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션(Diction)’이라는 외국어를 칼럼의 표제어로 하면서 좀 망설였다. 하지만 현대인의 말하기(speech) 소양으로, 정확하면서도 유창한 발음 구사 능력을 주제로 삼자니, ‘딕션’이란 용어를 피해 가기 어렵다. 일부 사전에서는 ‘딕션’을 ‘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으로 풀이한다. 그런 점에서 ‘딕션’과 ‘발음’은 그 의미역이 다르다. 우리는 ‘발음’이란 말의 의미를 ‘딕션’의 의미처럼 넓히지 못하였다. 즉 ‘발음’을 그냥 소리 자체에만 묶어 두었을 뿐, 인간의 실제적 언어생활에서 수행하는 모든 ‘발음 현상’으로 확장하여 ‘발음의 뜻’을 적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사용 및 기능 맥락이 풍부한 ‘딕션’이라는 말을 빌려와 쓰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발음만으로는 효과적인 발음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 발음은 정확성과 더불어 유창해야 한다. 발음이 유창하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발음이 단순한 소리로 그치지 않고, 그 발음이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어휘, 문장, 문단 등의 의미나 구조와 잘 맞물려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내용의 의미 및 주제와 호응해야 함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의 발음이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내 말하기의 리듬, 템포, 억양, 정서적 분위기, 논리적 흐름 등에 알게 모르게 가닿아 있어야 한다. 이를 발음의 유창성이라 한다. 딕션은 이런 개념과 작용까지를 포함하는 발음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딕션이란 만만치 않은 소리 분별력과 함께 내가 말할 텍스트에 대한 고도의 감수성을 요구한다. 어떤 특정의 연설이나 강연이나 설교나 방송 진행 등이 유독 내 귀에 잘 들린다면, 전달자의 딕션이 어떠했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공연 콘텐츠가 들을 만했다면 무대의 인물이 어떤 딕션으로 나의 청각적 호응을 불러들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딕션은 배우, 가수, 방송인들에게는 익숙한 용어다. 그들은 딕션과 관련하여 무수히 닦달을 받으며, 딕션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다. 스피치 전문가들은 말하기 수행(performance)의 기본 기능으로 딕션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딕션이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발음이 총체적으로 뛰어난 음성적 전달력을 지녔음을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총체적 말하기 역량은 발음 따로, 어휘 따로, 표현 따로, 내용 따로, 태도 따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딕션 능력이란 간단하지 않다. 발음이란 것이 그것 하나로 고립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훌륭한 스피치 수행의 깊은 맛을 터득하는 것이다. 마치 골절로 아픈데도 그 영향이 몸 전체에 유기적으로 퍼져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드라마에서 배우 김혜자 씨의 극중 캐릭터에 우리가 은연중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딕션이 주는 깊은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유재석의 방송 진행이 오래 호응을 얻는 것은 그의 딕션이 지닌 유창성 때문이 아닐까. 명가수 패티 김 노래의 오묘한 매력은 그녀의 가사 딕션이 명료하고 유창한 데서 생성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이 당초 우려와 달리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돼 한숨을 돌리게 됐다. 회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형성된 몇몇 이상기류들 때문에 온갖 험궂은 장면들이 예측되기도 했지만 두 정상은 외견상 큰 불협화음 없이 회담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 되새겨야 한다. 한미는 ‘동맹 강화’를 통해 난제들을 풀어가야 할 큰 숙제를 떠안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당초 예정보다 20분 긴 14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우선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위한 긴밀한 협력에 합의했다. 눈에 띄는 장면은 두 정상이 북미 대화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피스메이커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건의하면서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좋은 일”이라며 “북과 큰 진전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경제 분야에선 이미 알려진 대로 조선업을 중심으로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정상회담에 동행한 국내 기업들은 조선과 원자력, 항공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공동 펀드 조성, 투자, 기술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총 11건의 ‘제조 파트너십’ MOU·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한미 정상회담을 선방(善防)으로 이끌어 간 배경에는 방미 직전에 거둔 성공적인 한일 정상회담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17년 만에 공동문서를 발표하면서 협력 강화를 천명했다. 두 정상은 공동문서에서 역사 인식의 계승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미일 안보 공조, 셔틀 외교 재개를 명시했다. 