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길을 나섰다. 무궁화 꽃 환하게 핀 길을 걷는다. 마음을 파고드는 생각을 정리하지도 막지도 않으면서 그저 허적허적 걸음을 옮긴다. 폭염사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흥건해진 땀을 적셔주곤 한다.
연일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태양의 기세가 등등하다. 하지만 말복도 지났으니 머잖아 더위도 한풀 꺾일 것이다. 폭설로 길이 끊기고 수도가 얼어 터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더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이다. 순간순간은 힘겹게 지나치지만 세월만큼 빠른 것도 없다.
이렇게 며칠 더 견디다 보면 가을이 되고 또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에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어느 하루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지난날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큰 것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술래가 되어 꼭꼭 숨은 친구를 찾다보면 몇몇 친구들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정말 꼭꼭 숨은 친구는 찾을 수가 없어 헤매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결국엔 친구도 못 찾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던 생각이 난다.
세월도 인생도 마치 술래인 것 같다. 꼭꼭 숨은 친구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나 미로 같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무궁화는 피었다 지고 세월은 간다.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요즘 사는 것이 어렵다 보니 자영업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붙들리는 일이 많아진다. 젊어 한 시절 꿈꾸던 공무원에 미련이 남았음일까. 20대에 시험을 두 번 보았고 떨어졌다. 지금 같아서는 합격할 때까지 도전했을 것이고 마침내는 꿈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도전해 볼까 갈등하게 된다.
경쟁률이 높아서 젊은 친구들도 대부분 떨어지는데 쉰을 넘긴 나이에 무모한 도전이지 싶다가도 지금 때를 놓치고 나면 영영 못할 것 같은 조바심에 안달이 나기도 한다. 몇 년 죽기 살기로 시험 준비해서 시험에 합격한다손 치더라도 나이를 계산해보면 퇴직할 때 아닌가 하는 핑계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한다.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에 붙들리면서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의 세월에 와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 모시고 문학 강의를 할 때 팔순을 넘긴 어르신께서 열 살만 젊었어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겠다며 늦게 시작한 시 창작에 열정을 쏟던 모습이 아름다웠다. 돈은 작정하면 벌 수 있지만 한 번 간 세월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돌이킬 수 없으니 순간순간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진정 잘사는 일이라며 가끔씩 나를 부끄럽게 하던 분이셨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가슴 벅찬 도전이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삶자.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하고 싶었던 꿈을 접었다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기로 하자. 무궁화가 피고 지는 일에 내가 주인이 되는 그런 삶을 실천하자.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