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함께 평생을 보낸 배기동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관장이 우리 문화와 전통기술은 물론 자연과 인간, 치료의 역사, 발명과 발견 등 8개의 테마로 41곳의 박물관을 소개한 책.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및 대학원에서 학·석사를 마친 저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구석기 교과서를 뒤바꾼 ‘전곡리 구석기유적’을 발굴, 조사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전곡선사박물관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 국제박물관협회(ICOM) 한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물관이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고 역사와 문화가 깃든 특별한 공간’이라는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국공립 또는 대규모 박물관만 ‘편식’하는 현상을 안타깝게 여기며, 한쪽으로만 돌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가 다양한 목적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이 ‘환승역’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책에 수록된 41곳의 중소 규모의 테마박물관들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재는 물론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빼어난 문화재까지 모두 품었다.
미국인들마저 놀라워하는 에디슨의 재기발랄한 발명품과 아시아 문화의 정수가 오롯이 새겨진 고판화에 빠졌다가 인간을 제물로 바치며 심장을 파내던 마야의 칼을 마주 대하며 얼어붙기도 하고 티베트의 신비로운 불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 영원과 불멸을 노래하게 된다.
또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계룡산을 찾았다가 전 세계 구석기시대 지도를 바꾼 전곡리를 거쳐 보물선이 잠든 목포에서 동아시아 도자기들과 황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
10가지 국가 보물을 간직한 출판박물관에서 종이의 향기에 마음껏 취할 수도 있고, 종이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광릉숲에서 나무와 진하게 교감할 수도 있다.
저자는 특히 박물관의 유물과 함께 그 유물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을 추적한다.
치악산고판화박물관장이 일본에서 ‘오륜행실도’ 목판을 얻기 위해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수집한 사연, 신안 보물선에서 동아시아 국보급 도자기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일 등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또 가장 많은 전통의학서를 보유하게 된 사연을 인천에서 들을 수 있고, 완벽한 작품을 만들면 오히려 깨버려야 했던 도공들의 안타까운 전설을 분원 도요지에서 만날 수 있다.
책에는 이렇게 우리 박물관이 품은 유물과 더불어 유물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상상과 열정’이 역사 속에서 함께 춤춘다.
박물관에 대한 사랑이 큰 만큼 저자는 “박물관은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관람객이 박물관에서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남겼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