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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방경찰청이 지난 25일 ‘한국전쟁 직후 경기경찰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1953년 당시 경찰의 활동상을 알리기 위해 낸 보고서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인천여자경찰서에 관한 내용이다. 남녀평등은 물론 여권(女權)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미미했던 그 시절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매우 이색적인 명칭이 아닐 수 없다.

1949년 2월 20일 한 중앙일간지에 이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인천여자경찰서에서는 십이일 하오 일시 동서회의실에서 부내 각 언론인 대표 및 부인단체 참석 하에 여성 풍기개선에 대한 좌담회를 열고 많은 성과를 얻었으며 또한 동서에서는 앞으로 범죄의 수사보다 범죄의 미연방지에 노력할 터인데 부인단체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한다.”

광복 직후 치안공백이 컸던 우리나라는 늘어나는 풍속사범이나 소년 부녀자 범죄를 전담시키기 위해 경무부 공안국 내에 여자경찰과를 신설됐다. 그리고 1947년 7월 1일 인천을 비롯 대구 부산 등 3곳에 여자경찰서를 신설했다. 서울이 제외된 탓에 인천여자경찰서의 관할구역은 인천은 물론이고 지금의 수도권 일대로 매우 광범위했다. 업무는 주로 성매매 단속과 선도였다. 1948년 공창(公娼)이 폐지된 후 사창(私娼)이 우후죽순처럼 늘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도 이 같은 업무를 잘하겠다는, 다소 홍보성이 강한 것이다. 이밖에 거리의 교통정리도 그들의 주요 업무였다.

당시 경기도내엔 76명의 여자경찰이 있었는데 최고 계급은 경감(1명)이었다. 그 경감이 바로 인천여자경찰서장이었고 나머지 여경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근무했다. 경찰서는 당초 신생동에 있었으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중구 중앙동 구 세창양행(1884년 인천개항 직후 독일인이 세운 무역상사) 자리로 옮겼다. 그로부터 약 7년 뒤인 1957년 7월 26일, 1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반 경찰서와 관할 구역이 중복돼 업무상 지장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경기지방경찰청 내 여경은 1천715명이다. 전체 경기경찰 1만8천여명 가운데 9.5%이며 경찰 내 모든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최고계급은 경무관(분당경찰서장)이다. 소수가 특정분야만 담당하던 60년 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준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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