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만 되면, 대학교수들은 새해의 희망을 함축적으로 담은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이 풍속도는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국내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일정 수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후 투표로 순위를 결정, 발표하면서 등장했다. 그 후 우리사회에 유행하기 시작한 새해 사자성어 선정은 정치인, 지자체장, 대기업회장, 심지어 웬만한 기업의 CEO에 이르기까지 연말연시 으레 봇물을 이루듯 나온다.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 발표 직전, 한 해를 뒤돌아보는 ‘올해의 사자성어’도 함께 선정·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바람이고 우려는 현실인 모양이다. 연초의 희망과는 상반된 사자성어가 그해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생각한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하지만 사자성어의 풀어 논 뜻을 보면 어느 한해 희망대로 맞아떨어진 해가 없다.
2011년만 하더라도 연초 사자성어는 민귀군경(民貴君輕), 즉 백성은 소중하고 임금의 권세는 짧고 미약하니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그해 연말 선정된 사자성어는 엄이도종(俺耳盜鐘·귀를 막고 종을 훔침, 잘못을 하고도 다른 사람의 비판,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음)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새해 사자성어는 잘못된 것은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거짓되고 사악(邪惡)한 것들을 분쇄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연말에 돌아온 사자성어는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다 혼탁함)이었다. 정권 말기에 온갖 부정부패,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하니 온 나라가 진 흙탕물 같다는 게 선정이유였다.
2013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는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를 가진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 이는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또 지난 정치세력의 과오를 과감히 혁신하여 새로운 정치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희망사항’이 돼 버렸다. 오히려 견개고루(?介固陋·옛것에 집착해서 완고함)였다. 올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는 과연 뭘까? 아울러 내년을 표현할 희망의 사자성어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