미래 산업 협력, 사회문제 공동 대응, 워킹홀리데이 확대를 통한 청년 교류 활성화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수준에 대한 합의는 미지수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반환을 전제로 우리가 빌려준 주한미군 기지 부지에 대한 소유권 요구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은 새로운 이슈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 문제도 아직 골격이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무역 합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원래대로 하기로 했다”고 언급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3500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사뭇 해석이 엇갈리는 어정쩡한 상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펼쳐진 긴장 국면을 생각하면 회담 결과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운 내용이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례 없이 급거 미국을 찾았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숙청(purge) 또는 혁명(revolution)으로 보인다”라는 글을 올려,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었다. 어쨌든 한국의 외교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외교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그 기둥으로 한다. 군사동맹의 범주를 넘어서 경제 동맹으로서 이해관계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새로운 국제질서에 걸맞도록 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때마침 중심 테마로 떠오른 조선·원전·반도체 등 경제 협력 관계를 보다 강화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당당히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국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 가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방향은 백번 옳다. 한미 외교, 나아가 한미일 외교 역시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국익’을 중심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그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시작된 건 수년전이었다.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였는데 여러치료로 호전되었다가 최근 다시 재발하였다. 대장암 발병 4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동료의 장례식에 다녀오고부터 였다. 만성위축성 위염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번에 2일 동안의 밤샘음주로 급성위염이 다시 생겼다. 자율신경검사상 자율신경에너지 저하와 교감신경항진의 긴장된 상태로 두근거림과 함께 불안도 따랐다. 평소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이번에 항우울제와 불안제가 추가되었지만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되며 무기력해졌다. 체중이 급격이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 내원했다. 한약과 약침 등으로 자율신경기능과 면역기능을 개선하는 치료를 시작하였다. 장과 자율신경 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뇌화학과 에너지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치료로 5kg정도 감소하였던 체중이 서서히 회복되어 원상태로 돌아왔다. 자율신경기능이 회복되고 극도의 우울과 불안이 조금씩 호전됨에 따라 그가 불안한 대상인 죽음을 마주할 힘이 생겼다고 판단되어 지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 주변의 많은 죽음에 대해서 나누었다. 슬퍼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에게 물었다. 그에게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물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아쉽게도 시간이 다 되어 나누지 못한 연구들을 소개해본다. 죽음학의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저서 (사후생)에서 주로 어린이 환자의 임종을 지키면서 관찰한 공통된 현상과 2만여건이 넘는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연구하여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견해를 기술한다. 그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의 이동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심장내과의사인 핌 반 롬멜은 2001년 의학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심장정지 후 회생한 사람에서의 근사체험)을 발표한다.-네덜란드에서의 전향적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소생한 죽었다고 말한 62명의 환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기억했다. 41명의 환자들은 근사체험의 대표적인 경험을 했다. 근사체험의 항목에는 죽었다는 주관적인 느낌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신체와 몸이 분리되는 체외이탈을 경험했는지, 터널통과 빛과 의사소통 등을 포함되었다. 그의 연구는 최초의 근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연구였고 그 이후에도 많은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저서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는 다른 어떤 치료로도 좋아지지 않았던 환자에게 최면치료를 시작하면서 전생의 환자와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 대화한 경험을 기술한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삶은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기 위한 배움터이며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으며 우리가 원하는 배움과 성장을 할때까지 환생한다는 메시지를 듣는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런 내용에 대해서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 주임교수를 지낸 이안 스티븐슨은 생후에 전생을 말하는 아이들의 진술이 사실인지 직접 찾아가 검증하는 방식의 인간의 환생윤회에 대해서 40년간 2500례의 연구를 남겨 환생의 증거를 남겼다. 근사체험과 환생에 대한 연구들은 미지의 영역인 죽음이후에 대해 문틈으로 살짝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피할 수 없는 것,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도움을 준다.
