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빛나는 그 눈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마른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안치환 글·곡 ‘마른 잎 다시 살아나’)
1987년 6월이었다. ‘4·13 호헌’조치와 ‘박종철 고문치사축소은폐’로 정국이 한창 뜨거웠다. 마침내 10일 국민대회가 전국 18개 도시에서 일제히 열렸다.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하루 전인 9일, 연세대 이한열 군이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 도중 경찰의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는 그의 추모곡이다.
결국 정부는 ‘6·29선언’을 발표,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조치를 약속한다. 호헌은 가고 개헌이 왔다.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졌고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민주화 진영은 분열했다.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화에 대한 열기와 거리를 가득 메웠던 대학생과 넥타이 부대의 물결은 썰물 빠지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27년 전 일이다. ‘서러운 넋들이 가’도 ‘마른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이한열은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인 채 광주 망월동묘역에 묻혔다.
그의 부모님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스물일곱 해를 보냈다. 살아남은 자들은 ‘가슴에 맺힌 한들을’ 잊은 지 오래, 꾸역꾸역 살아냈다.
몇몇은 슬픔을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박은 채 그랬고, 또 다른 몇몇은 슬픔을 딛고(?) 자기 한 몸만 여의도로, 청와대로 화려하게 입성했다. 지금도 그 주변에서 복마전 중이시다, 이미 말라버린 깃발을 들고.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주인공에게 경찰이 이런 충고를 한다. ‘너희들은 너무 쉽게 믿어(잊어).’
세월호 참사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최정용 경제부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