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내는 소리 ‘빵야’. ‘빵야’라는 이름을 가진 소총이 풀어놓는 한국 근현대사는 100년의 시간을 지나 수많은 개인을 소환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 앞잡이였던 기무라, 그에게 끌려가 사랑하는 사람을 쏘게 된 길남, 독립군 강포수의 딸이었던 선녀, 인민군 아미, 배고픔에 군인이 된 무근, 돌격대 설화 등은 전쟁과 이념 앞에 스러져간 개인이었다. 서울 대학로 예스24 아트원 1관에서 연극 ‘빵야’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초연했고, 올해 재연이다. 제61회 K-Theater Awards 대상, 월간 한국연극 선정 ‘2023 공연 베스트7’에 올랐다. 텔레비전 편성 불발로 5년째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나나’는 영화소품창고에서 99구경 장총을 보고, 영감을 얻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빵야’는 인명살상 무기인 장총을 의인화 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총으로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고통스러워한다. 일본군 장교의 손에서 먼저 삶을 시작한 ‘빵야’는 여러 주인을 만난다. 독립군, 인민군, 빨치산 돌격대, 서북청년단 등을 거치면서 빵야는 누구의 편도 아닌 그저 누구의 손에 들
공부와 성적에 지쳐있는 고등학생. 메말라버린 현실에도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음악은 아름답다. 음악에 대한 열정, 이를 완성해내는 우정은 학창시절을 찬란한 순간으로 만든다. 그 ‘추억’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창작 초연 뮤지컬 ‘드라이 플라워’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개막 전부터 메인 트레일러, 6종 MR, 3개의 넘버를 시연한 시츠프로브(음악감독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춰보는 리허설), 한강 나들이, 버스킹 영상 등을 선공개해 음악극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드라이 플라워’는 폐교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인 지석, 준혁, 성호가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오디션에 출연하는 이야기다. 학업에 대한 압박과 해체의 위기 속에서 연주를 이어가던 중 40년 전 학생인 정민과 유석의 흔적을 발견한다. 극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만큼 감성적이며 낭만적이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청춘들은 꿈과 희망이 가득하다. 시를 읊는 학생들은 섬세하며 ‘내 노래’, ‘어느 봄 날’, ‘첫 만남’ 등의 넘버는 기타의 선율과 함께 울림을 준다. 폐교가 될 위기에 처한 학교는 쓸쓸하지만 40년 전 학생
과거의 달에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달의 아이들은 언제나 푸른빛의 지구를 동경했고/ 매일 밤, 밤 하늘의 지구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조금은 특별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21년에 초연한 ‘문스토리’는 코로나19로 인한 공연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김수로 감독의 ‘더블케이 드림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다양한 세대의 호평을 받으며 2023년에 다시 돌아왔다. 택시를 운전하며 초췌한 몰골로 서울의 밤거리를 헤매는 ‘이헌’은 어느 날 ‘용’이라는 남자를 치게 된다. 당황한 나머지 ‘용’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 ‘이헌’은 그로부터 자신이 달에서 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용’을 보내려는 찰라 ‘이헌’의 오랜 친구 ‘린’이 찾아온다. 트랜스젠더 가수가 된 ‘린’은 ‘용’의 얘기에 흥미를 보이며 ‘이헌’에게 만화를 다시 그릴 것을 제안한다. 7년 전 사고로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된 ‘이헌’은 그들을 내쫓는다. 하지만 그의 앞에 만화 잡지 기자 ‘수연’이 나타난다. 잊힌 만화가를 조명하는 기획을 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하지만, ‘이헌’은 7년 전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