낙성대(落星臺·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강한찬(姜邯贊) 장군의 경우다. 80돌 광복절을 지내며 역사계와 언론 동네 일각(一角)에서 잘못된 이름 ‘강감찬’을 뜻(원리)에 맞는 제 이름 강한찬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왜 광복절의 시기에 역사 인물의 이름 자(字) 시시비비일까? 고려 강한찬 장군, 거란 10만 대군을 흥화진에서 깨고 이듬해 재침(再侵)한 적을 귀주대첩(1019년)으로 박살냈다. 충무공 이순신, 고구려 을지문덕과 함께 ‘구국의 세 영웅’ 중 한 분이다. 낙성대는 별(星 성)이 떨어졌다(落 낙,락)는 강한찬 장군 태생(胎生) 설화의 지명이다. 당시는 쥐새끼처럼 고려에 찍소리도 못 내던 왜(倭·일본) 역사 열등감의 극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워낙 오래 입에 붙은 이름이라 강한찬 이름이 낯선 이들도 있겠다. 저 이름 자(字)의 ‘邯’은 중국 역사도시 ‘한단’, 대학입시 국어 때문에 기억하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그 ‘한’이다. 어떤 이가 한단에서 어떤 도사의 베개를 빌려 잠깐 잠들었던 사이에 부귀영화의 꿈을 꾸었다는 고사, 부귀공명의 덧없음을 이른 것이라고들 푼다. 외래어처럼 한국어의 주요한 갈래인 한자어에서, 또 중국어도 邯(의 발음)은 ‘한’이다. 한자발음 표기법(발음기호)인 반절(反切)로 邯은 호안절(胡安切), ‘ㅎ’과 ‘안’을 합쳐 ‘한’으로 읽는다. 일본은 邯을 ‘간’이나 ‘칸’으로 읽는다. 한자가 전해진 경로가 달라 생긴 차이다. 강한찬이 ‘강감찬’이 됐다고 보는 까닭이다. ‘달다’ 뜻 감(甘)자가 邯에 들어있어 영향을 주기도 했겠다. 허나 邯을 ‘한’ 아닌 다른 소리로 읽을, 음운(音韻)과 의미상의 이유 없다. 언덕 阝(부)는 땅이름의 부속글자로 많이 쓰인다. 교묘한 언어의 공작(工作)이나 계략, 말장난 같은 (역사)왜곡일 것이다. ‘역사의 광복’이란 주제가 떠오른 이유다. 네이버의 한자사전은 이 邯의 풀이로 먼저 ‘땅 이름 감’이, 다음 뜻으로 ‘조나라 서울 한’이 올라있다. 한자 역사와 제자(製字·글자 지음), 작동의 원리를 아는 이들이 한숨짓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자전에서는 邯을 ‘감’자 발음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한’ 발음으로 찾은 邯에는 ‘조나라 서울 한’만 있다. ‘감’이란 풀이는 아예 없다. (민중서림 한한대자전) 그 사전은 한단지몽 한단침(枕·베개) 한단지보(邯鄲之步·남 따라하다 제 걸음도 망가졌다는 고사) 한단학보(學步) 등의 용례를 보여준다. ‘감’ 발음 어휘는 없다. 네이버 한자사전이 ‘감’ 발음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리라. 그 사전이 (강한찬을 ‘강감찬’으로 잘못 쓴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을 따라) 틀렸다는 논의다.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거봐, 강감찬이 맞지?” 우기기도 한다. 이견(異見) 있다면 (논리적으로) 반문해주기 바란다. ‘뜻’을 담는 이름의 다른 얼굴은, 인간의 순수한 염원(念願)이다. 스승인 문자학 바탕의 국어학자 故 진태하 선생의 가르침이다. 중국의 역사와 법(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강효백 교수의 통찰이기도 하다. 조롱기 짙은 저 장난질의 ‘강감찬’을 이제 역사에서 지운다. 낙성대의 강한찬 장군을 다시 우러른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가까이 지났다. 그러나 참변으로 아들·딸과 형제·자매 등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과 경찰 등 공직자들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젊은 소방관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1일자 5면, ‘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 실종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 20일 낮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아래서 숨진 30대 초반 소방관을 경찰이 발견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뒤 연락이 끊어졌고,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며 “(저의) 부모님은 제가 그 현장을 갔던 것만으로도 힘들어하시는데 희생자들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이게 진짜가 아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당시에도 단순한 충격과 스트레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PTSD)라고 할 수 있는 고통, ‘감당이 안 될 정도’의 충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불안장애로 고통을 겪던 또 다른 소방관도 생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고성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지난달 29일 도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SNS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소중한 생명이 공공의 책임으로 희생되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유가족들 만큼이나 참사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분투했던 