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 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지난 22일 베트남 호치민 도착해 다음날인 23일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긴급 귀국절차를 밟았으나, 베트남 공항 도착 후 호흡 곤란으로 호치민 탐안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에서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현지시간 25일 14시 48분 운명했다고 민주평통은 밝혔다.
현재 베트남에는 조정식 이재명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이 체류 중이며, 이 수석부의장의 부인 등 가족들과 국내 이송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故) 이 수석부의장은 7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1998년 46세에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여권 내 대표적 정책통이자 ‘친노 좌장’으로 불렸다.
특히 진보 진영의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주류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한 ‘정치 멘토’이기도 했다.
1952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78년 서울대 인근 신림동 고시촌에서 서점 ‘광장서적’을 차려 대표적 사회과학 서점으로 역할을 했다.
이후 민청련 상임부위원장 등 재야활동을 하다가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의 간판으로 36세에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으며, 17대 총선까지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했다.
1989년 전두환 청문회에서 청문회장에 출석한 전두환에게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쳐 이름을 알렸으며, 초선 시절 노무현·이상수 의원과 ‘노동위 3총사’로 불렸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2024년 4·10 총선에서는 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당시 당 대표이던 이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이어갔다. 여권의 대표적인 기획·전략가로 선거 전략 전문가이기도 했다.
고인은 이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10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돼 평화통일 자문 업무업무를 수행해 왔다.
[ 경기신문 = 김재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