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수치의 장벽’이 있다. 장벽의 길이가 10㎞가 넘는데 3m가 넘는 담 위에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양쪽은 서로 오갈 수 없는 다른 나라처럼 여겨진다. 같은 도시 안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한쪽은 판자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고급 부촌이다. 한쪽은 몇 십억 넘는 넓은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고 한쪽은 금방 쓰러질 듯한 남루한 판자촌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빈민가 사람들에 의해 오염되거나 절도와 약탈 등을 걱정하여 벽을 세운 것일 것이다. 이 경제적인 차이의 편가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며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 패악(悖惡)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열차’와 ‘일등열차’를 보면 이점은 더 확실해진다. ‘삼등열차’는 철저하게 소외된 군상들로 침울하고 의욕을 상실한 침울함만이 지배하고 있음에 반해 ‘일등열차’ 우아함과 여유가 넘쳐흐른다. 경제적인 편가름에 비해 사상에 의한 편가름은 훨씬 무섭고 강렬하게 나타난다. 십자군 전쟁도 대표적이지만 전쟁을 비롯 학살, 감금 등이 난무한다. 좌우의 대립은 한국 사회를 가로지른 가장 끔찍한 형태로 제주 4·3, 한국전쟁, 광주민주항쟁을 거치며 현재까
303인의 시조를 영어로 번역한 『해돋이』 출판기념회가 지난 11월 30일 서울 함춘회관에서 있었다. 대규모로 번역이 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이 있어 참석을 했다. 예술원 회장 사천 이근배 선생이 먼저 축사를 했다. 미당 선생의 시조를 구수히 읊고 나서 우리나라에 시조의 해가 뜨고 있음을 빗대어 얘기하셨다. 사천선생은 역시 재담이 넘치는 천상천하의 얘기꾼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함을 강조하였다. 오늘의 시조조인회의 의장 재임시 시조의 정전이 될 만한 시조 150편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고시조를 포함하여 이를 확정하는 작업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위원장은 정수자 시인이 하였지만 적지 않은 위원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2년 가까이 걸려 이를 확정하고 발간하였다. 이를 토대로 번역 작업을 착수하였는데 문제는 이것이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단순히 번역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해당어의 국가에서, 그것도 좀 알려진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일은 일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선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독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가 게르니카를 향해 5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무차별적인 폭격에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1천600여 명이 사망했다. 독일 나치정권이 스페인 정부와 내전 중이던 프랑코 반란군 편에서 자행한 민간인 무차별 공격이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로 이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군사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었는데 단지 나치 독일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의 비행기와 폭탄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폭격을 가했다는 사실에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장터에 나갔다가 참혹하게 당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분노에 휩싸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게르니카’다. 폭 7.8m, 높이 3.5m 거대한 그림은 한 달 반 만에 완성됐다. 불에 타고, 쓰러지고 절규하는 사람들, 울부짖는 말과 황소, 멍하게 하늘을 응시하는 여자, …… 분할되고 왜곡된 이미지, 흑백 톤의 차분히 가라앉은 컬러가 오히려 냉정하게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안 알려진 사실은 피카소가 한국의 참혹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일어난 황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한 시조가 2019년 1월 초 현재 277회를 내보냈다. 햇수로 5년을 훨씬 넘겨 6년이 돼 간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구나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쓰겠노라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경계하는 뜻에서 계속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는 단시조 5편을 한 묶음으로 쓰고 있는데 그러자니 틈만 나면 작품에 골몰하기 일쑤다. 여기에 연재한 작품이 인연이 지난 달에는 외솔시조문학상을 받았다. 외솔기념사업회에서 주는 상인데 외솔선생은 “한글이 목숨이다”라는 말을 강조하신 한글학자이어서 의미가 더 있었다. 외솔 선생의 작품 중에 이런 작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랫목은 식당되고, 웃묵은 뒷간이라, / 물통을 책상하여, 책으로 벗삼으니, / 봄바람 가을비 소리, 창 밖으로 지나다”라는 감옥에서 쓴 ‘나날의 살이(日常生活)’라는 작품의 첫 수였다. 아랫목은 식당 되고 윗목은 뒷간으로 쓰는 감옥살이의 비참함을 잘 일러준다. 식당과 뒷간을 구분하고 너와 나를 구분하고 동과 서를 구분하는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글을 쓰고 있는가. 