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수지에 땀과 열정을 넣어 생활에 유용한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이화하이테크도 그들 중 하나이다.
대우플라스틱이라는 사출성형업체에 근무하던 심상보 대표가 이화하이테크를 창립한 것은 1990년이다. 창립 이후 이화하이테크는 모기업 격인 대우플라스틱으로부터 재하청을 받으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화하이테크는 고비를 맞게 된다. 주문량이 급격하게 줄어 한솥밥 먹으며 일하던 직원들을 하나 둘 내보내야 했고 그 때마다 놀고 있는 기계도 늘어났다. 1999년에는 갑자기 일어난 화재에 회사폐업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불난 집이 잘된다’는 말처럼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면서 이화하이테크는 2000년 초 삼성전자가 내놓은 DVD-VCR 복합제품 ‘콤보’의 부품생산을 맡으면서 매출의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심상보 대표는 “매출이 오를 땐 하루하루 주문량 맞추기에 여념이 없어 다른 거래처를 뚫고 제품개발 연구를 하는데 소홀했다”며 “매출이 늘어나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함께 커져만 갔다”고 밝혔다. 심 대표가 전경련 경영자문단에 손길을 내민 것도 이 때이다.
자문을 맡은 이종성 위원은 가장 먼저 전자제품 쪽에 올인한 거래처를 다변화하라고 충고했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전자제품업체 대부분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발주량이 줄어드는 반면 자동차 부품은 아직까지 국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심 대표는 ‘맨 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거래처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이에따라 현재 이화하이테크는 자동차 40%, 전자제품 40%, 정보기술 20%의 비율로 거래처를 다변화할 수 있었다.
이종성 위원으로부터 1년 간의 자문을 받은 이화하이테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자부품에만 치우쳐 있던 취급 품목이 자동차부품과 광전자부품으로까지 확대됐고 거래처 수도 두 배로 늘어났다. 설비가동률도 40%수준에서 90%로 증가했고 직원 1인당 생산액은 38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올라섰다.
이종성 위원은 “자문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인 줄 알았다”며 “하지만 자문을 하다보니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넘어 ‘함께 물고기를 잡기 위해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강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일’이 진정한 자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이어 “앞으로도 늘 강가에 서서 물고기 잡는 중소기업들을 돕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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