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전 총리는 며칠 전 새누리당 의원 60여명이 소속된 ‘대한민국 국가 모델 연구 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서 “우리 헌법에 왜 국회해산 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국회해산 제도가 있었다면 지금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의 발언 취지는 백번 공감한다. 지금 국회는 도대체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여야의 극한 대립이라는 게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도 여야가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셧다운이 된 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까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의회 해산’ 운운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효율적이지는 못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고 역지사지하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상당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정책이나 결론은, 의견이 다른 상대방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황식 전 총리는 아마 효율성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국회는 대립하라고 있는 곳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국회와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 기능은 매우 중요한데, 사회적 갈등을 제도가 흡수하지 못하면 무한투쟁이 발생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무한투쟁으로 번질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정당이나 국회가 흡수해, 룰에 입각해 대신 싸움을 하면서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 정당들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정상이다.
만일 국회에서 여야 간에 화합을 하는 모습만을 보인다면 이는 국회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정권이 여당과 관제 야당을 만들고 이들끼리 형님 동생하면서 지낸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김황식 전 총리의 발언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김 전 총리가 물론 과거의 군사독재로 회귀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발상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만일 김 전 총리가 우리의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하게 되면 의회해산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고, 그걸 의미했다면 동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의원내각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내각제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견해가 우리 경험에서 나왔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근현대정치사를 통틀어서 내각제를 경험한 기간은 고작 1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 의견은 군사 쿠데타를 저지른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의 불법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각제=혼란”이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세뇌시켰는데, 바로 그 세뇌의 결과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김황식 전 총리의 이런 발언은 국회 해산을 법에 명문화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개헌을 하자는 취지이기를 바란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같은 일들은 내각제 하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는 우리도 내각제 도입을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좀 잘산다고 하는 국가들 중에서 대통령제 하는 나라는 우리와 미국 정도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내각제를 하고 있는지를 이제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과거의 세뇌에서 벗어나 근본부터 권력구조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