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후보가 직접 돈을 내 벽보를 제작하고, 이를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 받아 붙여주는 형태지만 로마시대엔 달랐다고 한다. 후보자는 가만있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후보이름과 구호를 벽에 적었다는 것이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2천여 년전 화산폭발로 묻힌 폼페이에서 이 같은 선거 벽보를 출토, 소장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처럼 종이로 만든 화보형 선거벽보는 아니다. 후보자 지지구호나 문구가 새겨진 주택 외벽들이다. 2013년 전시회도 열었다. 분석결과 폼페이 공직자 선출 벽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중 하나에는 건축 토목 축제를 담당하는 2명의 행정관을 뽑아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과 함께 이름을 게재해 놓고 있어 현대 선거벽보와도 매우 유사하다. 예나 지금이나 벽보는 유권자가 후보자들과 만나는 미팅 공간이다. 특히 후보자의 대한 정보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홍보물이기 때문에 후보자 선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선거벽보에 적힌 짧고 강렬한 메시지는 유권자의 마음을 흔드는 강력한 열쇠여서 후보마다 차별화에 심혈을 기우린다. 해방과 더불어 등장한 우리의 선거벽보들도 그랬다. 변변한 통신시설이 없던 1950년대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
‘5·9 대선’에 역대 선거 사상 가장 많은 15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17일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에서 각 후보들은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최근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의 판세는 문재인·안철수 두 야권 후보의 양강구도가 형성되고 그 뒤를 범보수 후보들이 추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선거라는 것이 늘 그랬듯이 막판 뒤집기도 있게 마련이고, 여론조사 또한 맹신할 게 못 된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그저 바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최근 유권자들은 표심을 곧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많다. 침묵하고 있는 부동층이 많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경기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의 표심향방을 후보들은 주목할 때다.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수도권의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공식선거운동이 개시되는 17일 0시 인천항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방문을 시작으로 선거 열전을 시작했다. 국가안전과 해상안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인천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은 의미가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인천을 찾았다. 이날 오전 10시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보수의 새 희망’ 출
“미수습자 9명이 모두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는 한, 세월호의 인양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고,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 “미수습자 9명도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원”(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 “사회가 침몰하는 것은 악인들의 외침 때문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 때문”(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 “선체는 인양됐지만 진실은 아직도 인양되지 않았다”(정의당 심상정 후보 측). 대통령 후보를 낸 각 당이 지난 16일로 3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강조한 말들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적폐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16일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한말처럼 ‘304명의 국민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날’을 잊지 않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개선이 이뤄질 때 참사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한 세월호
우연히 시작된 상록수와의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처음 만났던 상록수는 그저 심훈의 소설 ‘상록수’ 속 이름이었을 뿐, 그 정체성이나 스토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오늘은 ‘인간 상록수’로 불리는 최용신 선생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보자. 최용신 기념관은 도심 아파트 사이 상록수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공원 내에 위치한 탓인지 일반인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최용신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으로 그 사이 훌쩍 20여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낡고 쓰러질듯했던 그 공간들은 이제 소박하지만 세련된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공원 입구 최용신 기념관 표지판을 시작으로 계단을 오르면 최용신 기념관과 마주하게 된다. 단층짜리 건물이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2개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1층은 상설전시관이, 2층은 사무실과 체험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최용신 선생의 건국훈장을 비롯해 유언장, 상록수 초판본 등 관련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용신 기념관이 건립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최용신 선생의 제자들때문이다.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홍석필은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개와 인간과의 관계는 수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원시인이 살았던 동굴의 암각화에도 종종 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벽화속의 인간과 개의 형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친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으며 오래전부터 개를 인간이 길들여 왔음을 알 수 있다. 