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오월이 지나고 있다. 산과 들이 생기발랄하게 연둣빛을 굳히고 환영을 받으며 지나는 오월이다. 그리고 초세를 진초록으로 확장하며 유월의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오월이 노동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청소년의 날, 성년의 날, 부처님 오신 날까지 있어서 기념을 하고 지났다면 유월은 가족 구성원들이 잔잔하게 소설 줄거리처럼 일상을 풀어내는 달일 것이다.
가족이 살아내는 일을 잔잔하게 풀어내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라고 물으면 누가 뭐래도 가정의 안주인인 어머니, 아내가 맞을 것이다. 아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집안의 해’라는 풀이가 들어있다. 세심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관심을 주고 잡다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가족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따뜻한 해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넓은 세상 속에서 각기 제 할 몫을 파릇파릇 살아내곤 저녁이면 지친 몸으로 돌아와 따뜻한 해의 자양분을 섭취하고 생기를 얻어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가정은 가족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구조가 어긋나게 되면 순조로운 읽기가 어렵게 된다. 아내가 가족 구성요소들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날마다 화사한 웃음으로 내비칠 때 가족들은 너풀너풀 건강하고 탄탄하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건강한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꼭 건강한 남편이 있어야 하는 철칙이 있다.
함께 활동하는 문우와 어떤 세미나에 가던 날이다. 평소에 말이 없고 과묵한 그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유독 귀에 듣기 좋은 단어가 있다. 그는 자기 부인을 지칭하는 모든 단어를 내 아내라고 한다. ‘시간이 되니 내 아내가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어제 내 아내와 공원을 걸었다. 아내는 빨간 장미를 좋아한다. 요즘 내 아내가 힘들어하고 있어서 맘이 아프다. 일을 결정할 때 아내의 의견을 물어서 타협한다.’ 등등의 말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었는데 들을수록 듣기에 좋다. 그의 아내가 고급스럽게 느껴지고 아내를 지칭하는 그가 참 좋은 남편, 귀한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항간에 남편들이 마누라, 처, 집사람, 안사람, 내자, 와이프, 누구 엄마, 여편네 등등 여러 가지 호칭으로 자기 부인을 지칭하는 걸 본다. 그런 호칭을 들을 때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편하게 제 짝을 말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호칭도 ‘결혼하여 남자와 짝을 이룬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왠지 그가 말하는 아내는 더 정결하고 화사하고 잔잔하다.
유월이 바로 눈앞에 있다. 해가 곳곳마다 비춰서 세상을 온통 진초록으로 뒤덮을 기세다. 올해 유월은 세상의 착하고 귀한 남편들이 만들어낸 고귀한 아내들이 집안의 쨍쨍한 해가 되는 달이어야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대의 어둡고 침침한 세상을 돌다가 축축하게 젖어 피곤과 짜증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들어오는 가족을 말려주고 통풍시켜 주는 데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주방이며 세탁실이며 서재에서 햇살의 양을 조절하느라고 여념이 없는 아내들이여, 고급스런 아내들이여.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