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사회단체에서 3·1절 명칭을 ‘독립선언절’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제안 단체는 3·1절이 날짜 중심의 기념에 머물러 독립선언이 지닌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제안은 3·1혁명이 지닌 대한민국의 정체성(Identity)과 세계사적 의의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3·1혁명의 ‘3’과 ‘1’은 결코 단순한 날짜 표기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에서 ‘3’은 삼재(三才)사상에 따라 하늘·땅·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완성의 질서를 뜻하고, ‘1’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체적 통합을 상징한다. 이는 숫자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상징체계라 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33은 최소이자 최대의 상징 수로서 대표성·완결성·책임성을 함께 지닌 숫자다. 다시 말해 3·1은 우주 질서와 인간의 도덕 의지가 합일된 역사적 행동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3’과 ‘1’을 삭제하고 ‘독립선언절’로 변경하려는 시도는 한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위험을 안고 있다.
새해 연휴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특별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전적과 불굴(不屈)의 투지로 승리한 명량대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명량대첩은 과거의 영광으로 박제된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거대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전략 모델이다. 역사는 지나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명량대첩은 그 역사적 선택의 정수(精髓)가 아닐 수 없다. 1597년 8월 27일과 28일 칠천량 패전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은 소멸되었다. 거북선 3척과 180여 척의 판옥선과 조선 수군 1만 여명 이상이 전멸되었다. 남은 전함은 고작 13척 뿐이었다. 명량해전에서 맞서야 할 일본 수군은 133척의 대함대였다. 전투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단순한 전함의 수적 비교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는 전장(戰場)의 조건을 다시 정의했다. 울돌목(鳴梁)의 좁은 물길,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는 거센 조류, 판옥선의 구조적 안정성과 화포(火砲) 운용의 장점, 그리고 패배 속에서도 필사즉생(必死則生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권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헌정(憲政)을 유린한 지 정확히 1년이 된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한동안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서 있었지만, 실상은 국가권력 탈취의 충격과 사회 혼란의 와중에 겨우 유지돼 왔었다. 내란 특검은 비상계엄의 우두머리와 중요 임무 종사자들을 추적해왔고, 수사 종료일은 12월 14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국민의 받은 상처와 기대하였던 희망에 비해 사법부 정의의 시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국가 전복 사태의 책임자들은 법리 꼼수로 재판을 지연시키며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 부정하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만이 결심에 이르렀고, 징역 15년 구형이 내려졌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채상병특검은 11월 28일 150일간의 수사를 마치면서 ‘VIP 격노설’ 실체를 확인하고 윤석열 등 총 33명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지만, 수사과정 속 각종 논란과 함께 구명로비 등 해심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가장 뼈아픈 장면은 국가 반란의 범죄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윤석열의 모습이다. 지도자라 자처하던 사람이 정작 법정에서는 도피와 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선비였던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평생 권세에 굴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간절히 호소한 인물이었다. 그는 천왕봉(天王峯)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 덕산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임금에게 올린 여러 상소를 통해 부패한 조정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의 상소에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울림을 주는 ‘경고(警告)’와 ‘충언(忠言)‘이 담겨 있다. 1555년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에서 남명은 “나라의 근본이 이미 무너지고, 하늘의 뜻과 민심이 떠났다”고 한탄했다. 이는 작년 12.3 불법 계엄을 마주했었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사회의 공정은 흔들리고 있다.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집값 앞에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지만, 상류층의 과소비는 더욱 노골적이고, 불법 부동산 투기와 특혜는 끊이질 않는다. 국민의 고통은 깊어가는데, 지도층은 여전히 말뿐인 개혁과 정쟁에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명 선생이 지적했던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없는 정치”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명은 상소에서 “정치는 사람을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국가 운영과 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하는 외교 무대이기도 하며, 국민의 신뢰와 자존심이 투영되는 국격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통령 관저의 위치와 조건은 단순한 ‘주거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국가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대통령 관저는 여러모로 대통령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90년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아 지을 당시, 자연 지형을 거칠게 훼손한 사실부터가 문제였다. 암반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본래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을 매립해 관저 부지를 조성했다. 그 위에 15미터가 넘는 인공 축대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안방마저 이 축대 위에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웅장할지 모르나, 터 자체가 불안정하고, 자연을 거스른 인공적 구조물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관저는 청와대 구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는 외견상 위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립감을 주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지 않는 터다. 