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너가 좋아서 하는 예술이니까 불평하지 말라고. 예술가의 창의적 활동이 과연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일까. 각박하고 비정한 현실속에서 가끔은 꿈을 꾸게 하고, 가끔은 잃어버린 순수한 나와 직면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그런 낭만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예술환경은 예술가 스스로의 열정페이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해도 된다고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것인가. 대선을 앞두고 각 분야에서는 공약에 반영할 수 있는 많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가는 사회적으로 가장 예민한 촉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혼자 하는 작업의 특성상 앞에 나서서 그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특히 요즘 문화융성이란 말은 향후 10년은 덮어놓아야 할 정도인데 보이지 않는 국제적 문화경쟁사회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예술가들로서는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국가적 문화 이미지는 그 나라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문화적 지원과 더불어 도시 이미지 정체성 활성화를 위한 글로컬리즘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컬리즘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의 결합어이다. 유사한 문화가 전…
드라마 ‘상속자들’에는 잘 생기고 멋진 훈남들이 등장한다. 차은상, 최영도, 김탄 등 극중 남성들과 여주인공과의 로맨스가 흥미롭다. 필자가 위 드라마들을 띄엄띄엄 본 탓인지는 몰라도 드라마의 제목에 걸맞는 주요 캐릭터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피상속인의 채권자. 사망 이후 발생하는 법률관계 중 상속을 둘러싼 긴장관계의 기본 축에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피상속인 즉 망인의 채권자는 망인의 사망으로 채권 회수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반면에 상속인은 한번쯤은 재산은 상속하되 빚은 될 수 있으면 상속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채권자 사이의 긴장관계의 해소에 관하여 민법은 3가지 기본 해법을 규정하고 있다.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제한없이 승계하는 단순승인, 상속으로 인하여 취득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하는 한정승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속포기가 그것이다. 3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상속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상속인의 선택에 따라 피상속인의 채권자는 채권을 회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상속인의 채권자 보호를 위해 민법은 상속인이 일정
옆으로 쓰러져 있는 선체의 부식된 면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이것이 이 배의 운명이 될 줄을 짐작하지 못했을 거다.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해진 그 이미지는 이제 애처롭고 가련한 것들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 세월 앞에 무참히 부식되어가는 것들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들의 극명한 대비를 그만큼 우리에게 생생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은 마치 거센 물살을 무사히 견뎌내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 때의 세월호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또한 한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우리내의 운명이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가 대기인지 분간하기 힘들 만큼 화면은 휘날리며 진동하고 있고 석양은 불안하게 초점이 흔들리고 있다. 본디 안개란 엷고 희미한 것이지만 작품에서는 안개가 매우 두텁게 칠해져 있고 게다가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다. 배를 드러낸 채 옆으로 누워버린 세월호의 부식된 선체와 터너의 바다는, 그처럼 거치고 얼룩덜룩한 평면으로써 처연한 인간의 운명을 대변해주고 있다. 젊은 시절 위풍당당하고 잘 나갔던 터너는 중년이 되면서 점점 더 고립된 세계로 들어갔다. 젊은 시절에도 해양과…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이는 1892년 영국의 열대병학자 ‘로널드 로스’다. 그런데도 1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해마다 전 세계에서 4억∼5억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되며, 이중 150만명 정도가 숨진다. 단일 질병으로는 가장 많은 수다. 아프리카에선 30초마다 어린이 1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1년에 100만 여명이 사망한다. 완벽한 치료제와 예방약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기에 의해 옮겨지고, 치사율이 5~30%에 이르고 살아도 바보가 될수 있는 일본뇌염과 임파구가 막혀 다리가 기형적으로 붓는 사상충증 환자 또한 없어지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같은 인류 ‘공공의 적’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백전백패’중이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기가 박멸되지 않는 건 이산화탄소 급증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온이 올라간 데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모기의 내성이 강해진 것도 한 이유라고 한다. 각종 질병을 옮기며 인간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는 모기는 전 세계적으로 3200여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중 최근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지카바이러스와 뎅기열을 옮기는…