이들의 상처도 국가가 돌보았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경기도 소방대원들의 마음 건강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도 성명을 발표, 참사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했던 모든 구조자들의 심리적·정서적 트라우마를 방치하고 치유와 회복을 도외시했던 지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도 같다. “상상조차 어려운 고통과 싸우며 버텨온 젊은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다”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국가적, 집단적 트라우마를 온전히 마주하고 치유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과 심리 지원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과 대형사고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와 유가족, 구조대원과 관계자들을 위해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김 지사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구조대원과 관계자 등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어디 사고와 재난 현장뿐이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공직자들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업무상 우울·적응장애 등) 인정 공무원 수는 274명(2022년 기준)이었다. 이는 업무상 정신질환 전체 요양자 수의 11배였다. 같은 해 업무상 이유에 따른 공무원 자살 순직 신청은 49건이었다. 이 가운데 22건만 순직으로 인정됐다. 심각한 것은 1년 전에 비해 약 2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2021년은 26건(승인 10건)이었다. 지난 6월 16일 국회도서관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주최로 열린 국회 긴급토론회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공무원, 교원, 소방 등 공무원 민원 응대 대책 마련을 위한 정기적인 실태와 기초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장 공무원들이 불안장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일이 일어나자 정부는 이태원 참사 현장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약 3300명 정도를 대상으로 후속 심리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공직자들의 죽음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기 바란다.
답은 없습니다. 옳음도 그름도 그러합니다. 생각 따라 다르고, 처지 따라 바뀝니다. 누군가에게는 절반이나 마셔버린 술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절반이나 남은 술병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술병이 ‘벌써’가 되기도 하고 ‘아직’이 되기도 합니다. 말 역시 그러합니다. 뜻을 전하기 위한 게 말이지만, 되려 뜻을 왜곡하는 게 말이기도 합니다. 말이 말을 뒤집고 말이 말을 감춥니다. 뒤집고 감춘 건 말인데, 뒤집히고 멀어지는 건 사람입니다. 말을 아끼고 가려 할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사랑도 이별도 출발점은 말입니다. 전쟁과 평화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선전포고든 평화협정이든 말 아닌 게 없습니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버립니다. 낳은 말도 버린 말도 사람의 것인데, 낳음과 버림의 끝에는 사람은 없고 말만 살아 날뜁니다. 날뛰는 말 뒤로 사람이 숨으면, 말은 흉기가 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됩니다. 한 번 뱉은 말은 끝내 담을 수 없습니다. 아낄수록 좋은 게 말입니다. 진심은 말이기보다 침묵에 가깝습니다. 감정에도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끝내 붙잡아야 할 인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놓아야 할 짐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랑이 ‘충만’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행복 역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끼 밥상에서 웃음을 찾지만, 어떤 사람은 일확천금을 쥐고도 허기를 느낍니다. 우습게도, 누군가의 ‘간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입니다. 그리 보면, 행복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충분한가’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 또한 제각각입니다. 어떤 이는 울음으로 버티고, 또 다른 이는 침묵으로 견딥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남의 답을 들먹입니다. 들먹인다고 해서 그 답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는 답이 없습니다. 없어서, 우리가 살아내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면서도, 답 없는 길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산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라 불리는 제도는 ‘정답 없음’을 인정한 체제입니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결정이 늘 옳을 수 없고, 소수의 결정이 언제나 그르지 않습니다. 서로의 답을 이해하려 애쓰는 게 미덕인 까닭도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옳음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에 있습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살피는 마음에 있고, 혼자보다 함께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온갖 반칙과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원칙과 존중과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지극한 마음이랄까요. 