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꾸미의 죽음
/김수상
척추도 지느러미도 없이 지식만 빨다가 얼마 전에 죽은 내 친구 시간강사는
죽어서도 대가리에 먹물만 잔뜩 넣고 응급실 시트에 널브러져 있었다
먹물 제대로 한번 쏘지도 못하고,
어느 바다 밑 모래밭 피뿔고둥의 빈집에 들어간 주꾸미는
포항 죽도시장 영포경매장 나무도마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꾸미탕을 먹고 오는 길에 주꾸미, 주꾸미, 하고 불러보니
그 소리가 영락없이 죽음이, 죽음이, 로 들렸다
- 김수상 시집 「사랑의 뼈들」
우리나라 4년제 대학교가 전국적으로 이백 개 넘는다고 한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척박한 생활이 한때 이슈가 되었다. 가까운 지인들의 모습도 해가 바뀔 때마다 강사자리를 못 구해 전전긍긍하거나 혹은 있는 자리마저 불안해 보였다. 김수상 시인은 친구인 시간강사의 죽음과 도마 위에 널브러져 있는 주꾸미를 대비시켰다. 피뿔고둥 빈집에 들어가 사는 주꾸미. 적이 가까이 오면 수관(水管)으로 땅을 파서 숨거나 먹물을 뿌려놓고 도망간다. 주꾸미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편을 터득했을 것이다. 시간강사의 적은 시간강사다. 그들은 먹물을 뿌리고 도망갈 새도 없어 보인다. 먹물을 서로에게 뿌려댈 것 같은 냉혹한 현실이다. 검은 장벽을 뚫고 들어간다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2년 후 제 임용시기에 재임용되어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는커녕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는 박사들의 속은 먹물보다 더 시커멀 것이다. 비교적 안정된 직업이라는 교육 분야까지 구석구석 힘들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지식만 빨다가 머리에 먹물만 잔뜩 들어있었다는 죽은 시간강사, 시인이 환청처럼 듣는 죽음이, 죽음이, 란 말이 헛말이 아니다. 젠장! 주꾸미, 죽음이.
/김명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