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례식날 이후/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방성대곡(放聲大哭) 해본 적이 없다/그날 몸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슬픔의 한 방울까지 다 짜내어 울었기 때문일까/아니면 새로 생긴 슬픔을 가장(家長)의 이름으로 감추어 두었기 때문일까/나를 알고 있는 그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목놓아 울고 싶은 날이 있었으련만/가장이라서 나는 그럴 수 없다/아침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고 있을 때/문득 그가 왔다 곡비(哭婢)가 왔다/여름의 끝자락을 쥐고/고층아파트의 방충망을 붙들고/천지가 무너지듯 그가 울었다/한바탕 통렬한 울음이 계속될 동안/창문 안을 들여다보며 그가 흐느껴 울 동안/지금까지 가슴 속에 감춰둔 내 슬픔도/그의 호곡 하나하나에 사설을 붙였다/여름의 끝자락을 쥐고/내 슬픔을 알고 있는 그가 와서/나 대신 소리쳐 울고 있다 김종해(1941~) 시인의 '곡비(哭婢)가 왔다'다. 모두가 무더위와 폭우에 치여 신음하며 버티는 시절이다. 선생은 이토록 힘든 시간에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참 깊고 굵직한 인생론을 세상에 선물했다. 매미는 보통 7년, 북아메리카의 어떤 종자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유충기간을 보낸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서 고작 7일(에서 한 달) 동안 울다가 생을 마친다. 짝짓기를 끝내자마자 죽는다. 매미의 그 억울한 운명을 알고 나면, 짜증을 내며 귀를 막고 싶었던 그 요란함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통곡으로 여겨진다. 관대한 사람이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곡비’를 모를 것이다. ‘울 곡(哭)’, ‘여종 비(婢)’. 왕가나 지체 높은 집안에 초상이 나면 돈 몇 푼, 쌀 몇 말에 슬프게 울어주던 여인들이었다. 그 시절의 예법이 들어있는 '가례'(家禮)는 큰일 치르는 동안 곡소리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곡비들이 상가(喪家)의 위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친부모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슬피 울지 않았다. 행세하는 집안의 초상에 곡품 팔러 와서 그 댁의 효성 깊은 자식들보다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 진짜 잘 울드만”, 하는 소문이 저 먼 동네까지 나야만 하는 사정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네들은 대개 부실한, 또는 먼저 간 남편을 대신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그 곡소리의 비극미가 극에 달했던 이유다. 21세기는 다정하지 않다. 호전적이다. 각박하고 위태롭다. 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세상이여! 그 본질은 잠자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다. 노인 중년 청년 할 것 없이, 언뜻 보면 다들 화려해 보인다. 근사한 차림새에, 비싼 자동차 몰며, 좋은 음식 먹고 풍요를 구가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몸과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휴식은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왕의 시간이 아니다. 만사(萬事)가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미물들의 과욕이 초래한 징벌이다. 그들은 시인처럼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목놓아 울기는커녕 그 마음조차 먹지 못한다. 그 시시한 낭만주의는 신을 따라 죽어버린지 오래다. 곡비의 통곡은 매미떼와 혼자서 슬픔을 삼키는 이 시대의 왜소한 가장들의 속울음으로 이어진다. 눈 밝은 소수는 이미 오래전에 할 말을 잃었다. 침묵이 그들의 언어다. 그들도 실은 몹시 불안하다. 이 거대한 슬픔의 끝은 어디인가.
며칠 전 서울의 기온이 38도를 넘겼다. 체온을 넘겨버린 기온에 바람도 지친 듯 무더운 오후, 버스 정류장 스마트 쉼터에서 한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이러다 죽겠다”라고 중얼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폭염은 이제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주로 북극곰, 해수면, 탄소 배출량 같은 거대한 이미지로 뉴스, 신문, SNS 등지에서 전달되었다. 중요하지만 삶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러나 어느새 위기는 성큼 다가왔다. 기후 위기는 이제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경로당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동네 소식,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버티는 혼자 사는 어르신의 이야기, 더위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이웃. 그리고 그중 다수가 노인이다. 통계는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온열 질환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약 80%가 65세 이상이다. 단순히 불편한 정도를 넘어 더위가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추측이 아니라 현실이다. 게다가 해가 지날수록 심화하는 기후 위기로 인해 폭염의 빈도와 강도, 지속 기간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례적인 더위’는 매년 갱신된다. 노인이 더위에 취약한 이유는 자명하다.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갈증을 인지하는 감각도 둔해진다. 당뇨, 심장 질환 등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 요금 때문에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이 모든 요인이 겹치면 몇 시간의 폭염이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모두가 똑같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젊은이에게는 그저 무더운 며칠일 수 있다. 하지만 노화된 몸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때로는 생명까지도 위태롭다. 특히 소득이 낮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에게 무더위는 기상 이변을 넘어 사회적 위험이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무더위 쉼터 운영이나 냉방비 지원 같은 대응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주말이면 닫히는 은행, 관공서, 거동이 불편해 쉼터까지 가지 못하는 어르신들, 지원금 신청조차 어려운 홀로 사는 노인. 무언가를 해도 닿지 못하는 사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동시에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 위기는 불공평하게 진행된다. 가장 약한 사람부터 무너진다. 