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학’이라는 조금은 낯선 학문을 개척한 스위스 정신과 의사다. 그는 ‘죽음과 임종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정신 상태를 5단계로 분석해 제시했다. 먼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인(Denial) 단계로 시작해서, ‘왜 하필이면 내가’하며 원망하는 분노(Anger),죽음을 지연시키는 거래(Bargaining),극도의 절망 상태인 우울(Depression),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Acceptance) 단계로 이어진다는 게 주 내용이다. 각 단계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다브다(DABDA) 모델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다. 특히 원치 않는 죽음을 접했을 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남은 본인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삶마저 뒤죽박죽되기 일쑤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이를 두고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근심으로 죽음을 망쳐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존엄사와 안락사라는 죽음의 방법을 생각해 냈고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물론 두 가지 방법의 목적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의 고통을 덜고자 죽게 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소생 가능성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 유지 장치를 떼는 것이다. 미묘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오리건 등 5개주, 캐나다 퀘벡 등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선 안락사를 도운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한다. 소생 불가능한 중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며 존엄사를 도운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안락사를 받기 위해 법으로 안락사를 허락한 국가로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중 1942년부터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가 가장 인기(?)라고 하는데, 이곳에선 매년 약 1천400건의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논란도 만만치 않다. 죽을 권리와 생명권, 과연 어느 것이 우선인지에 대해.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