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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겨울이 제 모습을 보여주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농촌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 없이 계절의 행보에 맞추어 산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고, 가을 떡을 해서 고사도 지내고 집집마다 돌려가며 나누어 먹으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하는 게 보통이다. 그 사이에 누구네 혼사나 회갑 같은 경사가 끼어지는 것도 대부분 이때쯤이다.

물론 예고 없이 찾아드는 일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평온하게 저무는 농촌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순간에 벌어졌다. 그날도 고사떡을 해먹은 어느 집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처럼 한가하게 웃음보따리를 펼치고 있었다. 그 중 한분의 손자가 한참이나 재롱을 부리다 진저리를 치기에 자연스럽게 한쪽에 있던 술병을 대주었다. 첫돌 지나 막 걷기 시작하는 남자 아이가 소주병에 쉬를 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겨울이라 기저귀 속에 있던 고추가 귀여워 한 할머니가 장난을 시작하셨다. 방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추를 따다주는 흉내를 내면 모두들 맛있다고 먹는 흉내를 내면서 예쁘다고 아이를 어르고 노는 일은 심심풀이 이상 재미있었지만 불씨가 될 말을 묻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해가 서향미닫이로 들어오면서 모두들 일어서고 동네에서는 저녁연기가 마을을 감돌았다. 집집마다 쇠죽 끓이는 냄새를 시작으로 서로 비슷비슷한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리며 개밥을 주면 어느새 별이 총총했다. 온 마을 그렇게 도란거리다 잠이 드는 저녁에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잦아지더니 여자들 목소리가 덩달아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소리에는 남녀노소가 뒤섞여 쉽사리 멈추지 않고 밤이 깊었다.

다음 날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누구네 아들이랑 누가 어떤 사이였다는 등 그 아이 아빠가 원래 여자를 밝히고 다녀 아이 엄마가 그렇게 살이 오르지 않느냐는 말까지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태산명동에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더니 바로 그 짝이었다.

진상은 이랬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 고추를 따먹는 장난을 하며 아이를 놀리다 고추를 만지며 하는 말이 “너는 어쩜 그렇게 네 아빠를 꼭 닮았니?”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께서 손녀만 줄줄이 보시다 끝으로 난 손자가 대견하던 차에 잠이든 손자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에 들은 말씀을 하셨다. 이래저래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며 살던 며느리가 남편에게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느냐고 닦달을 했다. 급기야 별것 아닌 일로 싸우게 된 남편이 밤에 그 집을 찾아와 따지게 되었고 일은 다음날 더 커졌다.

아이 엄마가 첫 차를 타고 눈물바람을 하더라는 말과 함께. 평소 소 닭 보듯 하던 남편과 층층시하에서 허리 펼 날 없이 사는 고된 일상에 대한 분풀이였다. 젖먹이를 두고 간 행동이 괘씸해서 다시는 집에 들이지 말라는 시어른들도 항복을 하고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명문대 근처로 하숙집을 하겠다며 분가를 했다. 어찌 보면 속 깊은 그 아이엄마가 압력솥에 달린 추를 적절히 사용한 셈인지도 모르지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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