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사회단체에서 3·1절 명칭을 ‘독립선언절’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제안 단체는 3·1절이 날짜 중심의 기념에 머물러 독립선언이 지닌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제안은 3·1혁명이 지닌 대한민국의 정체성(Identity)과 세계사적 의의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3·1혁명의 ‘3’과 ‘1’은 결코 단순한 날짜 표기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에서 ‘3’은 삼재(三才)사상에 따라 하늘·땅·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완성의 질서를 뜻하고, ‘1’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체적 통합을 상징한다. 이는 숫자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상징체계라 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33은 최소이자 최대의 상징 수로서 대표성·완결성·책임성을 함께 지닌 숫자다. 다시 말해 3·1은 우주 질서와 인간의 도덕 의지가 합일된 역사적 행동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3’과 ‘1’을 삭제하고 ‘독립선언절’로 변경하려는 시도는 한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역사적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독립’이라는 용어도 합당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독립된 국가였고, 일제(日帝)에 의해 35년간 불법으로 국권을 강탈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3·1을 단순히 ‘운동’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로 부르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3·1혁명은 민족해방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세계 최초의 비무장 민중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성과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정신은 1920년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지는 무장 독립전쟁의 사상적·도덕적 토대가 되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3·1혁명에 있음을 헌법 전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3·1혁명의 영향은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종교와 계급, 계층과 직업을 넘어 비무장 민중이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방식으로 제국주의에 당당하게 맞섰다. 이 경험은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 등 세계 피압박 민족에게 강력한 자극과 용기를 주었다. 3·1혁명은 세계사적으로 비폭력 민중운동의 새로운 기원을 제시한 것이다.
3·1혁명은 한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총과 폭력이 아니라 민중의 참여와 도덕적 정당성으로 권력에 맞선 것이다. 이 혁명정신은 인도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 수호)와 아힘사(Ahimsa, 비폭력)운동,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혁명을 개념이 모호한 ‘독립선언절’로 바꾸려는 시도는 3·1혁명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는 퇴행적 발상이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명칭이 아니라, 3·1혁명의 의미를 흐리게 만드는 안일한 역사 인식 그 자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