이 점에서 폭염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이상 기온, 열대야, 열섬 현상, 이 모든 단어 속에 갇혀 고통과 위협을 받는 이는 나의 이웃이며 그의 생명이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미래의 일, 전 지구적인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더위는 이제 현실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목소리부터 침묵시키면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오늘, 여기, 8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삶을 노리고 있다. 기후 위기를 일상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8월이 다가오면 가슴속 어디에선가 희망의 감각기능이 작동되는 것 같다. 8월이면 눈부신 태양과 함께 우리들 가슴 속 또한 밝아지는 것 같았다. 복된 순간의 기쁨이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분명 초등학교 때부터 가슴 속에 각인된 정서적 기능의 역할일 것이다. 8·15해방에 이어 6·25전쟁 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광복절이 되면 담임선생이 태극기를 그려오라고 했다. 종이도 귀했다. 하지만 컴퍼스가 없어서 사발을 엎어놓고 원을 만들고 물결 표시로 반으로 나눠 위로는 붉은 색을 아래로는 청색을 칠하여 태극기를 완성해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교장선생의 선창에 의해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크게 외쳤다. 그때 불렀던 광복절 노래는 지금도 외울 수 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든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이 날이 사십년 …’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의 양(量)이 국가의 양이고, 교육의 질(質)이 국가의 질이다.’ 라고 하였다. 8월이면 내 가슴속 행복의 감지기가 작동하는 것 또한 초등학교 당시 교육의 힘이요. 애국적 정서의 정의로운 감각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지금처럼 지연과 학연과 정치이념에 따른 ‘내 편이 아닌 너는 죽어도 안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우선 배고픔을 면하고, 원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좋은 꿈이 이루어지는 소박한 삶을 희망하며 살았다. 우연한 일이었다. 지난 7월 중순 어느 지방신문에서 읽게 되었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 정읍 출신 박기서 씨 별세라는, 기사였다.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씨가 7월 10일 0시 10분께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에서 일하던 1996년 10월 23일 인천시 중구 신흥동의 안 씨 집에 찾아가 ’정의봉‘ 이라고 적은 40cm 길이 몽둥이로 때려 살해 했다. 범행 후 그는 7시간 만에 경찰에 자수하고 “백범 선생을 존경했기에 안두희를 죽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고인은 1997년 11월 11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지만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 때 사면 석방됐고 소신여객 버스기사로 일하다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다. 한편 안두희는 1949년 6월 26일 서울 서대문 인근 경교장인 현 강북 삼성병원자리에서 권총으로 김구를 암살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육군형무소에 갇혔다가 감형되었다. 1951년 2월에는 풀려나 사면까지 받고 군에서 포병장교로 복귀했다고, 자세하게 신문은 밝히고 있었다. 사진 속 박기서 씨는 흰머리에 크고 검은 눈, 굳게 다문 입과 큼직한 콧날이 그의 정신과 삶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동물적 인간의 기본형질과 습성 때문일까. 인간은 힘센 사람과 먹잇감을 가지고 있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 자를 따라붙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결국은 친일, 친미, 친군부, 이어서 힘센 그들의 정당으로 이어지면서 아들딸 거액 과외 시키고 유학 보내고 우리나라에서는 S대학을 졸업시켜야 자본의 세습과 권력의 이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떠오르게 했다. ‘교육이 그 나라다’는 말도 있다. 해방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바른생활’이라는 책을, 중학교 때는 ‘도덕’ 책을,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공민’이라는 교과서가 있어 배우고 실천하게 했다. 지금은 인문학적 교육을 위하여 바른생활을 위한 교과목을 얼마큼의 비중을 두고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이 자기 이익과 뜻에 맞는 사람들의 별천지로 되어 가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부 젊은이들이 ‘공의로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영어·수학·법학만의 공붓벌레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정의롭고 공의로운 죄 값을 치르고 생을 마감한 박기서 씨는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정읍에서 태어났다. 그분은 권력자의 오만과 돈방석 위의 교만과는 거리가 먼 시골 태생으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다 갔다. 그분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는 내 제자 A군이 정읍 고부에서 목사로 봉직하고 있기에 더욱 색다른 감정이었다. 이어서 안두희를 사살할 때 사용했다는 40cm의 몽둥이로서의 ‘정의봉’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지난해 12·3 사태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토끼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 되는 것 아니라고.
2번 통독하고도 새롭게 느껴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우주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때마다 그 끝없이 광대함에 오히려 눈 앞이 아득해지고, 그 속에 사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지구는 수성, 금성 다음으로 태양에 가까이 있는 태양계의 행성이다. 그리고 태양계와 같은 항성계 1000억 개에서 2000억 개가 모여서 '우리은하(Milky way Galaxy)'를 이룬다. 그리고 우리은하와 같은 은하들이 수천억 개에서 2조 개가 모여서 관측 가능한 “우리우주”를 이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여기까지이지만 과학자들은 '우리우주'와 같은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을 말하기도 하니 우주의 광대함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할까 하는 질문도 이제는 식상할 정도이다. 검증할 수는 없지만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우리우주와 똑같은 조건을 가진 우주도 무수히 많을 것이며, 그런 우주들 속에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너무도 큰 이야기이니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인으로 태어난 우리들을 생각해보자. 