그런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수상 소감을 말하는 동안 마음이 내내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짧은 시만을 고집하는 그룹이 있다. ‘작은 詩앗 채송화’ 동인들이다. ‘작은 詩앗 채송화’ 동인은 윤효, 나기철, 복효근, 오인태, 이지엽, 정일근, 함순례. 뒤에 김길녀, 나혜경이 합류하여 현재 9인이다. 2008년 창간호를 내고 현재 20호를 내었다. 이들 동인들이 추구하는 짧은 시 운동은 서정시가 갖는 장르적 특성이 동일화의 원리와 더불어 순간성과 압축성이라 할 때 이 특성에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시적 긴장을 지닌 짧은 시는 마치 “주야장천 내리는 빗줄기이기보다는 그 긴긴 날 중 어느 한순간 우지끈 천지를 들었다 놓는 천둥이며 번개 같은 것”(윤효)이라 할 수 있다. 짧은 시는 진실로 ‘씨앗’과 같다. 이미지와 말이 극도의 팽팽한 긴장 상태로 존재하다가 그것을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순식간에 팍, 하고 터뜨려짐으로써 새롭게 피어나는 말의 꽃씨(신진숙)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작품을 살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 팔어요, 개 삽니다 / 큰 개, 작은 개 삽니다 / 개 팔어요, 개~애 하면서 개장수 차가 지나간다 개장수는 차 속도를 줄이더니 /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위 아래로 한참이나 훑어보고 간다 - 복효
어느 모임의 합창제에 초대를 받아서 오랜만에 귀를 즐겁게 하는 호사를 누렸다. 음악의 양식 가운데 모노포니와 호모포니와 폴리포니가 있다. 모노포니(monophony)는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단선율의 음악, 또는 그 양식을 말한다. 음악 역사상 가장 오래 된 형태이며, 고대 그리스음악, 초기의 교회음악이 그 좋은 예이다. 이에 반해 호모포니(homophony)는 어떤 한 성부(聲部)가 주선율(主旋律)을 담당하고 다른 성부는 그것을 화성적으로 반주하는 형태의 음악양식을 말한다. 말하자면 여럿이 하는데 주목되는 것은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폴리포니(polyphony)’는 ‘다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polys’와 ‘phonos’를 합성한 말로서, 여러 개의 선율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적으로 결함되는 짜임새를 가리킨다. 음악의 얘기를 떠나 이것을 일상 가운데 대비해보면 우리는 생의 순간에 놓인 철학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달을 탐사하는 한 개의 팀이 있다고 치자. 이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폴리포니일 것이다. 개별성만 드러나는 모노포니도 중요하지만 전체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호모포니일 것이다. 누
제 17호 태풍 ‘타파’가 북상하면서 제주와 경남, 전남 남해안 일대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항공기 여객선 결항이 속출하고 제주 산간지대에는 7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부산에선 노후주택이 붕괴돼 70대 여성이 숨지고, 울산과 대구에서도 교통사고 등으로 각각 한 명이 사망했다. 얼마 전에는 링링이 한반도를 끼고 강타해 과수농장들이 심하게 피해를 봤다.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17m/sec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저기압을 말하는데 북서태평양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이라하고 북대서양은 허리케인, 인도양은 사이클론이라한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였다. 잘 알고 있는 서양화가 한 분이 큰 피해를 당했다.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정리해 강원도 고향에 미술관을 꾸몄다. 원래의 집은 계곡 하단에 위치했는데 터가 좁아서 계곡 윗부분의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 내달아 터를 넓게 꾸미고 건물 3동을 지어 전시실을 따로 구미고 그동안 꿈꿔왔던 그림을 마음껏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미는 이 미술관을 그대로 덮쳐버렸고 그동안 팔지 않고 애지중지 모아뒀던 2천여 점의 그림이 그대로 쓸려 내려가 한 점도 쓸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듬해 봄 화가
현대시조는 고시조를 이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창작되고 있고 그 전문 창작인인 시조시인들도 2천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얼이 그대로 스며있는,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전통 시가입니다. 현대시조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조를 자연스레 접하고 익힐 수 있는 문화풍토의 조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풍토의 조성은 단순히 어느 한 부분이 좋아져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작업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내적인 풍토 조성이 선행이 되고 오랜 문화의 축적이 진행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서둘러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해결하는 첩경이 현대시조창작교육센터 설립일 것입니다. 현대시조 창작센터는 우리 시조시단의 자생적인 여러 단체를 한데 아우르며 이에 대한 교육 인프라를 보다 확고히 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심장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의 가장 원론적인 진행은 국가예산을 받아 독립된 원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 여러 요로를 통하여 예산 신청에까지 험난한 과정을 사단법인 차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