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림(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해 흑해(다뉴브 삼각주)로 끝나는 다뉴브 강줄기의 물을 따라가는 여행기.
약 3천㎞에 달하는 다뉴브 강을 수원에서부터 흑해로 들어가는 거대한 하구까지 4년간 여행하며 울름, 레겐스부르크, 파사우, 린츠, 빈,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루세, 부쿠레슈티, 술리나 등 중요한 도시들, 거대한 초원과 습지 풍경, 민족, 관습, 문학, 역사, 언어 문제를 살펴보고 난 후 집필한 여행 에세이다.
책에는 역사적으로 중부유럽의 뿌리를 연구할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서 출발해 인간 존재와 삶까지 명상하는 존재론적 경험과 사색이 집약돼 있다.
독일 슈바르츠발트 수원지에서부터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델타 삼각주까지 진주알처럼 다뉴브 강줄기에 꿰이는 여러 국경과 도시는 그 자체로 저자에게 중부유럽의 혈맥을 짚어나가는 겹겹의 프레임이 된다.
독문학자로서 예리한 눈으로 스케치한 각 나라별 언어별 풍요로운 문학사 풍경을 보여줄 뿐 아니라 중부유럽 연구가로서 역사적 통찰과 비판적 유희를 통해 통시적·공시적, 물리적·정신적 무대를 비교 시찰하며 이 강줄기로 목을 축여온 유럽의 새로운 역사적 주체들을 불러낸다.
유럽사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제시한 놀랍도록 박학다식하고 통찰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은 이 책은 30개국 이상으로 번역돼 소개됐으며, 수많은 상과 공로훈장이 수여되면서 마그리스를 단번에 유럽 지성계의 현자이자 거장으로 만들었다.
‘글쓰기는 기록이다’라는 저자의 정의는 곧 여행의 정의와도 맞아떨어진다.
저자는 다뉴브를 따라가면서 그 물길의 기원을 묻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인물과 사건, 역사와 민족, 시간과 장소의 수호신(genius loci)을 살피고 기록해나간다.
그는 급격한 정치 변혁과 영토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소수민족의 현주소를, 흩어지고 혼재하는 이민족들의 역사적 현존을, 수없이 혼혈과 변형을 거듭하며 흘러온 다뉴브 강의 흐름과 합류시키면서 중부 유럽의 다양성을 옹호한다.
“모든 민족에게는 자신의 때가 있는 법이고,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문화는 없으며, 다만 민족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번영하고 쇠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여 확실하게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안전하다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고 읽는다는 것은, 모든 시기와 모든 국가에서 일어난 ‘인간의 정신사’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43쪽)
총 9부로 나뉜 이 책에서 작가는 각 부마다 도시 곳곳의 명소와 그에 얽힌 인물 및 역사적 일화를 위트 있는 필치로 영원 속 찰나의 사진 한 장처럼 명확하게 포착해낸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