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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 칼럼]자살과 종교

 

한국사회의 자살률은 OECD 국가 1위를 차지할 만큼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유명 연예인, 명문대학교 학생, 입시에 시달린 고등학생 등 젊은이들의 자살도 충격적이지만, 노인자살률도 심각한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숙고하고 결단한 자기 생명의 자발적인 제거라는 의미의 자살은 종교사에서 매우 다양하게 평가를 받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살은 신에 대한 죄이며, 벌 받을 행동으로 판단합니다. 까닭은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을 거둘 권리 역시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법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으며, 자살자의 교회 예식에 따른 장례식은 거부되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생활고, 병고, 비관, 염세, 가정불화, 양심의 가책, 결백의 주장, 배신감, 실연 혹은 자발적 안락사 등), 자살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살한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은 이미 자살을 통하여 윤리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거운 상처를 주고, 신과의 관계에서는 구원의 은총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적 인간, 특히 신앙인이 취할 마지막 선택이 아닙니다.

생명은 신이 주신 선물

생명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생명이해는 인간이 살 권리만이 아니라 죽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합니다. 삶은 권리만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만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삶은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의도대로 끝맺을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더 이상 육체적으로 존속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선택되는 자살은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자살의 동기가 빚, 외로움과 고독, 사회적 무한경쟁과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에 있다면 자살한 사람의 자살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와 신앙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자살을 강요한 필연적인 개인적,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서도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자살이 죄냐 아니냐,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가느냐 아니면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은 종교적 질문은 되지만, 윤리적 질문은 될 수 없습니다.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자살자의 결단은 타인이 너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더욱이 쌍용차 사건 같은 사회적 문제에서 비롯된 억울한 희생자들의 죽음은 결코 폄하될 수 없습니다.

빛과 그림자

자살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한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성직자를 찾아 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직자가 개인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한 데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종교가 우리 사회에 편승하여 추구해온 가치, ‘성공지상주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성공한 삶, 행복하고 그늘 없는 삶만이 마치 종교적 신앙의 결과인 것처럼 가르친 잘못된 신앙관 때문에 실패한 사람, 삶이 주는 무거운 그늘 아래 신음하는 사람은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받기 때문에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우리 앞에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등 뒤에서 길을 비추십니다. 앞에서 비추는 빛은 우리 눈을 오히려 뜨지 못하게 합니다. 빛은 오직 등 뒤에서 비출 때 길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빛에 비추인 길 위에도 그림자는 있는 법이고, 그리고 그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그림자입니다. 빛 없는 그림자 없고, 그림자 없는 빛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 빛으로 밝히시는 길 위에도 어둠과 그림자는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신앙인에게 자살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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