2025년 8월 현재 지구의 인구는 약 81억 명이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인으로 태어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해내기는 우주의 광대함을 계산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81억 명 중에서 우리가 실제로 일생동안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지역, 직업, 생활반경 등을 고려하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많아도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을 넘기 힘들다. 또한 만난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조건, 성향에 맞아야 서로 이끌리게 되고, 그것이 만남으로 성사되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아무리 호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처음에는 좋았으나 오해와 다툼이 잦아지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족이 될 확률은 마치 사막에서 특정 모래알 하나를 찾고, 그 옆에서 또 다른 특정 모래알 하나를 찾아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 이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 그렇게 만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고 요구하고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 미워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만난 상대방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나와 그와의 관계형성을 통하여 서로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잠재되어있는 좋은 인격을 이끌어내어 꽃피울 때 가능한 것이다. 서로 폭력으로 상대방을 다치게 하고, 말로 인격을 말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지금 기적과 같은 확률로 만난 소중한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지도 않고 짓밟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은 한번 하늘을 우러러 수많은 별들을 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별들까지 마음으로 보자.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기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더 소중하게 바라보자. 그러면 사소하지만 소중한 내일이 밝아올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시 갑)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이 일파만파다. 민주당은 이 의원을 긴급 제명 처리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이 의원의 국정기획위원 해촉을 지시하는 등 강경모드 일색이다. 이춘석 의원이 여당 4선의 중진 의원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코 의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충분히 시사한다. 국회의원이라는 방탄우산을 쓰고 저지르는 불법·편법에 대한 일제 점검과 대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누구든 과도한 특권은 허용돼선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6일 차명 주식거래 논란이 불거진 뒤 탈당한 이춘석 의원에 대해 긴급 ‘제명’ 조치했다. 전날 이 의원의 차명 주식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당초 민주당은 당규 제42조 비상징계 규정에 따라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중징계를 내리려고 하다가 이 의원의 탈당으로 징계를 할 수 없게 되자 극약처방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 당규 제18조는 ‘징계 회피 목적으로 징계 혐의자가 탈당할 경우 각급 윤리심판원은 제명에 해당하는 징계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상징계 규정에 따라 이춘석 의원을 제명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특히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의 기조대로 엄정하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엄단하겠다”고 덧붙였다. 야당의 파상공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춘석 위원장의 올해 초 재산신고에는 주식을 소유한 내역이 없었고, 보도에 따르면 보좌관 명의로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차명 주식거래는 명백한 법령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곽규택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법을 심사하고 정의를 논해야 할 법사위원장이 차명 거래 의혹에 휘말렸다는 사실만으로 국회 전체의 권위와 윤리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의 비판도 예사롭지 않다. 홍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작년 국정감사 때도 비슷한 정황과 의혹이 불거진 바 있는데 이 의원은 상습적으로 보좌관의 휴대전화를 들고 간다는 것이냐”라며 “철저하게 진상을 확인하고 그에 응당한 처분이 뒤따라야 마땅하다”고 맹비난했다. 국회의원들 특혜 청산은 정치권 최대의 단골 화두다. 국회의원은 고유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 수십 가지의 공인된 혜택 외에도 ‘갑’의 위치에서 유무형의 특혜를 적지 않게 누린다. 선거 때만 되면 특혜를 폐지하겠다 해놓고 투표가 끝나면 이심전심 유야무야 그냥 넘어간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런 정치권 행태에 대한 민심은 날로 험악해지고 있는 판이다. 집권당 현역 중진 의원이 자기의 업무와 관련된 업종의 주식을, 그것도 차명으로 불법거래하고 있다는 의혹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춘석 의원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이었다. 그의 휴대폰 사진에 나오는 주식들은 공교롭게 그제 발표된 ‘국가 AI 프로젝트’ 관련 종목들이다. 이 정도의 정황만으로도 유권자로부터 용서받을 공간은 전혀 없다. 이번 사건을 여야가 알량한 동업자 의리를 발동하여 재수 없는(?) 한 사람만 희생양으로 삼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건 최악의 결말이다. 적어도 정치인이 실정법을 어기는 악덕은 사소한 경우라도 적발하여 의법처리하는 게 맞다.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살리지 못한다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꾀한다는 거짓 명분으로 세금이나 축내는 방자한 국회는 더욱 거센 무용론에 빠질 것이다. 이 의원의 불법은 명명백백 밝혀내야 한다. 