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납자(雲水衲子).
비단 남자만 그럴까. 암수 구별없이, 인간은 떠도는 삶을 꿈꾼다, 발 달린 짐승은 다 그렇다. 보따리를 싸고 풀고. 생(生)이란 그런 것이다, 믿으며.
매일 떠나는 꿈을 꾼다. 오늘 새벽에도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갔으며 초원과 대륙과 사막에서 뒹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눈을 뜨면 그 침대고 해가 지면 어김없이 그 술청으로 향한다. 지리멸렬한 삶이다. 어찌할까. 방법이 없다. 하여, 범부(凡夫)다. 대부분의 우리는.
하지만, 여기 보라매 같은 사내가 있어 일상을 떨치고 하늘을 날아 세상에 안겼다. 직장에 얽매인 일상을 훌훌 떨치고 대한민국을 넘어 ‘뭐라고 뭐라고’를 읊조리며 세상과 조우한 나그네. 300여일을 떠돌다, 갑작스레 찾아온 실명의 위기감 때문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온 불운의 아이콘, 홍성식 시인이다. 한때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에서 기자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했고, 지금은 ‘잘나가는 문예지’의 편집장이다. 그가 세상을 떠돌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처음, 흔들렸다(이리 刊)’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조우한 이 글집에는 글자 수만큼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인의 따뜻한 감성이 켜켜이 녹아있다.
사람을 보는 세상의 눈이 가진 빛깔과 세상을 보는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는 이 외로운 행성, 지구에서 그는 어디로 가고팠을까. 태국을 지나 베트남, 라오스, 우크라이나, 터키, 이란,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카타르를 거쳐 다시 대한민국.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의 상아빛 호수와 킬링필드의 참혹함을 경이(驚異)와 눈물로 그린 대목이 눈부시다.
아무래도 그는 또 여행보따리를 꾸리고 있는지 모른다. 떠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찾고 싶은 까닭인 게다. 아마도 총각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방랑벽은 신이 그에게 부여한 선물이다.
허허(虛虛)로 명명되는 시인 홍성식.
그의 분신인 여행기 ‘처음, 흔들렸다’가 이 겨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궁금하다. 고백컨대, 이미 나는 흔들렸고 짐을 꾸리고 있다.
고비사막 어디쯤에서 만납시다, 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