그렇다고 틀림조차 인정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름과 달리, 틀림은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타협하거나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실수는 이해할 수 있어도 살인은 용서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틀림의 뿌리는, 속이고 훔치고 때리고 빼앗는 모든 짓에 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게 도덕과 법률입니다. 도덕이 다름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법률은 틀림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다름과는 동행해도 틀림과는 함께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답 없는 길 위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결국 사람입니다. 그것이 길을 길답게 만듭니다.
경기도민에게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은 언제나 무자비하게 길다. 몇 분 남지 않았다는 표시가 전광판에 뜨지만, 체감 시간은 늘 그보다 길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에 몰두한다. 하지만 가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바라볼 때가 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날씨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냥 세상의 모습.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히려 멀리 떠나 있던 마음을 불러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기다림을 불필요한 시간,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다음 것을 하기 전의 공백.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계획이 당장 이루어지길 바라며 조급해한다. 그러나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며, 더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 단순한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기다림 속에서 작은 변화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서, 그 시간은 결코 허비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릴 때, 전철역에서 출발을 기다릴 때, 혹은 커피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릴 때. 이 시간들은 모두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를 단련시키는 힘이 숨어 있다. 기다림은 나를 멈추게 하고, 눈앞의 풍경을 다시 보게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조금 더 천천히라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때로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숨을 고르고, 나만의 리듬을 찾게 해주는 고요한 시간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효율과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빠른 인터넷, 더 신속한 배달, 더 빠른 학습법.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빠른 길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느리고 불확실한 길 위에서,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한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식을 건네준다. 때로는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한다. 나는 이제 기다림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 속에서 배운다. 불편함을 참는 법을 배우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곧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장 결과에 쫓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사는 법을 다시 연습한다.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모두 기다림을 통과했다. 오디션의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 누군가의 답장을 기다리던 조용한 밤. 그 시간들은 길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믿는다. 기다림은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바라본다면, 기다림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조금 더 성숙하게, 조금 더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그러니 기다림 앞에서 조급해하지 말자. 기다림이란 삶이란 여정 속 어느 길목에서 맞이하는 필요한 시간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잡고, 세상을 새롭게 배우며, 내일을 준비한다. 기다림은 곧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공백의 시간이자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배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충분히 경험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수원천 매세교~세천교 구간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해 놀라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현상의 원인이 인근의 한 업체에서 차량 도장 후 버린 페인트로 인한 하천수 오염 때문으로 추정돼 충격을 더 보탠다. 