차제에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시대착오적인 특혜와 함께 불법까지 용인하는 무감각도 일제히 도려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교육은 기회이며,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최근 방송통신대학교 동두천 학습관의 폐관 방침은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시민들의 배움터이자 희망의 공간이었던 학습관이 충분한 공론화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동두천은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시 면적의 42%에 달하는 땅을 미군에게 제공하며, 경제적 피해와 발전 제약을 감내해 왔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조건 속에서도 시민들은 묵묵히 삶을 일구어 왔으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일터에서 고된 하루를 마치고 야간이나 주말을 쪼개 학습관을 찾는 이들, 육아와 생계를 병행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학업,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시작한 도전. 동두천 학습관은 이 모든 이들에게 열린 배움의 창이자 재도약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문이 닫히려 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본부는 효율성과 운영비 절감을 이유로 동두천 학습관 폐관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조직·인력 운영 효율화를 위한 조직개편 기본계획’을 시행하며, 전국 12개 임차 학습관과 2개 별관 학습관의 운영 종료를 순차적으로 추진 중이다. 해당 지침은 임차 건물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동두천 학습관 또한 ‘임차 시설’이라는 이유로 폐관 대상에 포함되었다. 문제는 폐관의 기준이 '소유 여부'에 치우쳐 있으며, 실제 교육 수요나 지역 특수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운영 효율이라는 명분이, 지역 시민들의 절박한 배움의 권리를 외면할 만큼 정당한가?” 현재 동두천 학습관은 경기북부 5개 시·군에 거주하는 방송통신대에 재학 중인 300여 명에게 실질적 학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서 학습관은 사실상 유일한 고등교육 접근 통로이며, 이 시설이 문을 닫게 되면 학습자들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곧 학업 포기와 학습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평생교육, 지역균형발전, 교육복지. 이 세 가지 가치는 오늘날 국가와 공공기관이 강조하는 핵심 원칙이다. 그러나 정작 수도권 북부의 소외지역 시민들은, 자신의 배움터 하나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동두천시는 2024년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유아부터 노년까지 전 생애에 걸친 교육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시민 누구나 학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교육 사다리를 놓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학습관은 그 사다리의 마지막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 고령층 시민들에게 이 공간은 재도전의 상징이며, 지역사회 복지 기능을 보완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교육을 포기하는 도시는 미래를 잃는다. 시민이 학습을 포기하는 사회는 더 큰 복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 폐관되는 것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교육의 희망’이다. 지금 멈추는 것은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그러므로 이 결정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폐관은 시민들과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국가의 교육 철학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학습관의 존치를 다시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에게도 간곡히 호소한다. 지역의 작은 배움터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누구든, 어떤 형편이든,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동두천시는 시민들과 함께 학습관의 존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민주당의 신임 당 대표로 정청래 의원이 선출됐다. 처음부터 그가 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 이른바 ‘명심’은 박찬대 후보에게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고, 박 의원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지지 또한 견고하다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찬대 후보는 낙선했고,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정청래 후보가 당선됐다. 경선 과정은 물론 당선 이후 정청래 대표가 보여준 태도는 매우 강경하다. ‘내란 당은 해산시켜야 한다’, ‘사과와 반성 없이는 악수할 수 없다’는 발언만 봐도 그의 대야(對野) 강경 입장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점은 정청래 신임 대표가 국민의힘을 인사차 예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당장 국민의힘을 찾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주요 정당의 새 대표는 선출 후 이틀 이내에 상대 정당을 예방하는 것이 관례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정 대표의 인식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내란 세력이며, 반성조차 없는 내란 정당이기 때문에 협치나 정치적 파트너로 볼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상대를 인사차 방문한다는 것은 정 대표의 관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설령 정 대표의 판단과 주장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이러한 강 대 강의 대치는 정치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 시기에도 정치는 실종됐었다. 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며 정치는 점차 실종됐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법안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여권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걸림돌 없이’ 실현할 수 있는 국면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대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고, 제22대 총선 지역구 기준으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득표율 차이는 불과 5.2%P.에 불과한데, 여권 지지층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정치가 지속된다면, 국민의힘을 선택한 유권자의 의사는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소수의 의견을 정치 과정 속에 반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라진 곳에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계몽’뿐이다. 