개만큼 인간에게 충직한 동물은 많지 않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獒樹面)이 있는데 이 지역에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주 오래전 가난한 농부와 그가 기르던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어느날 농부는 밭에서 힘든 일을 하다 잠시 나무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이윽고 깊은 잠에 들었다. 어디선가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나뭇잎들이 불에 타들어 오고 있었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서 깊은 잠에 빠진 농부를 포위하며 다가왔다. 순간 위험을 직감한 농부의 개는 타들어가는 불섶위로 몸을 굴리면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불은 잠시 주춤하다 살아나서 주인에게로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개는 밭두렁 아래 개울가로 내려가 물속에 몸을 적시고 난 다음 다시 불이 붙은 나뭇잎 위로 몸을 뒹굴어 진화에 나섰다. 이렇게 수십번 불을 끄자 불길은 잦아들고 뒤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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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걷는 걸음이 오랜만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만 바라보며 오롯이 머리를 비워가는 시간. 열린 하늘 사이로 떨어지는 봄 햇살은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도시계획을 하며 새 단장을 하여 마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불쑥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 자리한 배다리 저수지.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찾게 된 그곳에 들어서면 등 뒤에 두고 온 도시의 소음, 일에 매달려 허덕이는 숱한 내 고민들이 아득히 멀어질 때가 있다. 마치 오늘처럼 저수지와 혼연히 하나가 될 때는 더 더욱 그랬다. 이슬도 채 마르지 않은 민낯의 모습이 오늘은 또 얼마나 예뻤으면 단숨에 와락 안겨들었을까. 4월의 배다리저수지는 와글와글 개구리 입 화분 안에서 함뿍 피워낸 키 낮은 꽃들의 미소로 아침 인사를 보내왔다. 새로 심어진 벚나무 어린 것들의 꽃은 숫기가 없어 조곤조곤 속삭인다. 오가며 군데군데 몸집이 넉넉한 오래된 벚나무, 두툼한 껍질을 뚫고 나온 금방 피운 그 어린 꽃들의 분홍빛 미소는 마치 종종걸음으로 뒤를 좇는 강아지 발자국 소리같이 상큼했다. 하얗게 꽃 쏟아내는 조팝나무. 발간 꽃 봉우리 맺기 시작한 진달래, 노랗게 생글거리는 민들레, 그 아래 샐쭉 토라진 듯 제비꽃, 개나리 오소소…
선생님! 찬란한 봄날입니다. 별것 아닌 일들에도 마냥 행복해 할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아침마다 뭔가 기대를 안고 학교로 가는 모습, 끝없이 재잘대는 그 아이들, 사소한 일에도 호기심을 갖고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누군가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 헤아릴 수 없는 그 아름다움 중에서 한 가지만 고르라면 어떤 모습일까요? 세상모르는 학자처럼 책에 파묻힌 모습? 하늘로 솟아오를 기세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 교사라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이죠.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초등학교 울타리 안은 한없이 행복한 세상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차라리 슬픔을 느끼게 하는 모습들이 끝없이 연출되는데도 변할 줄 모르는 곳 또한 학교사회인 것 같아요. 3년간 과정을 2년에 끝내고는 일 년 내내 문제만 푸는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국가 기준 따위는 우습게 여기는 학교가 되어 EBS 교재와 함께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드는 거죠. 선행학습 분석 논문들마다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 아예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시키는 부모도 있습니다. 학교에
서양에서는 장미를 로즈(Rose)라 한다. 붉은색이란 뜻이다. 동양, 특히 한자권 나라에서는 장미 장(薔)자에 장미 미(薇)자를 쓴다. 명나라 의학서적 ‘본초강목’은 줄기가 약해 자주 쓰러져 담장에 기대어 자리기 때문에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적고 있다 .서양이 꽃의 색깔을 이름에 담은 것과는 달리 동양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할 수 있다. 장미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약 3000년도 넘는다. 로마에서는 전쟁에 승리한 군대가 개선할 때 군중이 발코니에서 장미꽃잎을 뿌렸다. 또 장미가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고 여겨 장례식에서도 쓰고 묘지에도 심었다.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궁전이나 교회당에 그림으로 장식돼 왔다. 중국이나 서남아시아의 고대 유물이나 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로 유추해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장미는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기쁨의 상징이 분명하다. 장미 사랑이 유별났던 사람은 클레오파트라다. 그녀는 장미향수를 사용하고 목욕도 장미꽃을 가득 뿌린 욕탕에서 했다. 중세 들어 영국에선 장미를 문장(紋章)으로 사용하는 가문도 나왔다, 붉은 장미를 심벌로 하는 ‘랭커스터’와 흰 장미를 심벌로 하는 ‘요크’ 가문이 그들이다.
신목(神木) /손세실리아 동백나무를 마당에 들였다 외래종 색색 겹꽃이 아니라 토종 빨간 홑꽃이란 농장주 말에 흥정도 않고 데려온 게다 드센 해풍이 걱정됐지만 별 탈 없이 자릴 잡고 꽃눈도 실해 한시름 놓던 중인데 갑자기 봉우리인 채로 꿈쩍 않는다 나무의 속내를 알 바 없으니 기다릴밖에 지켜볼밖에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만개했다 헌데 황당하게도 희다 집주인의 비밀스런 사랑※을 눈치채곤 몇 날 며칠 끙끙 앓다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결국 폭로를 감행한 ※ 조선흰동백의 꽃말 시인을 2년 전 제주에서 어색하게 조우한 기억이 난다. 인동초 시나리오 작업으로 내려앉은 제주도가 회억의 시간들로 아련히 기억에 찾아든다. 봄이 옷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오는 시간, 눈 속에서 향기를 피우는 매화를 앞세우고 봄의 전령사들이 오고 있다. 빨간 꽃을 기대하며 심은 동백나무에서 흰 꽃이 피었다. 신과 나무가 시침 뚝 뗀 채 한통속이 되어 지켜보았던 걸 화자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어쩌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전혀 의도하지 않고, 뜻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애면글면, 그렇게 꽃이 피고 봄이 오고 우리들 삶도 흘러가는 중이다. 세상사가 자기 노력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