이, 별 /심종록 대리석 바닥 위를 몰려왔다 몰려가는 사람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서는 모르는 사이처럼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초녀녁달처럼 싱싱한 이, 별 -심종록 시집 ‘쾌락의 분신자살자들’ 시의 내용을 생각하면 ‘이, 별’은 이별(離別)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이 시는 ‘이, 별인 지구에서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이별(離別)’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는 뜨거운 입맞춤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라고, ‘나’가 ‘너’인 것처럼 하나가 된 마음이라고, 일심동체라고 서로에게 고백하면서도 정작 눈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너’를 ‘나’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소박한 믿음에 불과한 것 같다.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너’가 ‘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징징대지 않는 것도 좋겠다. ‘나’
청명 한식이 지나면서 농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밭 한쪽 매화가 화사하고 들풀이 벌써 빼곡하다. 작년 가을 파종한 마늘은 제법 실하다.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두어 번 줬지만 계속되는 봄 가뭄에 목이 마른지 마늘잎이 타들어간다. 검불이며 호박 줄기 콩대 등 지저분한 것을 긁어모아 불을 놓는다. 건조해서인지 불길이 제법 거칠다. 바람 없는 날 골라서 불을 놓는다고 했어도 막상 불길이 높아지니 겁부터 난다. 서둘러 불길을 잡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작은 불씨 몇 남아 곧 꺼지겠다 싶어 다른 일을 하다보니 불씨가 되살아나 불길이 옮겨 붙고 있다. 바람기 없는 날도 이럴진대 바람 부는 날은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을 끄고 주변정리를 하고 혹시나 싶어 언저리를 삽으로 파 놓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편해졌다. 며칠 전 당진가는 길에 도로변으로 올라서는 불을 끄는 것을 보았다. 논두렁을 태우다 불길이 도로변 언덕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일부 가로수가 화상을 입었고 꽤 넓게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아직 불길이 다 잡힌 것은 아니다. 저러다 지나가는 차에 옮겨 붙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싶어 차선을 바꿔 달렸지만 위험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논두렁 태우
이런 경우 법적으로 어떻게 되냐는 질문과 상담 속에서 생활하는 나로서는 세상을 바라볼 때 법률가의 관점에서 다소 딱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직에 있다가 현재는 수감 상태로 고통받고 있는 그분을 생각할 때도 이러한 기준에서 평가하게 된다. SNS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받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주로 법적인 가치가 있는 내용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법률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난해부터 이제까지 진행된 일련의 검찰 수사와 탄핵, 특별검사의 수사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법치주의 회복과 질서의 재정립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는 정운호 게이트 또는 대형 법조비리 사건이 온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변호사로서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민망할 정도였다. 돈이면 재판조차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전관예우라는 뿌리 깊은 법조계 부조리와 결합하여 고귀한 사법제도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엄정한 수사나 재판이 왜곡되면 일반 사람들은 나만 법을 지켜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만한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노익장이란 단어가 2000년 전 중국 후한 때 나왔으니 역사가 길다. 당시 6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을 토벌하러 가겠다고 나서는 마원 장수를 말리면서 광무제가 했다는 “늙어서 더욱 왕성하다”는 뜻의 ‘노당익장(老當益壯)’이 어원이다. 나이 들수록 기운과 의욕이 넘친다고 할 때 쓰는 용어다. 무병장수,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평균수명이 50세를 넘은 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장수국가라는 일본도 19세기 초 평균수명은 45세였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 왕들의 수명조차 46세 안팎이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당시 마원의 나이는 노인 중에서도 원로급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평균수명은 언제부터인가 환갑잔치조차 슬그머니 사라질 정도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젠 칠순도 생략하는 집이 많다. 평균수명이 81세로 늘어난 탓이다. 따라서 지금 60대에게 노익장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어색하다 못해 창피하기까지 하다. 80, 90세나 돼야 그나마 어울리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1930년대 태생으로 6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80을 앞뒀다는 뜻의 ‘신386’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제 센티내리언(centenarian), 즉 100세 어르신
겨울 아침 /오세영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던가. 비록 강퍅한 시대와 맞서 서릿발 사나운 동토로 내몰렸다고 하나 의식은 추의와 고독의 절정에서 가장 명징하게 맑아질지니 이성이 빙벽의 불타는 이마에서 반짝 빛나는 이 겨울 아침에 일어나 나는 먼저 시를 쓰리라. 밤새 하얗게 내리는 눈밭에서 종종거리는 산새들의 그 정갈한 발놀림. 시인이 시로 쓰는 도구는 명징한 의식과 이성이다. 겨울은 의식이 고갈되고 죽은 계절이고 의식이 달아나 동면을 꿈꾸는 시기이고 겨울은 죽음의 상징이고 겨울은 극복이 아니라 순응의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으나 시인은 시를 쓰는 행위로 겨울을 극복한다. 시는 이열치열의 수단이자 아침에 일어나 시를 쓴다는 것은 겨울밤을 이겨낸 환희의 노래와 존재의 출발점을 시로 한다는 선언이다. 시인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시에 있고 시를 써야 하는 것이 곧 살아야 함의 이유고 역설적으로 시를 쓰므로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작은 것의 생명력을 노래하므로 우주란 큰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환기 시킨다. 아름다운 역설의 노래를 부르는 혜안의 시인을 떠오르게 하는 좋은 시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