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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The Flu, 김성수 감독, 2013).

지난 밤 홀로 만난 영화 제목이다. 뻔한 상상력에서 시작했지만 내용과 구성은 제법,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제가 너무 쉽게 개발돼 허탈하기는 했지만, 가까운 미래를 보는 듯해 여여했다.

내용은 이렇다.

취업을 위해 한국에 밀입국한 사람에 의해 전염병이 번진다. 전염속도는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 감염된 사람의 안위보다 확산을 더 걱정한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분당이라는 대도시를 폐쇄한다. 피할 사이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 혼란과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계층들의 사투, 뭐 이렇다.

영화를 보면서 14세기 유럽을 죽음의 대륙으로 물들게 한 흑사병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하다. 페스트균 감염에 의해 급성으로 일어나는 전염병, 살이 썩어서 검게 된다는 사신(死神).

14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인구의 30%를 몰락시킨 죽음의 전도사.

이 흑사병이 유럽에 가져온 변화는 다양하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촉진된 기계화. 결국 15세기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 또 하나, 예술의 몰락. 감염된 예술가들은 이승을 떠나고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공포. 예술의 상상력 역시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생생한 증거.

이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절대권력, 성직자의 죽음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세상 모든 권력을 영원히 누릴 것 같았던 신의 대리인. 세치 혀로 순결한 처녀를 마녀로 만들어 화형시켰던 전지전능한 악의 지존. 그들이 흑사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으니…. ‘아, 저들도 우리처럼 죽는구나’가 가져다 준 정신적 충격, 그리고 개안(開眼). 그 힘이 중세 유럽을 근세 유럽으로 이끈 원동력이 된다. 신(神)에게서 인간으로 세상의 관심이 내려오는 전환점을 흑사병이 제공한 셈이다.

최근 국정조사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절대권력, 의원님들의 뇌 속에 퍼져있는 ‘사상 없는 사상, 국민 없는 맹목적 애국의 전염병’을 걱정한다.

아니, 기대한다. 저 전염병의 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최정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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