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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수많은 종교와 제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희생제물을 매개로 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아주 먼 태고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이런 희생제의를 왜 인간이 드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증여이론’인데, 희생제의는 인간이 자기에게 무엇인가 긍정적인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신들에게 공물을 바쳐,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때 바치는 제물은 제의를 행하는 인간 자신을 대리합니다. 이와 반대로 ‘친교이론’은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함께 나눠 먹음으로써 깊은 연대감을 형성하는 기능을 합니다. 생활물자를 공유하는 것이 힘들었던 사회에서 분배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때 희생제의에 사용되는 동물은 씨족의 토템동물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물도 인간의 선조였고, 인간들은 동물의 형상 안에서 궁극적으로 신성의 능력을 얻게 된다고 믿은 것도 부수적 효과입니다.

또 다른 이론인 ‘공격이론’에 따르면 희생제의가 공격성의 해소와 극복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격성을 속죄양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써 공동체 내부의 구조적인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지요. 희생제의를 드릴 때에는 언제나 무엇인가 살멸되어야 합니다. 제물의 일부 혹은 전체를 완전히 제거하여 공동식사에조차도 오르지 않게 함으로써, 혹은 무방비 상태의 흠 없는 어린양을 거친 광야로 몰아냄으로써 인간들이 자기 안에서 또는 자기의 삶 가운데서 떼어내고 싶은 것, 그들이 짊어져야 할 피해를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희생제의의 근본적인 의도는 결국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합’과 (죄로부터의) ‘결별’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공격이론’, 곧 ‘결별’의 의도를 가지고 수행된 희생제의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짐(죄악)을 자기보다 힘이 약한 생물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의 생명과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종교적이면서도 가장 폭력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희생제의가 보여주는 마지막 말은 결국 생명이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강한 자의 생명이 약한 자의 생명의 희생을 기반으로 유지된다는 것인데, 이런 희생제의가 종교적 제의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 안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성전 안에서, 배금주의라는 제단 위에서 지금도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우리 시대의 가장 폭력적인 희생제의의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만든 세상,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 ‘세월호’라는 이름 안에 총체적으로 집약된 한국사회의 모든 죄악, 배금주의, 적당주의, 부정부패의 먹이사슬,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부의 무능과 관료주의,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무관심과 무책임이라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이들의 죽음, 아니 이들의 죽임에 책임감을 느끼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집단적 죄책감으로 가슴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제는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또 다른 힘없는 사람들이 더 큰 희생 제물로 바쳐지지 않도록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을 심판해야 합니다. 더 이상 ‘기본이 없는 나라’, ‘국민을 협박하면서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 나라’,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을 씻어내야 합니다.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침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길이 속죄양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이들이 해야 할 ‘부활제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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