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마트의 김장 코너, 수북이 쌓여있는 배추포기들 옆으로 다섯 개씩 허리를 질끈 묶은 다발무가 무더기로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무슨 경사라도 났는지, 얼굴 뽀얗게 씻은 모양이 난생 처음 도시 구경 나온 그 옛날 우리 남매들 같다. 한 밭에서 자라 뿔뿔이 팔려가고 있는 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에 조그만 무 하나 덤으로 묶인 여섯 개짜리 다발 무가 보인다. 우리 막내도 다른 형제들보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작아서 늘 저렇게 덤으로 달려 다녔었는데. 덤은 덤만큼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니 그 또한 행운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어쩌다 재래시장에서 과일이라도 살라치면 덤을 기대하게 된다. 과일 하나, 콩나물 한 줌, 생선 한 마리의 덤이지만 그 덤을 받아 돌아설 때는 더없이 뿌듯해진다. 하지만 야박한 주인을 만나 그 덤을 하나도 얻지 못하면 마치 크게 손해를 본 듯 마음 한쪽이 찜찜하고 영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늘그막에 끝인 줄 알았던 자식농사에 덤으로 얻은 막내에게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유난히 사랑을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하셨다. 남달리 총명해서 키울 때도 기쁨 두 배 선물을 받았고 결혼을 하고도 혹여 어머니, 아버지 일찍 여읠까봐 아등바등 뛰어다니며 병간호 하는 모습에 늘 힘을 얻으신다고 했었다. 그 막내가 네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혹여 버릇이 나빠질까봐 할아버지 제삿날 울며 떼쓰는 막내를 그냥 두고 어머니께서 방앗간에 가시며 아무도 달래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신 적이 있다. 한 시간쯤 혼자 끈질기게 울고 있던 막내가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아이고오~, 나도 이제 그만 울어야겠다.”
며 울음을 뚝 그치는 바람에 주위 어른들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리게도 했었다. 속내는 다 있는 녀석이 괜한 트집으로 엄마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떼 쓴 허술한 고집이 다 들킨 순간이었다.
아이 많이 낳은 것이 어머니께서는 참 쑥스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낯모르는 어른들이 자식이 몇이냐고 물으면 한 명쯤 줄여서 다섯이라고 할 때가 있었다며 막내를 겸연쩍게 쳐다본 적이 있다. 뒤로 살짝 숨은 듯 다발 무에 덤으로 매달린 샐쭉한 미소, 그 작은 무도 어미젖을 제대로 못 먹었는지 댕글댕글 눈만 영글었지 몸집이 작다, 우리 막내처럼. 엄마젖이 일찍 말라 모유를 먹지 못하는 막내에게 철없는 누나들은 분유를 타서 먹인답시고 그 달콤한 분유 절반은 다 퍼먹었으니, 그 사연 아시면서도 어머니께서는 매번 모르는 척 그만큼 더 분유를 사다대셨다.
그렇게 올망졸망 한 밭에서 키워내신 육남매 김장철 다발 무 팔려가듯 자기 짝 찾아 내보내고 어머니께서는 홀로 빈집에 앉아 염주 알 돌리시며 자식 잘되길 또 소원하신다. 각자 집집마다 배달돼 배추김치, 무김치, 깍두기, 백김치 등, 쓰임에 맞게 사용되듯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맛, 자기 색깔을 내고 있을 그 자식 온전히 제 역할 하길 먼발치에서 기도하고 계신 것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