전통 풍수에서는 이를 ‘고한(孤寒)’이라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그날을 ‘광복절’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 ‘광복(光復)’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 다시 말해 온전한 주권의 회복을 뜻한다. 그러나 8.15는 해방이었을 뿐, 진정한 자주 ‘독립’은 아니었다.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재정립하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일본의 땅은 분단되지 않았다. 반면 전쟁의 책임이 없는 한반도는 강대국의 이해 속에 너무나 억울하게 남북으로 갈라졌다.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나눴고, 남한은 미군정(美軍政)의 통치를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넘어갔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군사 주권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우리는 ‘광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다른 강대국의 힘과 질서 속에 종속되었다. 진정한 ‘독립’은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기득권 세력과 친일세력이 ‘광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였고, 국민들은 그 왜곡된 내용에 80년
2025년 6월 23일이 이재명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조현(외교부) 등 12명의 장관(국무조정실장 포함)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정치권, 관료 출신, 민간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포진시킨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역별로 수도권 2명, 호남 4명, 대구·경북 2명, 부산·경남 2명, 충청권 1명, 강원권 1명으로 균형을 고려한 점과 특정 대학에 치우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번 새 정부의 인사를 조선시대 인사원칙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번 인사는 국회의원 출신이 6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우며, 정무직 역량을 중시한 구성이다. 동시에 LG AI 연구원장이었던 배경훈, 네이버 대표 출신인 한성숙, 노동계에서 활동한 김영훈 등 사회 각계 전문가를 발탁해 실무 능력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인사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제 합격자와 함께 ‘천거제(薦擧制)’를 통해 덕성과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관직에 기용했던 조선시대의 전통과 유사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관(前官)의 평판과 근무 성적을 중시했는데, 이번에도 다수의 전직 관료와 공직 경험자를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
2025년 6월 3일이 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된다.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혼돈의 역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 헌정 질서를 흔든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탄핵으로 새 대통령 선출이 빨라졌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의 첫걸음이다. 또한 국민이 품격(品格)있는 최고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품격있는 대통령’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일제 국권침탈기에는 목숨을 걸고 항일의병(抗日義兵)과 독립전쟁을 치루었고, 3.1 운동과 8.15 광복을 거쳐, 6.25 한국전쟁과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혁명까지 숱한 고비를 넘어왔다. 그 여정(旅程)의 중심에는 늘 ‘국민’이 있었고, 그 국민이 지켜낸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이제 새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함께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품격있는 대통령은 무엇보다 ‘통합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정권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야당과 협치를 하여야 한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진영 논리보다 국가의
한국사회는 정치검찰과 법조카르텔의 횡포에 위기상항을 맞이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공직선거법 2심 판결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이는 대법원의 정치개입으로 볼 수 있으며 대법원의 사법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 되었다. 더구나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정치검찰의 권력카르텔이 기승을 부리며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다. 그 예로 정부 각료들과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의 내란 동조 행위, 사법부 권위를 망쳐버린 지귀연 판사의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불법 석방,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 항고 포기와 직권 남용, 검찰의 김성훈 경호차장의 구속 기각 결정 등의 불투명한 사건들이다. 게다가 어리석은 자멸(自滅)의 길로 들어섰던 내란 수괴 동조 세력중에는 검찰과 법원의 정치엘리트가 포함돼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충암고, 육사, 서울법대와 사법고시의 학연, 법조카르텔로 뭉친 정치엘리트들의 권력동맹(Power Bloc)을 만들었다. 이런 카르텔은 사회정의를 실천하지 않았으며 그들만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악용해 왔었다. 그 결과 정치검찰은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조카르텔을 악용해
200년 전 조선왕조 천주교 신유박해(1801년) 사건 때 정약용 선생은 일가족이 천주교에 연루되어 집안은 풍지박산이 되고,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에 유배를 간다. 그 곳에서 선생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열정을 학문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지방 수령과 목민관이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과 몸 가짐의 자세, 업무지침에 관련된 내용의 '목민심서'를 1818년에 지었다. 이 책에서는 12 편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목민관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규율인 ‘율기(律己)’에 관심이 있다. 먼저 바른 몸가짐(칙궁(飭躬), 청렴한 마음(淸心), 집안을 다스림(齊家), 청탁을 물리침(屛客),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절약한 자금으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樂施)으로의 내용이다. 또 '목민심서'의 서문에 보면 선생의 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위가 낮은 아랫 사람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위 서문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