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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두레밥상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고 했는데 긴 가뭄에 물길이 말라붙고 농작물이 타들어 간다. 지난주 조금 내린 비로 발아를 미루던 콩이며 팥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가물에 콩 나듯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듬성듬성 난 콩, 꿩도 목이 타는지 몇 남지 않은 콩을 잘라먹곤 한다. 천심이 농심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늘의 무심한 만큼 농심도 안타깝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도 물꼬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면 도랑물을 지키느라 밤을 밝혔다. 천수답 농사를 짓다보니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천수답이 아닌 곳에는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제 때 모내기를 끝내고 땅 기운을 받은 벼가 짙푸른 기운을 띄며 자라고 있지만 산간지방이나 물길이 닿지 않는 밭작물들은 작황이 좋지 않아 농가에서는 애를 태우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 정선을 다녀왔는데 그곳에도 강은 졸아들고 갈아엎은 밭에선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다. 장마라도 빨리 와야 할 텐데 장마도 오지 않는다며 한 숨을 내쉬는 노인들이 챙기는 안부가 일기예보로 시작됨을 볼 수 있었다.

농사든 사람의 일이든 때가 있기 마련인지 하지 때가 되면 장마가 오기 전 감자를 캐야 한다며 감자를 캐 마루 밑에 널어 말린 어머니는 닳고 닳아 반달이 된 놋수저로 껍질을 득득 긁어 저녁 밥상에 내놓곤 하셨다.

어둑해져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올망졸망한 우리는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시큼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마늘쫑 그리고 감자가 듬성듬성 박힌 보리밥을 호박잎에 싸서 볼이 터지도록 밀어 넣곤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참 정겨운 시간들이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펌프 옆에 쑥으로 모깃불을 놓은 아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른장마라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며 긴 시름을 담뱃불로 태웠지만 철없는 우리는 멍석에 차례로 쭉 누워 별자리를 찾다보면 비스듬히 열린 사립문을 열고 들어온 초승달이 머리 위에 와 있곤 했다.

모든 것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풍요로웠던 시절이다. 솎아낸 복숭아를 박박 씻어 당원을 조금 넣어 뒤적이면 맛 나는 간식이 되었고 감꽃이 떨어질 때면 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드느라 감나무 밑을 쥐방울처럼 드나들었다.

마당에 풀을 뽑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 끌고나가 풀 뜯기고 들에 새참 심부름을 나가곤 했지만 우리는 소가 동심원 안에서 풀을 뜯는 것처럼 우리들의 동심원 안에서 자유로웠다.

요즘 아이들이 형제자매가 많지 않아 함께 어울리는 법과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이런저런 사고가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보니 왕따니 학교 폭력이니 하는 심각한 문제에 노출되고 간혹 표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기성세대들과 그 속에 길들여지는 젊은 층들, 사람보다는 기계와 소통하는 것이 편하다는 말이 간혹 서글퍼 질 때가 있다. 농사 중에 가장 귀한 농사가 자식을 키우는 일인데 소홀히 지나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본다.

멍석에 펼친 두레밥상에서 수저 부딪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반찬 삼아 하루를 보내고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서 구름의 행방을 점치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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