단 한 번의 실험 성공으로 인류를 구하게 된 에덴 아담스는 점차 대담해진다. 실험 성공이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남자친구 레브 허트의 말도 듣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걸린 남자친구의 죽음 앞에선 실험 대상이 되어줘 고맙다고 말한다. ‘빛과 어둠의 대결, 그 기로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선택’이란 주제로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뮤지컬 ‘더 데빌 : 에덴’이 무대에 올랐다. 2014년 초연한 ‘더 데빌’의 후속작으로 10주년을 기념해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미국의 테라노스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혈액 진단 키트를 개발해 인류에게 혁신적인 미래를 선사하고 싶은 에덴은 실험을 거듭한다. 소량의 혈액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녀를 몰아붙이지만 실험은 계속 실패한다. 단 한번 인간의 ‘악’을 대변하는 악마 ‘X-Black’의 손길이 닿았을 때 성공한다. 실험 결과 발표일이 다가오지만 그녀는 성공을 입증할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성공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말에도 그녀는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발표를 강행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열광했고 연구실은 점점 폐쇄적인 공간이 돼 간다. ‘X-Black’은 그녀에게 혈액 진단 키트를
학교에서 인기 많은 미식축구 선수 비프는 기차를 타고 아빠를 만나고 온 날 밤 자신이 아끼던 신발을 태워버리고 꿈을 모두 포기한 듯 울며 친구 버나드와 주먹다짐을 한다. 버나드는 아버지 윌리 로먼에게 묻는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고. 고전 ‘세일즈맨의 죽음’이 무대에 올랐다. 작품은 1949년 발표한 이래로 2년 동안 724회 상영됐으며 퓰리처상, 연극비평가상, 앙투아네트 페리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 연극계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30년 동안 세일즈를 하며 가정에 충실했던 윌리 로먼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을 해온 평범한 가장이다. 매주 출장을 가며 물건을 팔았던 윌리는 최근 남 몰래 자살시도를 한다. 비프와 해피 두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출장을 다녀온 이후로 집을 나가버린 큰 아들 비프는 집에만 오면 아버지와 싸운다.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아빠만 보면 화를 낸다. 해피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진지한 대화를 10분 이상 이어가지 못한다. 도벽증이 있는 비프는 학창시절부터 농구공을 훔쳤지만 아무런 제지 없이 자란 탓에 성인이 돼선 절도죄로 교도소를 다녀오게 된다. 해피는 술집에서 만난 아버지가 문제를
음지에서 생활하는 두만이, 복싱을 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태만이. 두 쌍둥이 형제의 세상을 향한 복싱이 울림이 된다. 두만이는 한 여성을 살해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흥신소에서 남의 일을 도맡아 하는 두만이는 그 일로 경찰에 잡혀가게 되는데 신인왕 출신 복서 태만이는 그를 못마땅해 한다. 출소 후 두만이는 태만이와 함께 살게 된다. 태만이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복싱을 이어가고 있다. 두만이는 태만이에게 힘들게 먹고 살 거면 복싱을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태만이는 복싱은 자신의 꿈이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둘은 매일 싸운다.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란 둘은 서로 닮은 게 없다고 으르렁대지만 먹을 것을 몰래 사오는 등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태만이가 복싱에서 져도 힘을 내라며 다시 글러브를 챙겨주는 것도 두만이다. 이삿짐 센터에서 일을 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태만이를 못마땅해하는 두만이와 다시는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는 태만이는 서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끝까지 옳은 삶은 무엇인가 논의한다. 두만이는 흥신소의 농간으로 돈만 뜯기고 쓸모없어져 버림받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일을
“작품 속에서도 원하는 결말을 지을 수 없잖아. 이제 내가 원하는 결말을 지을거야.” 오스카 와일드가 더글라스를 만난 후 친구인 로스에게 한 말이다.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짓고 난 이후 오스카 와일드가 예술마저 현실에 맞춰 원하는 결말을 지어야 한다고 좌절할 때, 더글라스는 작품은 현실을 모방한다며 오스카 와일드를 유혹한다. 작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삶이 무대에 올랐다. 이야기는 오스카와일드가 더글라스를 만난 후 사랑에 빠진 뒤 죽기 전까지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규칙과 억압 때문에 작품의 원하는 결말을 지을 수 없던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속 도리안 그레이와 똑 닮은 더글라스가 나타나자 오스카와일드는 기뻐하며 그를 애인으로 맞는다.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와 젊은 애인 더글라스를 비난하지만 둘은 사랑을 키워간다. 오스카 와일드를 사랑하던 친구 로스가 법적인 죄는 피하라고 오스카와일드를 설득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비난을 피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최고형을 선고받아 사망에 이르게 되지만 결국 더글라스는 법정에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현실이 되는 삶을 꿈꿨다. 남색죄로 죽게 되는