그러나 ‘계몽’이라는 방식이 설사 시도된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대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불안만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은 ‘선(善)’은 자신들뿐이라는 독선적 사고를 벗어나야 하고, 또한, 국민의힘이 아무리 무능하고 과거 내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이들을 전면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의힘 내부의 ‘건전 세력’과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한동훈 전 대표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계엄 해제에 앞장섰던 정치인도 있었고, 소수지만 탄핵에 찬성한 인사들도 존재했다. 이들이 있는 한, 민주당은 국민의힘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살아 있어야 여권도 성공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고 2년 정도가 지났음에도 시행사나 시공사에서 하자보수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는 경우 입주자대표회의는 하자소송을 준비하게 됩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하자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면 이를 위해서 하자진단을 위한 업체와 법률 사무 대리를 위한 법무법인 선정을 하게 됩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들을 대표하여 소송을 진행하기 위하여는 입주민들로부터 채권양도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채권양도라는 입주민들이 시행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채권을 입주자대표회의라는 법인(단체)에 이전하는 것입니다.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수분양자인 개별 입주민들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이들이 모두 개별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 수백 명의 입주민을 대리하여 소송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소송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진행을 위하여 입주자대표회의를 입주민들의 대표로 내세워 소송을 진행하게 되고 이를 위해 채권양도라는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입주민 중 한 명을 대표자로 세워서 진행하는 선정당사자 방식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방식은 소송 중에 구분소유자가 변경되면 선정당사자를 변경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어 최근에는 대부분 채권양도라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채권양도 방식이 소송신탁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적법성에 대하여 논란이 있기도 하였으나, 대법원에서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양도 경위, 방식, 시기, 양도인과 양수인의 관계, 하자보수의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구분소유자들이 입주자대표회의에게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양도는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대법원 2009. 2. 2. 선고 2008다84229 판결)함으로써 그 적법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채권양도는 단지 소송을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통상 개별 하자의 제척기간에 임박하여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척기간 내에 입주자대표회의가 시행사에 대하여 권리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채권양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의 권리행사가 효력이 없어 추후 소송에서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채권양도 비율이 낮은 경우 공용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줄어들게 되고, 실제 공용부분 하자보수에 대한 비용이 다시 주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어 채권양도 비율을 높이려고 하고 있고 통상적으로 95% 이상의 채권양도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채권양도는 입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확정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에 이전하는 것이므로 이후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소송을 통해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자의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 채권양도서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추후 수령한 손해배상금은 하자보수 등 그 목적에 맞도록 사용한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어서 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형사책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채권양도에 협조하여 원활하게 소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해마다 수천 명이 사망하는 등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가 여전하지만 이에 대한 안전 활동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정책적 노력조차 진전되지 않는 등 불감증이 만성화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다수 교통사고가 ‘안전의무 위반’인 현실을 감안하면 안전 홍보 강화, 안전교육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줄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날마다 발생하고, 시시각각 죽고 다치는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복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8202명으로, 같은 기간의 산업재해 사망자 6319명과 자연재난 사망자 91명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또 지난해 발생한 전국 교통사고 19만 6249건(사망자 전국 2521명, 경기도 472명) 중 55%는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 주의를 좀 더 기울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매년 2500명을 넘기고 있음에도 국가나 지자체의 관심에서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자연·산업재해는 매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며 피해 예방을 위해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이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교통사고는 중대 재난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등 대책이 무디기 짝이 없다. 