근년 기후 위기에 기인하는 생태계의 급변으로 발생하는 사례 말고 인재(人災) 형식의 긴급한 오염사고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허술히 취급할 일이 아니다. 일제 점검과 철저한 감시망을 통해 확산과 재발을 막아야 한다. 지난 19일 오후 수원시에 “수원천 매세교에서 세천교에 이르는 구간(260m)에 어류가 집단 폐사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팔달구 당직 공무원은 즉시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확인한 후 시 수질하천과에 대응을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한 수질환경팀 공무원은 상황 파악 후 수질검사를 위한 채수를 진행했다. 이어서 이날 오전에는 폐사한 어류를 수거하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오염 물질이 배출된 곳 인근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한 업체에서 도장 작업 후 남은 페인트 오염수를 인근 빗물받이에 버렸고 오염수가 수원천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 현황을 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피라미·잉어 등 500여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파악돼 공무원들이 수거 작업을 완료했다. 시는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수질 검사를 의뢰해 폐사 원인을 분석 중이다. 또 오염 물질을 유출한 해당 업체 대표는 고발 조치할 예정이다. 수원의 하천에서 물고기가 폐사하는 현상은 그동안에도 이따금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환경오염 이슈다. 만에 하나 하천이 독극물이나 폐기물 등에 오염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이는 곧바로 주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만큼 아주 작은 문제라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 지난 2014년 10월 말 수원 원천리천 일대에서 피라미, 붕어, 떡붕어, 잉어 등 물고기 1만 마리 이상이 폐사하는 대형 환경오염 사건이 발생했었다. 조사 결과 인근 삼성전자 하청업체로부터 흘러나온 독성물질 때문으로 밝혀져 일파만파 큰 충격파를 던졌다. 당시 담당 공무원이 업체 방류수 성분분석을 의뢰하면서 유해 물질·중금속은 빼고 단순 항목만 포함하는 등 미숙한 일 처리로 시민단체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2017년 8월 초에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수원시는 팔달구 매교동 매교다리 아래 수원천에서 붕어와 피라미 등 물고기 500여 마리가 폐사했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죽은 물고기 사체의 청산염, 유기염소제류 등 9종의 약성분·독극물 성분을 조사했으나 어떤 약독물도 나오지 않았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조사한 하천수에서도 비소와 카드뮴 등 7가지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고,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부유물질(SS), 총질소, 총인, 화학적산소요구량(COD)도 모두 기준치 이내였다. 이 사고의 원인은 결국 ‘인근 하수관거 월류수 유출로 인한 용존산소 부족’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촌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지만, 쉽사리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업현장에서 유독물질을 함부로 배출하던 풍토는 크게 개선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분별한 산업 폐기물 처리는 크게 개선됐다. 이런 변화는 법 규정 못지않게 국민의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차량 도장 후 버린 페인트가 하천수를 오염시켜 500여 마리의 물고기가 폐사한 일은 규모로 보아서는 큰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상으로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곧바로 회복 불능의 폐허가 된다. 철저한 분석과 완벽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잠시도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지금은 환경 보존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시절이다.
라이즈 사업 시행이 본격화되었다. ‘라이즈(RISE)’는 2023년 교육부에 의해 발표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의미한다. 대학 재정 지원을 위한 예산 집행 권한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함으로써 지역 특성과 발전 전략에 기반해 대학혁신을 도모하도록 하는 새로운 체계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및 노동인구 감소, 과학기술 발달로 인한 고등교육 및 산업구조 혁신 요구 등 지역과 대학이 당면한 공동위기를 극복하고 동반성장을 도모하도록 하는 대전환 계획이다. 지난 2년간 시범운영을 거쳐 기본계획과 대표 과제 및 추진 전략이 마련되었으며, 전국 각 시도별 행정부서 정비가 완료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지역별 라이즈 사업 추진을 위한 2025년 국고 예산 총 2조 10억 원이 최종 확정되었다. 지방비 편성까지 포함하면 최종 사업비 규모는 2조 4천억 원에 달한다. 서울시도 지난 5월 라이즈 사업 추진 대학으로 35개 대학을 선정 발표하였고, 각 대학은 현재 지역-대학 간 동반성장을 위한 기반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이즈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여러 측면에서 면밀히 다루어져야 하겠지만, 결국 지역 내 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 인재 유치 및 정주를 통한 취·창업 활성화, 지역 산업 특성화 및 경제 발전, 공교육 및 문화 발전을 통한 지역 정주 인구 증가 등이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이에 각 대학은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힘을 쏟고 있고, 지역의 기업들 역시 산업 인력 유치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도모하고 있다. 