“외쳐, 조선!” 시조가 나라의 이념인 조선, 시조대판서의 음모로 시조는 금지된다. 주인공 단은 시조의 부활을 꿈꾸며 함께 자유를 찾자고 외친다. 시조는 우리 민족이 만든 독특한 정형시의 하나로, 노래의 가사로서 문학인 동시에 음악이다. 3장 45자 내외로 구성돼 있으며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유행했다.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했다. 시조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이를 장려했던 조선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가 사라진 시대, 시조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그린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시조가 사라진 시기 새로운 세상을 꿈꾼 골빈당의 노래로 시작한다. 시조판서 자리에 오르지 못한 홍국은 시조대판서였던 자모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시조를 금지시킨다.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고아로 자란 단은 우연히 골빈당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한다. 홍국이 시조를 금지시킨 15년은 조선의 암흑기였다. 삶의 애환과 즐거움을 글로 풀어낸 시조가 사라지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린 홍국의 권력은 커져만 갔다. 홍국의 딸인 진 마저 아버지를 등지고 백성을 위한 골빈당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자모의 아들인 단이 마저 죽이려는 홍국의 음
“그때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다가와 원고를 먼저 주웠어. 하나 남은 빈자리에는 원고를 올렸어. 거긴 내 자리였어.” ‘호프’의 8번째 생일, 겨우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이제 막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기 일보직전, 황급히 짐을 챙겨 국경을 넘어가야 했다. 엄마는 이동 중인 버스에서 넘어진 호프가 아닌 원고를 품에 안아들었다. 마지막 빈자리도 호프는 원고에 양보해야 했다. 그때부터 70년이 흐르도록 호프는 원고와 함께했다. 현대 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재판과 평생 원고만 지키며 살아온 78세 ‘에바 호프’의 삶을 그린 창작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 3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초연 당시 평균 객석 점유율 94.5%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3개 부문,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8개 부문 수상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은, 미발표 원고를 두고 이스라엘 도서관과 호프의 재판이 열리는 재판장을 배경으로 한다.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호프의 치열했던 삶을 풀어간다. 호프가 원고를 처음 만난 건 8살
빵집 주인 : 왜 여자가 일을 하려고 그래. 남자가 없어? 안나 : 아니오. 돈이 없어요. 빵집 주인 : 그래 그러면 저기 몸 쓰는 건 잘해? 안나 : 네 잘하죠. 빵집 주인 : 얼마나 잘하는데? 안나 : 저 무거운 것도 들 수 있고, 이런것도 혼자 들 수 있어요. 빵집 주인 :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남자한테 쓰는 거.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경악할 만한 대화가 오가는 19세기 런던의 한 거리. 여자가 일을 하는 것에 의문을 품으며, 미혼 여성은 재산을 가질 수도 없는 불합리한 제도가 만연한 사회다. 그러나, 위와 같은 수치심 유발 화법에도 절대 기죽지 않는 여성이 있다. “저한테 왜이렇게 찝적거리세요. 아 발정나셨어요? 그래서 거시기 대신 주둥이로 푸시는 거예요? 이참에 그거 떼버리세요. 감당도 안 되고 관리도 못 하는 거 확 떼버리는 게 편하실 것 같은데, 적선하는 셈치고 제가 도와드릴까요? 골라보세요. 뽑아드려요? 잘라드려요?” 자신을 희롱한 빵집 주인의 말을 시원하게 맞받아치는 ‘안나’. 첫 등장부터 심상치가 않다. 빵집 주인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이던 그는 결국 경찰에 연행되고, 벌금이 없어 철창에 갇힌 신세임에도 “난 슬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