다면 해결되지 않는다. 아울러 학교의 모든 문제를 상관과 하관의 갈등 관계로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학교의 관리자와 교사들은 서로 갈등 관계에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두고 갈등이 깊다. 지방 군소 도시 고교는 학종이 유리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 지역 고교와 자사고, 특목고 등이 수능을 독점하기 때문에 학종을 선호한다. 반면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라고 주장하는 집단도 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의해 좌우되는 입시라고 규정한다. 그나마 수능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사회 현상에 대한 개인 간에 생각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입 제도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다른 생각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동일한 대상을 두고 자기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당국은 수시와 정시의 입시 정책 자료를 얻기 위해 설문 조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전형 방법에 대한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된 통계 수치는 현상을 왜곡한다. 수능 시험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정이라는 잣대만 염두에 둔다. 이런 식이면 과거에 대학별고사 등 모든 입시 제도도 공정했다. 그런데도 대입 제도가 자주 바뀐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적 정의를 실현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다는 말을 한다. 교육 현실을 개탄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과거 학교에서는 감동을 주는 스승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학교에서 지식만 가르치는 교사만 있다는 식이다. 교사들이 직업인으로만 보인다고 걱정 끝에 하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스승이나 교사는 비슷한 말이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니, 교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승과 교사를 구분한다. 스승에 남다른 경험적 의미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성직자와 가까운 모습으로 봤다. 과거 교육 현장은 소수 그룹으로 형성됐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있고, 제자도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지식부터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었다. 가르침은 오직 선생님으로부터 나왔으니, 그 영향력이 컸다. 도제식 학습 방법은 지식을 배우는 것부터 삶의 방식까지 익혀야 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온전히 선생님의 그늘에서 맴돌아야 했다. 산업 사회에서도 이러한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소수고,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은 다수였다. 이러한 환경은 배우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여러 면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의
4차 산업혁명이 화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의 약진으로 우리 생활은 풍요롭게 변한다는 전망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이에 따라 수십 년 내 현재 직업이 과반수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맞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계도 세계적인 추세인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계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담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교육 강화가 그것이다. 교육은 현재보다 미래 세대 학생들이 변화된 세상과 삶의 방식에 대비한 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미래 시대에 맞는 다양한 역량 등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학교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학습 개념과 지도 원리, 수업 방법과 평가 방식 등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 등은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역량 교육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이찬승의 지적대로 ‘지식과 역량을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에만 머물고 이의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2돌 되는 날이다. 백성들이 자기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한글 창제 후 반포를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 한글 창제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한글은 세계 문자 중에 창제 시기와 원리가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문자다. 창제 동기부터 피지배층을 위한 평등의 문자로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발음 작용을 반영하여 만든 과학적인 문자로 사람의 말소리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이상적인 문자다. 한글 창제 과정과 운용법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이는 한글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 문자 생활은 비극적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바깥벽에는 학교 이름이 한자로 크게 쓰여 있다. 옆에 중학교와 초등학교도 건물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초등학교는 영자 표기도 크게 보인다. 다른 학교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교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교훈탑이다. 커다란 돌덩이에 ‘교훈’이라는 글자부터 모두 한자로 써 있다. 건물 안에도 마찬가지다. 학교 교육목표, 연혁 그리고 안내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찍어주던 칭찬 도장이 생각난다. ‘참 잘했어요’라는 원 모양의 스탬프 도장이다. 숙제를 해도 일기를 꼬박꼬박 써 내도 도장을 찍어줬다. 이 도장을 받으려고 선생님이 내 주는 과제물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점점 시들해졌다. 이 도장이 내 노력을 칭찬하는 느낌이 없었다. 요즘 말로 영혼 없이 찍어주는 도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도 주변 선생님들 중에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칭찬 도장으로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모양도 내용도 그 옛날 도장과 똑같다. 하지만 내가 경험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 도장은 진정성이 없다고 느낀다. 학생들에게 칭찬을 해 주는 것은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칭찬이 능력을 발휘하는 힘이 된다. 특히 학생들은 또래끼리 경쟁하면서 많이 지쳐있다. 힘겨운 입시의 관문도 지나야 하고, 먼 미래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위축되어 있고, 사회적 시스템에 적응을 못해 방황하게 된다. 심지어 경쟁에서 일찍 밀리는 아이들은 낙담해서 일탈을 하게 된다. 그나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이나 격려다. 이것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
꿈을 갖게 하는 것이 청소년 교육의 핵심이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 교육’은 정부에서도 교육 분야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꿈을 갖는 지도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간혹 위험한 장면을 본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학생 지도를 하면서 꿈을 강요한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꿈이 있냐고 묻는다. 그 중에 꿈이 없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이때 선생님은 아직도 꿈이 없냐고 다그친다. 심지어 빨리 꿈을 정하라고 충고한다. 꿈이라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채근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도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꿈은 가진 사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인류 역사도 결국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 하지만 어른이 꿈을 정하라고 해서 품는 꿈은 허망한 것일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나의 고민도 없이 만들어진 멋있는(?) 미래의 일일뿐이다. 꿈이란 막연한 미래의 나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도전해서 이루고
교육부가 일부 사립대학에 정시 확대를 요청하면서 시작한 대입 전형안 윤곽이 나왔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현재 중 3년생 대상)으로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안은 대학이 모든 학과(실기 제외)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전형으로 45% 이상 뽑게 하는 내용이다. 또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되 수시 때 합격을 위해 최소한 받아야 하는 수능 등급 최저기준은 대학이 알아서 정하도록 했다. 2안은 각 대학이 수능·학생부 전형의 비율을 자율로 정하되, 특정 전형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도록 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수능은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수능 최저 기준은 현행보다 강화하지 않는 선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했다. 3안 역시 대학이 자율적으로 전형 간 비율을 정하되, 특정 유형의 전형 방식으로만 모든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수능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2안과 차이가 있다. 4안은 1안과 마찬가지로 수능 전형을 늘리는 동시에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비율의 균형도 확보하는 방안이다. 수능은 상대평가로 치르고, 수능 최저 기준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 위 네 가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