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지다
/신현복
낚시 온 저녁 저수지
잠자리 한 마리
꼬리를 씻고 부들 끝에 내려앉는다
나비는
갈댓잎에서 날개를 접고
들판을 질러온 오리
자맥질을 끝내고 길게 기지개 펴며
하늘을 한껏 끌어당긴다
순간
바람이 저수지를 한바탕 흔들어놓는다
연잎 위 개구리 중심을 잃지 않고
물 속 노을이 점점 검어진다
多, 차츰 검어진다
나도
서서히 검어진다
- 신현복 시집 ‘동미집’
때로 나를 순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온전히 자연 속에 몸을 담그고 현실에 목을 건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화자는 저수지에 와 있다. 낚시하며 잠자리 한 마리 꼬리를 씻고 부들 끝에 내려앉는 모습과 갈댓잎에서 날개를 접는 나비와 들판을 질러와 자맥질을 끝내고 길게 기지개 켜며 하늘을 한껏 끌어당기는 오리를 보며 어떠한 한 점 가식도 없는 자연에 동화된다. 순간 바람이 불어와 저수지를 한바탕 흔들어 놓지만, 연잎을 붙잡고 중심을 잃지 않는 개구리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마침내 온종일 붉게 빛나던 태양이 물속 노을로 점점 풀어져 검어지듯 나를 버리고 날마다 반복되는 경쟁 속에서 뚜렷이 내보이고 있던 그 수많은 색을 버린다. /서정임 시인