사실상 안전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가 지난달 말 ‘2025년 하반기 언론 간담회’에서 공개한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경기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5만 217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경기도의 화물차 교통사고는 25%, 고령보행자 사고는 19%나 증가하며 일부 취약 분야에서 사고 위험이 급격히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물차 관련 사고는 총 88건으로서, 이 가운데 41%는 후미추돌 사고로 생긴 인명 피해였다.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는 전년 대비 19%, 연평균 기준으로도 13.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총 81명으로, 이 가운데 31명(38%)은 무단횡단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증가도 문제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전국의 교통사고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지난해 4만 2369건으로 36%나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고령 운전자에 의해 교통사고 사망 비율이 2019년 23.0%에서 2023년 29.2%로 늘어났다. 2023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 2551명 가운데 48.6%가 65세 이상이다. 고령층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사고가 나면 부상에 그치지 않고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 유형에서는 보행자 사고가 44.4%로 절반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교통사고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부족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폭염·폭우 등 자연 재난 피해에 적용하는 재난안전문자 시스템에 비하면 교통사고 예방조치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물론 전국에서 상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관리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실시간 정보 문자를 보내는 시스템, 주의력을 높이기 위한 사고 위험 통보 등은 도입이 얼마든지 가능한 영역이다. “교통사고 대부분은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교육·홍보 등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 관계자의 견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와 지자체 등이 교통사고 문제에 관심을 높여 대책 마련에 앞장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바로 나와 내 가족의 문제다.
아침 7시, 집 근처 마트 앞에서 열명 남짓이 버스에 올랐다. 으리으리한 어느 대형 건물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서둘러 내린 후 잰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바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물류센터의 풍경이다. 출근 체크를 하고 사물함에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를 넣었다. 스마트워치조차 허용되지 않은 그 곳에선 모두가 일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잃는다. 나는 출고 작업 중 하나인 포장 업무에 투입됐다. 고객이 주문한 물품들이 바구니에 담겨 오면 일일이 포장해 컨베이어벨트에 실어 보내는 단순 반복작업이었다. 처음엔 재밌었다. 고민도, 갈등도 없는 노동환경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마엔 땀이 흐르고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얼음물을 계속 마셔도 이상하게 목이 자꾸 말랐다. 에어컨은 없었다. 그 사이 바구니는 끊임없이 나를 압박하며 밀려왔고 컨베이어벨트로 물건을 올리는 손은 점점 바빠졌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실수도 늘었다. 정신없이 박스를 보낸 후 시간을 보면 고작 5분이 지나 있었다. 시간은 더뎠고 다리는 아파왔다. 점심시간이 됐다. 아픈 다리를 끌고 구내 식당으로 향하니 입구의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아이스바가 잔뜩 들어있었다.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복지 중 하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직원들이 너도나도 아이스바를 하나씩 입에 문다. 밥보다 시원한 얼음 한 조각이 간절했던 나도 입에 문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밥을 먹던 나는 갑자기 음식을 넘기기 힘들어져 절반 이상을 버렸다. 더 먹으면 속이 울렁거릴 것만 같았다. 겨우 속을 달랜 후 오후일을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이상하게 땀이 더 많이 흘렀다. 박스 한 개를 포장할 때마다 육즙처럼 흐르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마도 점점 뜨거워지는 듯했다. 오후 3시쯤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후, 여기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 얼굴도 더 뜨거워졌고, 땀은 멈추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은 거의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겨우 3분, 5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일당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추가 수당 프로모션의 달콤한 유혹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불현듯 ‘물류센터는 현대판 탄광’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에어컨도, 햇빛도 없는 곳에서 오직 조명과 먼지와 선풍기 바람만이 온몸을 끈적하게 휘감고 있었다. 3분씩, 5분씩 보낸 시간은 어느새 퇴근시간 한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희망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저녁 6시, 드디어 일이 끝났다. 하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고 뜨거워진 얼굴도 식을 줄 몰랐다.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퇴근 셔틀버스에 겨우 몸을 실었다. 집에 오자마자 두통약을 입에 털어넣은 후 씻고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고. 밤새 끙끙 앓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피곤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열사병 초기 증상’이 연관검색어로 나왔다. 한여름 폭염 속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마흔 넘은 우리 같은 사람은 일할 수 있는 곳이 여기 뿐이라….” 현장에서 들은 누군가의 말도 계속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