해외에서 유입된 우수 인재가 학업을 마친 후에도 한국에 머물며 직업을 갖고 삶의 터전을 구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어·문화적 지원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언어교육은 일반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일반목적 언어교육과 직업이나 학문 등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한 언어능력을 갖추게 하는 특수목적 언어교육으로 크게 나뉜다. 대학의 유학생이나 이주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은 후자에 속한다. 현재 각 대학은 언어교육센터, 한국어학당 등의 이름으로 어학연수생 대상 한국어교육을 확대하고 있고, 최근에는 외국인 전담학부나 특수대학원을 통해 유학생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체에서는 조선업, 건설업, 관광업,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IT, 의료·보건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학업 수행 능력과 산업 현장에서의 업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능력 신장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인 의사소통능력뿐 아니라 전공 분야 및 직업 영역에 특화된 언어능력 향상을 위한 특수목적 교육이어야 한다. 한국의 대학이나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일정 수준을 취득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요구하지 않는 대학도 늘고 있다. 2005년부터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에 따른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은 제조업 및 어업 등 특수한 분야의 산업 인력을 대상으로 한 장치이지만 이것만으로 이들의 언어능력을 담보할 수는 없다. 진입 이후의 맞춤형 교육이 더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거시적인 비전도 중요하지만, 그 안의 구성원을 놓치지 않는 세심한 정책적 지원과 구체적 계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단 시작은 좋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4일 윤제균 감독 등 영화인들과의 간담회를 가진 것은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을 줬다. 최 장관은 한국 영화계의 생태계 복원을 약속했으며 제작을 지원하고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영화계 아젠다를 재설정하고 지원 투자 금액의 규모를 설정하는데 있어서의 당위성, 필요성 등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장관이라는 정무직 인사가 영화계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고쳐 나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초 장관이 임명될 당시 영화계 내 일부에서는 그를 가리켜 플랫폼 사업자 출신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현재는 그런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계 거버넌스의 최고 책임자와 영화인들이 일치된 행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신호이다. 좋은 일이다. 기획개발비라는 게 있다. 영화 아이템이 시나리오로 나오기까지, 캐스팅과 프리(pre) 프로덕션이 이루어지기까지 돈이 들어간다. 밥도 먹어야 하고 회의도 여러 차례 진행돼야 하며 로케이션 헌팅 (촬영지가 될 곳에 미리 가 보는 것)도 해야 한다. 먹고 살아야 한다. 이 돈이 현재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굶어 가며 시나리오를 쓴다 한들 투자사나 제작사에서 채택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좋은 작품의 원안이 나오기가 힘들다. 민간 투자자들이 사전 투자를 꺼리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획개발펀드를 만들어서 지원해야 한다. 물론 엄정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펀드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50~100편의 시나리오 혹은 드라마 대본이 나올 수 있다. 기획개발비 지원이 하루가 급한 이유이다.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한국 영화산업이 이렇게까지 ‘고꾸라지게’ 된 것은 작품을 못 만들어서이다. 이른바 퀄리티 컨트롤이 되지 않아서이다. 관객들이 도저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그러나 사실 퀄리티(품질)는 콴터티(양)를 기반으로 한다. 적어도 한 해 국산 장편 상업영화가 60~80편 정도 만들어져야 좋은 작품, 재밌는 작품, 의미 있는 작품들을 골라낼 수 있다. 흥행 산업을 끌어가는 것은 그중 5~10편이다. 판이 커져야 한다. 판이 쪼그라들었으면(한 해 25편 수준) 그 판을 다시 의도적으로 키워 내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는 돈이 필요하고 비교적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영화계에서는 신임 정부의 5천억 원 조성에 민간자본의 5천억 원 매칭으로 총 1조 원 구성을 바라고 있다. 여기에 손실 충당을 5대5 구조로만 하더라도 산업은 금세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예컨대 누군가 50억 원 예산의 작품을 만들 때 민간 투자자가 25억 원, 정부가 25억 원을 내는 구조를 만든 후 손해가 날 경우, 민간 자금 25억 원부터 변제해준다는 얘기이다. 이건 적선이나 구호가 아니다. 영화산업은 K팝의 원천이다. 기본이 망가지면 전체가 망가진다. 시급하다. 신임 장관이 그걸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